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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10시 30분 KST

‘삼시세끼' 나영석은 어떤 대중 심리를 건드렸나

OSEN

이쯤 되면 케이블의 반란 정도가 아니라 집안 단속에 나서야 할, 진돗개 하나 상황이다. 이제 지상파들은 자사 간판급 PD들의 저녁 식사 자리 등 동향 파악은 물론이고, 각종 인센티브 제도까지 손질해야 할 다급한 처지에 놓였다. 특히 에이스 중 하나였던 나영석 PD를 놓친 KBS 예능국은 요즘 그야말로 악몽의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다.

한때 금요일 밤의 최강자는 KBS 2TV ‘사랑과 전쟁’이었다. 타 방송사에서 뭘 갖다 붙여도 이 중독성 강한 막장 드라마를 이길 수 없었고, 결국 SBS와 MBC는 스스로 백기 투항 편성을 택했을 만큼 ‘사랑과 전쟁’은 이 시간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방마님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저비용 고효율의 표본으로까지 불리며 타사의 복통을 야기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5년 후. 요즘 금요일 밤은 CJ 계열사 tvN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슈퍼스타K’가 볍씨를 뿌리고 ‘꽃할배’와 ‘꽃누나들’이 열심히 물과 비료를 투하한 시간대를 ‘삼시세끼’가 알차게 수확해 먹는 모양새다. 지난주 방송된 ‘삼시세끼-어촌편’ 6회는 차승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13.5%의 시청률을 기록해 ‘정글의 법칙’ 등 동시간대 지상파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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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같은 구성과 차줌마-참바다 부부 캐릭터 등 다양한 성공 비결이 거론되지만, ‘삼시세끼’의 흥행은 ‘1박2일’을 통해 여러 노하우를 습득한 나영석 PD-이우정 작가의 콤비 플레이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연예인들의 복불복 게임을 통한 예측 불허와 반전의 묘미, 참치 통조림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수렵과 사냥 본능, 얼음 입수와 한 겨울 야외 취침을 통해 느끼는 대리 만족은 또 어떠했나.

‘삼시세끼’ 역시 산골과 어촌에 방치된 도시형 연예인들이 자급자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1박2일’의 야전 정신을 이어간다. 철저하게 가스레인지를 배제하고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밥과 찌개를 끓이는 원시성은 이런 야전 정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작진의 맥거핀일 것이다. 유해진이 신문지를 태워 장작에 불을 붙이기 시작할 때부터 시청자들은 ‘이번엔 뭐가 완성될까’ 군침을 흘리게 된다.

‘삼시세끼’가 시청자를 매료시킨 비결 중 하나는 이 프로가 딴 짓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씨스타를 섭외하지 않고, 연예인 가십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하루 세끼를 어떻게 근사하게 차려 먹고, 포만감을 만끽할 것이냐에 총력을 기울인다.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갓 잡은 생선을 기절시켜 회를 뜨고, 초장까지 직접 만들어 먹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 역시 심리적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끼니를 해결할 때마다 다양한 스토리와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데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트리오가 고생을 자초하는 것 같으면서도 부러워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들이 세상 근심 없이 오직 먹거리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아침 먹고 상을 물리자마자 ‘오늘 점심은 뭐 해 먹지’를 고민하는 그들을 보며 나도 한번쯤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슬로우 라이프와 함포고복에 대한 향수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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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삼시세끼’엔 시간에 쫓기는 보고서나 대출 이자 압박, 불완전 고용에 대한 불안감, 학원비 걱정 같은 게 전혀 없다. 낚시하고 먹고, 자고, 산책하거나 가끔 애완동물과 놀아주고, 닭 모이 챙겨주는 게 이들의 하루 일과다. 텃밭에서 생강과 당근을 뽑아 다듬고, 빌트인 오븐 부럽지 않은 아궁이에서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내는 모습이 식탐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으로까지 연결되는 건 복잡한 삶에 대한 피로감이 불러오는, 단순함에 대한 본능적 회귀와 맞닿아있다. 마치 원심력과 구심력이 공존하는 것처럼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삼시세끼’ 같은 프로가 일종의 자양강장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성공 비결은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이서진 차승원 같은 훈남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마늘을 까고 재료를 다듬는 모습을 통해 여성, 특히 주부 시청자들은 적잖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알아주지 않는 가사 노동을 ‘삼시세끼’를 통해 위로받는 일종의 보상 심리인 셈이다.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차줌마가 ‘집이 왜 이 모양이냐’고 버럭 하는 모습을 예고편에 활용한 것 역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 ‘삼시세끼’를 함께 보던 어머니가 한 마디 툭 던지셨다. ‘차승원 이러다가 요리책 내는 거 아니냐. 웬만한 여자들보다 낫네.’ 그런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도 내일 저거 한번 해먹을까. 근데 엄마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해?’ 돌아온 답이 귀를 때렸다. ‘엄마는 남이 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랬다. 주부들은 집밥이 최고라고 말은 하지만, 절대 외식을 싫어하지 않는다. ‘삼시세끼’는 누군가에겐 외식 권장 프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