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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9일 16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9일 16시 08분 KST

"학교 앞 우리 ‘보물' 돌려주세요"...불탄 주먹밥집 도운 고교생들

학교 앞 분식집에 불이 났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플 나이인 고등학생들이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돕자며 모금운동을 벌였다. 서울 관악구 영락고 학생회장인 임형익(18)양은 9일 “그분들이 단순히 장사만 하셨다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줄임말 좋아하는 학생들이 ‘보물’이라고 부르는 분식집 ‘보리떡과 물고기’에 불이 난 것은 지난달 26일이다. 주인 김낙준(49)씨 부부가 분식집 맞은편에 사는 김씨 어머니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주방 기름에 불이 붙었다.

김씨 부부가 영락고 앞에 분식집을 연 것은 2006년이다. 김씨는 “예수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겼다는 이야기처럼 ‘작은 것으로 나누는 가게가 되자’는 의미로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라면도 팔고 떡볶이도 팔지만 ‘보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주먹밥이다. 가게를 열 당시 영락고 교장이 “아이들이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주먹밥도 하시면 어떻겠느냐”고 권했고, 이때부터 주먹밥이 주 메뉴가 됐다.

불고기·참치·김치 등 밥과 섞은 재료의 이름을 따 ‘불참’ ‘참김’ 등으로 불리는 주먹밥은 가짓수만 10개가 넘는다. 김씨는 “아이들이 먼저 아이디어를 내어 만들어진 메뉴가 많다”고 했다. 아침 등교 때와 저녁 식사 시간에 주로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김씨 부부가 몸이 아파 가게 문을 닫는 날엔 “밥을 달라”며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김씨 부부는 “간혹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겨울방학 기간, 보물 같은 분식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알린 것도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불이 난 가게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선생님들에게 보내고 자기들끼리 돌려 보며 안타까워했다. 개학 뒤 학생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보물을 돌려주세요’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교실을 돌며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모금에 참여한 곽민정(17)양은 “아이들이 동전까지 털어서 냈다. 친구에게 ‘양심도 없냐. 주먹밥 사 먹은 개수만큼 내라’고 독려하는 아이도 있었다”며 웃었다. 입학 때부터 주먹밥으로 배를 채운 3학년 남학생들이 모금에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교사 정연(53)씨는 “학교에서 키우는 고양이 치료비를 모을 때는 돈이 안 모였는데, 아이들이 정말 안타까웠던 모양”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실수로 난 불 때문에 벌금까지 물게 된 김씨 부부를 위해 탄원서까지 썼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화재 때문에 장사를 못 하고 있는 김씨 부부에게 모금한 돈 45만원을 전달했다. 김씨 부부는 “아침밥을 먹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표정이 밝은 편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맛으로 일했다”고 했다. ‘보물’은 반년 뒤 철거가 예정된 재개발지역에 있다. 이곳에서 장사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김씨 부부는 “이사를 가더라도 정든 학교 가까이에 있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