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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14일 11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4일 11시 06분 KST

2억명 중국인 공황에 빠뜨린 충격의 다큐멘터리

전래동화 ‘해님 달님’에서 호랑이를 피해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된다. 처음엔 오빠가 해, 여동생이 달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어두운 밤이 무서웠고, 오빠에게 역할을 바꾸자고 한다. 해가 된 동생은 한낮의 사람들이 자신의 민낯을 자꾸 올려다보자 부끄러웠고, 하느님에게 눈부신 광채를 뿜을 수 있도록 부탁해 고민을 해결한다. 햇빛이 눈부신 이유를 전래동화는 이렇게 풀어놓는다.

중국의 해는 일년의 절반 가까이 ‘생얼’을 드러낸다. 광채도 없이 보름달처럼 완벽한 원형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스모그 때문이다. 지난해 베이징의 하늘은 175일이 스모그였다.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먼지는 태양의 광채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폐로 직행한다는 미세먼지 속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 오존, 일산화탄소 등이 섞여 있다.

스모그가 닥치는 날이면 베이징 도심 주변의 건물은 형체가 사라진다. 어제까지 보이던 고층 빌딩과 교외의 산은 윤곽선을 잃고 흐물흐물해진다. 베이징에서 예전에 3년을 산 한 지인은 귀국을 서너달 남기고서야 아파트 주변에 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스모그 탓에 그동안 산을 못 봤다는 것이다.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당에 대한 회의

스모그가 밀려오면 베이징 기상당국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시민들은 차량 운행 때 충분히 감안하기 바란다”고 예보한다. 밤이 되어서야 스모그는 좀 더 명확한 실체를 드러낸다. 미세먼지는 빛을 반사한다.

이 때문에 전조등을 켠 밤거리의 자동차는 마치 강력한 레이저광선을 쏘듯 달려나간다. 미세먼지는 말 그대로 ‘미세’해서 스모그가 낀 날은 아파트 창문을 꽁꽁 닫아두어도 마룻바닥엔 어느새 희끄무레한 티끌이 소복이 쌓인다. 그야말로 막을 수 없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스모그는 유령처럼 자취를 감춘다.

스모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일이년 새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1997년 세계은행은 중국의 환경훼손 비용이 연간 600억달러(67조4400억원)를 넘어섰고 이는 국내총생산의 8%를 차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중화 굴기’(중국이 떨쳐 일어남)의 홍보장으로 삼은 정부가 골머리를 앓은 것도 스모그 때문이었다.

당국은 당시 베이징 주변의 공장 가동을 중지시키고, 차량 운행을 줄여 스모그 퇴치에 나섰다. 과거 마오쩌둥 주석이 식량을 축내는 참새를 ‘인민의 적’ 삼아 퇴치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온 힘을 쏟았다. 소시민들의 주전부리인 양꼬치 노점상조차 연기를 뿜는다고 단속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때였다. 장학사의 교내 순시 뒤 학교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듯, 스모그는 다시 베이징에 깃들었다.

스모그는 중국 경제와 ‘동반성장’했다. 지금이야 신창타이(신상태: 구조조정 속의 중고속 성장 상태)라고 해서 7%대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경제는 해마다 10%대 이상의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같은 ‘항일’과 ‘신중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 혁명 1세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후임 중국 지도자들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전세계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마찬가지이듯 중국의 위정자들도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 인민의 소득 향상 감소를 감내하면서까지 나중에 벌어질 일을 걱정하진 않았다. 환경오염을 막는 조처들은 정치적으로 매력이 없는 반면 치러야 할 비용은 크다.

이 과정에서 스모그는 지극히 당연한 부산물이었다. 말 그대로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아니었던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위시한 중국 지도부가 스모그 해결에 눈을 돌린 것도 ‘이대로는 도저히 지속가능한 발전(공산당 일당 집권으로 바꿔도 무방하다)을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중국공산당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차이징 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앵커가 만든 한 편의 스모그 다큐멘터리 <돔 지붕 아래서>가 중국을 강타했다.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자신의 딸이 스모그 탓에 태어날 때부터 종양을 지녔다고 그는 주장했다. 청바지 차림의 차이징은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신제품 발표회처럼 스모그의 위험성을 조곤조곤한 어조로 설명한다. 스모그의 주범으로 최대 석유·가스업체인 중국석유공사(CNPC) 등 거대 국유기업을 지목했다.

‘충분한 역사적 조건’이 축적된 상황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인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베이징의 한 20대는 “두려웠고 충격을 받았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스모그가 그렇게 치명적인지 몰랐다”고 했다. 2억명 넘는 중국인들이 인터넷으로 다큐멘터리를 봤고 공황에 빠졌다. 충격은 ‘충격’에서 멈추지 않았다. ‘인민의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인 스모그를 막지 않고 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라는 자각과 불만이 뒤따랐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중국 당국도 ‘공황’에 빠졌다.

원래 차이징의 다큐멘터리가 처음 나왔을 때 당국은 앞장서 홍보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차이징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그럼에도 물론 외국언론들은 차이징을 인터뷰할 수 없었다. 기자 역시 그에게 이메일과 지인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은 없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도 “전직 앵커의 스모그 고발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는 제목 아래 다큐물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칭화대 총장을 지낸 천지닝 신임 환경부장이 차이징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마 당국도 스모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 정도 비판은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중국인들의 반응이 스모그의 심각성에서 정부 당국 의지에 대한 회의로 ‘변질’되는 조짐을 보이자 태도가 돌변했다.

이미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 당시 푸른 하늘을 맛본 중국인들이다. 당시 중국은 베이징 인근의 톈진 직할시를 비롯해 허베이, 산둥, 산시성 등의 공장 가동을 일제히 멈추고 차량 2부제를 도입하는 등 각국 정상 손님맞이에 온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아펙 기간에 베이징 시민들은 최근에는 드물게 파란 하늘을 누렸다. ‘아펙 블루’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시민들의 머릿속엔 “좋다”는 느낌과 함께 “당국이 마음을 먹으면 스모그 문제도 해결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차이징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 봄 스모그는 “변한 게 뭐가 있는가. 대체 위정자들은 스모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긴 한 것인가”라는 ‘위험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잔을 넘치게 하듯 차이징의 다큐멘터리는 무던한 중국인들의 인내심에 불을 댕겼다. ‘공산당이 다 알아서 할 테니 기다리라’는 설득이 먹혀들지 않은 국면이 닥친 것이다.

한국인 삶의 질과도 직결된 중대 관심사

결국 주말인 3월7~8일을 기점으로 차이징 다큐멘터리는 인터넷에서 차단됐다. 단편적인 정지영상만 검색될 뿐 중국 누리꾼들은 직접 볼 수가 없다. 시내 유명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의 전광판에서도 ‘버젓이’ 상영되던(당연히 시 정부의 허가가 있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외풍’에 스모그가 물러가듯 자취를 감췄다. 환경부장의 전인대 기자회견에서는 12개의 질문 가운데 초미의 관심사였던 차이징 다큐멘터리에 관한 것은 없었다. 질문의 사전조율론이 제기됐다.

스모그 문제는 이제 일자리 문제와 함께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당 헌법)에 명시된 ‘일당집권’이라는 레닌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등장했다. 공산당으로선 딜레마다. 스모그를 줄이자면 공장 가동을 줄이고 석탄 발전을 대체하는 등의 조처로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량실업으로 이어진다. 실업은 정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다.

해마다 700만명이 넘는 대졸자를 사회불만 세력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연간 1천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고 스모그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탓에 두 문제의 타협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정보기술(IT) 분야의 창업을 독려하고 서비스 분야로 산업구조를 바꾸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로에 선 중국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례없는 ‘중국발’ 대기오염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에도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삶의 질과 직결된 중대 관심사다. 오늘도 베이징의 아이들은 스모그 속에서 뛰어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