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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6일 14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3월 04일 02시 07분 KST

뉴욕 패션잡지의 젊은 크리에이터 3인

[새로운 시도와 파격적 실험으로 독특한 콘텐츠 만들어 유포하는 뉴욕 패션잡지 크리에이터 3인방 인터뷰]

지난 2월, 기록적인 한파로 뉴욕은 꽁꽁 얼어 있었지만 2015 봄/여름 패션위크가 열린 주만큼은 달랐다. 반년간 준비한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들, 이를 구경하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패션쇼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현장의 열기를 전달하려는 취재진으로 도시 곳곳은 열정으로 끓어올랐다.

뉴욕패션위크는 런던, 밀라노, 파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에 꼽힌다. 사람들이 뉴욕을 패션의 수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랄프 로렌, 아르마니 등 역사적인 디자이너부터 알렉산더 왕, 프로엔자 스쿨러와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패션공과대학(FIT), 파슨스와 같은 패션학교로 전세계의 인재들이 모이며, 맨해튼의 대형 백화점부터 브루클린의 개성 있는 편집숍까지 ‘쇼핑의 천국’이라는 별명답게 온 도시가 다양한 스타일로 넘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아는 뉴욕 패션의 단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도시의 진짜 저력은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일삼는 수많은 젊은 크리에이터들로부터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패션위크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세명의 젊은이를 만났다.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물살을 어떻게 타고 노는지, 동시에 트렌드와 상관없이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 궁금했다. 도시의 진짜 힘은 이들처럼 꾸준히 경계를 부수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이들에게 있으므로.


① 가멘토(Garmento)

편집장 제레미 루이스(Jeremy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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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루이스

제레미 루이스는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히 학교에 의상 아카이브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곳에서 일하며 기존의 패션 잡지가 칭송하지 않는 과거 미국의 디자이너들에게 눈을 떴다. “많은 사람이 미국 패션을 지루하고 상업적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제레미는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의 패션을 공부하다 보니 지금 모두가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유럽 디자이너들은 옛날 미국 디자이너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러니한 건 동시대의 젊은 뉴욕 디자이너들이 그 유럽 디자이너들을 따라 한다는 거예요.” 제레미는 로이 할스턴, 페리 엘리스, 제프리 빈, 앤드레 워커 등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미국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잡지에 녹여낸다. 모두가 빠르게 셀레브리티와 트렌드를 좇는 지금, 가멘토는 패션의 역사와 미학에 천착한다. 하지만 제레미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후드 바이 에어, 패트릭 에르벨, 시키 임 등 뉴욕 패션의 지형을 바꾸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뉴욕 아트앤디자인뮤지엄에서 ‘미국의 남성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을 한다.

제레미의 철학을 담은 잡지 <가멘토>는 반년마다 한번씩 발행되는데, 현재는 3호까지 나왔다. 창간 이후 가멘토는 유수의 디자인 잡지에 소개되며 콘텐츠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제레미는 가멘토 말고도 보그, 아이디 매거진 등 패션잡지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패션을 바라본다. 독립잡지의 특성상 인터뷰, 기획, 섭외까지 모든 걸 혼자 해 조금 지치긴 하지만, 제레미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패션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영광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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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가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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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garmentozine.com


뉴욕의 옛 디자이너에게서

현대적 감성 발굴하는 ‘가멘토’

에스엔에스 최적화 성공한

하위문화 기반 잡지 ‘컴플렉스’

스포츠 기반한 기능성에 집중

다국적 프로젝트 ‘언두’


②컴플렉스 매거진

스타일 에디터 지안 들리온(Jian Del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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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들리온

지안 들리온을 만난 건 패션쇼와 패션쇼 사이 남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였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는 센트럴파크 근처의 링컨센터, 첼시의 밀크 스튜디오 등 맨해튼 곳곳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 열렸다. 그와 만난 건 첼시의 스탠더드 호텔. 이곳에서도 패션행사가 있었다. 지안은 막 쇼를 보고 오던 참이었다. 어제는 유명 래퍼 칸예 웨스트와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뉴욕 컬렉션 데뷔 기사를 올리기 위해 새벽 3시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패션위크에서 지안은 그 누구보다 바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쇼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했으며 컴플렉스TV로 방송할 리포팅 영상도 찍고, 하루 일정이 끝난 뒤에는 기사를 작성해 인터넷에 올렸다. 그가 하는 일련의 일들은 디지털 시대에 사는 패션 에디터의 역할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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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에 올라온 칸예 웨스트 X 아디다스 컬렉션 기사 by 지안 들리온

컴플렉스TV - 뉴욕패션위크 취재 현장

하지만 지안은 무조건 ‘빨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다는 아니라고 말한다. “힙합 가수 드레이크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누가 처음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제대로 하느냐의 문제다(It ain’t about who did it first, it’s about who did it right)’. 수많은 매체가 패션위크를 취재하죠.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자신만의 관점을 살리되 독자들이 정말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해요.” 그렇다면 컴플렉스는 어떻게 다를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걸 넘어 다층적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해요. 컴플렉스는 거리문화와 패션, 힙합, 그래픽아트 등 서브컬처(하위문화)를 기반으로 탄생한 매체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로 알 수 없는 숨은 이야기 등을 제공할 수 있어요.”

<컴플렉스>는 2002년 종이잡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그 어떤 매체보다 웹과 에스엔에스 최적화에 성공했다. 페이스북 ‘좋아요’ 수만 140만이 넘는다. 잡지 부수보다 좋아요 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 바이럴에 대한 압박도 클 것 같았다. 지안은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미지, 캡션, 짧은 제목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아요. 하지만 재밌는 건 정성 들여 쓴 기사도 바이럴이 잘된다는 거죠. 짧은 글과 긴 글, 독자들이 듣고 싶은 것과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사이의 균형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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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렉스 매거진 February/March 2015

홈페이지 : www.complex.com


③ 언두 매거진(Undo Magazine)

크리에이티드 디렉터 나이 바샤(Nai V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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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바샤

패션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몸매’다. 런웨이의 모델은 어느새 미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지난해 8월 창간된 비정기잡지 <언두>는 쿠키-커터(쿠키틀로 찍은 듯 개성 없는) 몸매와는 거리가 먼 다양한 아름다움을 전파하기 위해 탄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나이 바샤는 “언두가 다루는 패션은 단순한 ‘기능성’에 집중해요. 내가 이 옷을 입고 러닝을 할 수 있는지, 이걸 입고도 편안한가가 중요해요. 좀더 발전된 개념의 패션인 거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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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두 매거진 1호

<언두>는 세명의 여성이 핵심 구성원이다. 10년 넘게 그래픽과 영상 작업을 해온 나이 바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그가 뉴욕에서 조깅을 하다 만난 저널리스트 로빈은 편집을,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일러스트레이터 소피아 창은 디자인을 맡았다. 잡지 제작에 필요한 돈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를 통해 모았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콘텐츠를 제작하고 뉴욕 곳곳을 달리며 직접 찍은 스타일리시한 영상을 사이트에 올렸다. 곧 그들의 작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목표보다 많이 모인 돈의 일부는 에티오피아의 여성 달리기 선수를 돕는 비영리 재단 ‘걸스고타런’(GirlsGottaRun)에 기부했다.

운동을 하다 만난 친구들인 만큼 언두는 스포츠가 콘텐츠의 주된 뿌리다.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 브랜드 ICNY, 개인 트레이너와의 관계를 증진하는 방법, 서울의 러닝 클럽 PRRC1936까지 다루는 내용도 광범위하지만 잡지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진가, 모델, 아티스트, 칼럼니스트의 국적 또한 다양하다. 나이는 “뉴욕처럼 도시 간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에 사는 건 행운”이라며 “3호부터는 좀더 ‘인터랙티브’해질 전망이다. 해시태그(#)로 연결되는 시대,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의 독자들과 언두 매거진을 통해 교감하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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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두 매거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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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www.undoordinary.com

사진 김성민·각 매체 제공

*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