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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09시 21분 KST

"고리1호 원자로 깨질 가능성 있다"

한겨레

[월요리포트] 원전 해체, 멀지만 가야할 길

이노 도쿄대 명예교수 인터뷰

1912년 4월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 해상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승객과 승무원 1513명이 숨졌다. 과학자들은 의문을 품었다. 거대 여객선은 왜 그렇게 허무하게 가라앉았을까.

일본의 원전 노후화 연구 1인자인 이노 히로미쓰(76) 도쿄대학 명예교수(금속학)는 “타이타닉의 침몰 원인엔 배의 강판을 연결한 금속못이 취화(脆化)됐기 때문이란 설이 있다”고 말했다. 타이타닉호의 강판을 연결하는 못이 불량 재료로 만들어져 유리처럼 깨져버리는 취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강철은 영하 등 낮은 온도에서는 충격을 받으면 이를 흡수해 구부러지는 대신 유리처럼 깨지게 된다. 그러나 불량 재료를 사용할 경우 영하가 아닌 상온에서도 깨지게 된다. 이를 ‘취화 현상’이라 부른다. 이노 교수는 “오랫동안 중성자선을 맞은 원전의 압력용기에서도 중성자 조사(照射·내리쬠)로 인한 취화가 발생한다. 자칫하면 원전의 압력용기가 깨지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의) 고리원전 1호기는 가동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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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 교수

-노후 원전의 ‘조사 취화’는 일반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다. 어떤 현상인가?

“일반적으로 강철은 온도가 낮아지면 취화된다. 쉽게 말하면 구부러지는 게 아니라 깨진다는 뜻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타이타닉 참사다. 이 배는 바다를 항해하다 빙산에 부딪혔다. 보통이었으면 재료가 구부러져야 했지만, 타이타닉은 불량 재료를 사용해 유리처럼 깨지고 말았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금속의 취성천이온도(강철이 취화되는 온도)가 27℃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철이 27℃ 이하에서 충격을 받으면 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철의 취화는 중성자를 지속적으로 쏘이는 결과로도 발생한다. 강철이 중성자를 맞으면 조직에 결함이 생기면서 취성천이온도가 올라간다.”(※천이온도는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온도를 뜻함)

-일본과 한국 노후 원전의 조사천이온도는 어느 정도인가?

“조사취화로 인해 원자로가 깨지면 정말 큰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력회사들은 원자로 안에 시험편을 넣어 취성천이온도 추이를 계속 관찰한다. 겐카이 1호의 경우 1993년 2월 조사에선 56℃였지만 다음 조사인 2009년 4월 조사에선 98℃로 올라갔다. 간사이전력의 다카하마 1호는 99℃이다. 고리 1호의 경우 1999년 107.2℃로 측정됐다. 이 수치를 근거로 압력용기 안쪽 벽에 얼마나 충격을 줄지를 보여주는 가압열충격온도를 산출하게 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제시한 평가 온도가 126.6℃(기준치는 149℃)였다. 이는 원자로 온도를 126.6℃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16년 전의 관측치를 기초로 한 것(그동안 조사취화가 더 진행돼 조사천이온도가 더 올라갔을 것이라는 뜻)이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가 방법을 쓰지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수치다.”

-원자로 압력용기는 고온과 고압에 견디게 만들어져 있다. 평소엔 원자로 내부 온도가 이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없을 것 같은데?

“일상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배관 등의 문제로 원자로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긴급노심냉각(ECCS)을 할 수 있다. 그때 원자로에 차가운 물이 갑자기 공급돼 냉각되면 원자로 안쪽은 갑자기 수축되지만, 바깥은 원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축을 저지하게 된다. 이때 만약 원자로 안에 균열이 있을 경우 압력용기가 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게 된다. 원전에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갑자기 냉각수가 공급돼 원자로 내부 온도가 취성천이온도 아래로 떨어지고, 원자로에 균열이 있다는 세 가지 조건이 있으면 원자로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런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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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 내부에 균열이 있는지 검사하지 않나?

“100% 완벽하게 검사할 순 없다.”

-조사취화로 원자로가 깨지면 어떻게 되나?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핵 폭주가 일어나 원자로 압력용기가 폭발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전을 냉각시킬 모든 전력이 소실돼 노심용융이 일어났고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됐다. 조사취화로 압력용기가 깨지면 어떻게 될지는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안다. 원자로 압력용기가 깨질 때 제어봉이 삽입되지 않으면 핵 폭주가 일어나 체르노빌형의 사고가 나고, 제어봉은 작동했지만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후쿠시마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취성천이온도를 규제하는 기준은 있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처음엔 취성천이온도가 200℉(93℃)를 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면 (원전의 노후화로) 이 규제치를 넘은 원전이 미국에서만 20기가 넘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자 이후 조금씩 기준을 완화했다. 일본에선 신규 원전의 경우 93℃를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원전에 대한 규제는 없다. 안전기준을 새로운 원전에만 적용하고 기존의 것은 그냥 쓴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 기준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고리 원전 가동 중지와 관련한 재판에 증인으로도 참석했는데.

“내가 겐카이 원전의 취성천이온도가 위험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더니 한국의 독자가 고리 원전은 더 위험하다는 얘길 전해왔다. 그래서 한국의 정보를 받아 연구를 했다. 2012년 9월 (고리 원전 가동중지 가처분 소송 때) 한국 법정에서도 진술을 한 적이 있다.”(※재판은 결국 패소했다.)

-조사취화 말고 원전이 노후화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뭔가?

“시간이 지나면 금속재료, 플라스틱 배선, 콘크리트 구조물 등이 약해진다. 배관 안을 흐르는 액체에 의해 배관 내부가 마모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특히 내부 마모로 인해 2004년 8월 미하마 원전 3호기의 2차 냉각계 배관이 터져 냉각수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사고가 나 4명이 사망했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전기 배선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플라스틱은 20년 정도밖에 견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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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원전을 폐로하는 데는 30년 안팎의 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일본원자력발전이 2003년 6월 일본 최초의 상업원자로인 도카이발전소의 압력 터빈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이다.

-원전 가동 연장을 결정할 때 원전의 모든 부분을 검사하나?

“전체 검사는 불가능하다. 전력회사는 원전을 가동하면 이익이 되니까 수명을 연장하려 한다. 정말 안전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심사를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전은 40년이 지나면 여러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미리 수명을 정하고 이를 넘으면 폐로해야 한다. 원전에서 큰 사고가 나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고리 원전 1호기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13년 고리 1호기와 쌍둥이 원전인 위스콘신주의 키와니 원전의 운전 정지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