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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18일 03시 03분 KST

종편 패널의 고백 "괴물로 변한 나를 발견했다"

한겨레

제1051호 표지이야기 ‘종편이 낳은 괴물들 막장 배틀’을 읽고 한 종합편성채널(종편) 패널이 “가슴속 깊이 찔리는 바가 있다”며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그는 지난해 종편과 뉴스 전문 채널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전문가 패널로 많게는 하루에 3차례씩 출연했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엄청난 괴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이후 가급적 출연을 자제”한다고 했다. 현재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해서만 논평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일주일에 2~3차례 출연자로 나간다. “기사를 읽으며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부끄러운 기억이 많다. 기사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깊이 반성한다.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그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른 평론가·패널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10일 그는 비실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종편 패널이 말하는 종편 패널의 세계는 더 깊은 암흑이었다.

▷ 관련 기사 : ‘종편이 낳은 괴물’들의 거친입·독한입·쏠린입

전자우편에서 “기사 내용보다 현실이 더하다”고 지적했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종편) 경영진이 원하는 대로 답변한다. 사전에 방송의 방향이 다 정해져 있다. 방송 대본을 보면 질문뿐 아니라 답변도 나온다. 작가들이 작성한 것이다. 또 방송 전에 작가 3~4명이 “오늘 무슨 사건이 있는데 이런 쪽으로 간다”라고 설명한다.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패널들이 눈치가 빤해서 다 알아듣는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 패널이 있으면 한 번 경고하고 그다음부터는 부르지 않는다.

경영진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얘기할 때, 마치 재벌을 까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재벌을 밀어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한다. 정부 정책이나 여당을 비판하다가도 무능한 야당 지도자보다 낫다고 끝내야 한다. 잘 들어보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누군가를 띄워주는 것으로 토크가 귀결된다.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하는 패널 20여 명이 살아남아서 종편을 장악했다. 종편 패널 1기로서 검증이 끝난 그들에게 경영진이 믿고 맡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보통 하루 3~4곳에 출연하는데 방송 분장도 지우지 않고 돌아다닌다. 방송사 앞에는 자동차가 대기해 있고 매니저를 고용한 경우도 있다. 예전엔 같은 방송사의 오전·오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는데 요즘은 중복 출연을 자제시키는 분위기다. 보통 첫 방송은 아침 8시다. 방송 1시간 전에 모이는데 이때는 공부하는 분위기다. 대본을 주면 읽느라 정신이 없다. 작가나 다른 패널에게 묻기도 하고. 패널은 기본 4~5명인데 변호사·평론가·정치인·범죄전문가 등으로 꾸려진다. 아침 방송을 1시간 하면서 무차별로 씹다보면 패널이 여유가 생긴다. 이후 이곳저곳을 돌며 똑같은 내용을 방송하니까 나중엔 졸면서도 할 수 있다. 발언 수위만 자꾸 높아진다. 저녁 방송에 나갈 때쯤 패널들이 다 전문가가 돼 있다. 하루 종일 들은 풍월을 자기가 아는 것처럼 주고받으면서.

막말이나 감정적 언어가 많던데.

초기엔 조근조근 논리적으로 말하는 패널도 꽤 있었다. 그들이 잘려나가고 목소리 톤이 높고 거친 표현을 쓰는 이들만 살아남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가끔 제재를 하는데 현장에서 보면 훨씬 심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주장을 감정적으로 쏟아낸다. 북한 <조선중앙TV>와 비슷하다. 눈까지 충혈돼서 잡아먹을 듯이 말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건 아니다’라고 저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하지만 패널 대부분은 그들을 벤치마킹하려 든다. 논리적·합리적이던 사람들도 감정적으로 표현을 바꿨다. 그게 살아남는 길, 성공하는 길이 됐으니까.

고정 출연자나 사회자로 발탁되려고 그러나.

그렇다. 고성국(시사평론가)·장성민(전 의원)·강용석(전 의원)·엄성섭(TV조선 기자) 등이 각각 모델이다. 그들을 따라하며 커가는 제2기, 제3기 패널이 재생산되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선) 막말하는 사회자, 패널이 나와야 시청률도 잘 나온다. 근데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라는 게 0.2~0.3%포인트 차이다. 1.2%면 못 나오고 1.5%면 잘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종편·보도채널끼리 치열하게 경쟁한다. 아무리 개판을 쳐도 승인 취소가 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니까 갈 데까지 간다. 외부에서 실질적 규제를 하지 않는 한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스스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자는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나.

사회자가 되레 몰아쳐서 패널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 달 전쯤 한 종편에서 유명한 패널이 여성 앵커에게 대본을 집어던졌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결이 다를 수 있는데 앵커가 자꾸 자기 방향으로만 유도하니까 패널이 폭발해버린 거지. 카메라가 다른 쪽을 잡고 있어서 방송에는 노출되지 않았지만 대형 방송사고가 날 뻔했다. 그래도 그 패널을 빼긴 힘들 거다. 그만큼 단련된 사람을 찾아낼 수 없으니까.

패널들이 종편에 출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생계형이 있다. 하루 4건 방송하면 60만~100만원을 번다. 한 달이면 1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경력이 없는 풋내기 변호사, 퇴직한 공무원들이 어디 가서 그렇게 벌겠나. 선임이 떠나면서 후임을 추천한다. 둘째, 정치 등용문이다. 전직 국회의원이거나 공천받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음 총선에서 종편 패널이 당선이라도 되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셋째, 신입생을 더 유치하려고 대학이 지원한다. 교수들이 수업을 해야 하는데 학교 허락 없이 방송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겠나. 일부 패널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주고 출연한다는 얘기도 돌고. 실제로 방송 출연료를 작가들 회식비로 다 내놓는 패널도 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확인은 어떻게 하나.

적어도 언론이라고 하면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취재해야 한다. 하지만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을 무조건 ‘팩트’(사실)로 고정해버리고 누군가를 결딴내는 게 목표다. 패널은 ‘나쁜 놈’을 신속하게 찾아내 욕을 잘해줘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것을 먼저 내질러야 한다. 무서운 일이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거짓일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파헤치는 게 언론 본연의 역할인데 종편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진실로 만드는 역할만 한다.

  

그런 사례가 있나.

김형식(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 그렇다.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편이 김형식을 범인으로 몰아갔다. 경찰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근거로 패널들은 “팽아무개씨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다”며 “그러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살인교사의 동기가 없고 경찰 수사에 허점이 많다는 점은 전혀 지적되지 않았다. 게다가 1심이 국민참여재판이라서 배심원들이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김형식을 범인으로 확증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겠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연실색했다.

민형사 소송에 걸릴 수 있는데.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인생을 망쳤더라도 사과 방송을 하는 일은 없다. 물어줄 것 있으면 나중에 하면 그만이지 그런다. 패널들은 언론의 자유를 맘껏, 충분히 누린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기자들이 나와서 팩트를 설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1시간의 방송 분량을 채울 수 없다. 또 팩트 자체는 재미가 없다. 거기에 추정이 들어가고 가정이 더해져야 재밌어진다. 그걸 일일이 다 확인하고 방송하면 늦어진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냥 털어줘야 한다. 틀린 내용이라도 말이다. 사실관계는 작가가 써준 대로 보고 읽고 거기에 양념을 치는 것, 그게 패널의 역할이다.

공중파에도 영향을 미치나.

엄청나다. 우선 종편이 패널을 키워서 공중파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력이 미천하고 전문성도 없는데 종편에서 방송 경력을 쌓은 덕분에 지상파로 영역을 확장한 패널이 생겼다. 둘째,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종편과 보도채널의 사회부 기자들이 뛰어다니다 재밌는 인물을 발굴할 때가 있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지만 수다를 떨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처럼 말이다. 종편이 하루 종일 떠들어대니까 포털에도 기사가 뜨고 시청자의 관심도 생긴다. 그러면 공중파가 저녁 뉴스에 보도해야 한다. 종편이 이슈를 선점하고 선명하게 치고 나가면 공중파가 따라가는 식이다. 때로는 종편 패널이 새로운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어떻게?

일부 패널은 자체 정보원을 고용하고 있다. 하루에 방송 4~5개를 하려면 자기만의 정보가 있어야 하니까. 방송을 잘 들어보면 “정보원에 의하면”이라고 떠들어대는 패널이 있다.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내용을 분명히 말한다. 그 정보원이라는 게 대부분 수사관일 텐데, 공무원이 사건 정보를 유출했다면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받을 일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대놓고 얘기해도 되나 싶다. 나는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수사 영역은 기자들도 접근하지 못하니까 지어내도 확인이 안 된다.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당시 정보원이 틀렸다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조작 가능성’이다. 예를 들면 유병언 사건의 경우 느닷없이 어떤 패널이 새로운 팩트를 들고나와 방송했다. 수사기관이 공식 발표하거나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인데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정보를 공개해버렸다. 그 내용을 언론이 보도하고 검경이 확인해보겠다며 나서고, 그러다 (검경에서 관련된) 증거가 나오고…. 그렇게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본질과 먼 방향으로, 정부와 여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꾸 흘러갔다. 유병언의 사체가 나왔을 때도 근본 문제로 접근하려 하면 자꾸 다른 쪽으로 틀고, 종편이 그랬다. 그때 스피커 역할을 했던 이들이 지금 잘나가는 패널들이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렸을까? 그랬다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종편이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며 흐름을 몰아갔던 것은 분명한데 증거가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