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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07시 25분 KST

개그맨 기획사, 왜 자꾸 문을 닫는 걸까?

KBS

개그맨 50여명이 포진하며 한국 개그계의 강자로 군림했던 기획사 코코엔터테인먼트(이하 코코)가 사실상 폐업했다. 2011년 5월 설립한 코코는 개그맨 김준호가 공동대표로 참여한 회사다. 코코의 경영상 어려움은 지난해 11월 김아무개 공동대표가 회삿돈을 들고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알려졌다. “김 대표의 사기, 횡령, 배임 금액이 총 36억원에 이른다”는 게 김준호 쪽 주장이다. 김준호는 “설립자 김씨가 회사의 대표이사로 경영을 맡아 코코를 끌어왔고 저는 콘텐츠 대표로 연기자 영입과 육성 및 관리 책임을 맡았다”고 했다. 코코 쪽은 지난해 김 대표를 형사 고소했으며 김 대표는 현재 인터폴 수배 상태다.

사태의 정확한 경위를 따지는 것과 별개로, 코코의 폐업을 두고 개그맨 전문 기획사의 한계가 또다시 드러났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준호 전에도 박승대, 컬투, 박준형이 개그맨들로만 구성된 기획사를 설립해 ‘개그맨들의 왕국’을 세우려 했다. 모두 한국의 요시모토흥업을 꿈꾸었다. 요시모토는 103년 된 일본의 개그맨 전문 기획사다. 소속 개그맨만 6000여명이다. 아카시야 산마, 다운타운 등 일본의 유명 개그맨들이 모두 소속됐다.

그러나 한국의 개그맨 기획사들은 초반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무너지는 상황을 반복했다. 박승대, 박준형, 컬투, 김준호가 세운 기획사도 요시모토처럼 당시 잘나가는 개그맨들을 대거 끌어들였다. 요시모토처럼 모든 방송사를 상대로 하는 독점 체제는 아니었지만, 한국 개그판에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한 방송사 피디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의 80%가 특정 회사 소속 개그맨인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요시모토가 될 수 없었을까. 개그계 관계자들은 “앞의 굵직한 네번의 흥망성쇠 속에 한국 개그계의 현실이 엿보인다”고 했다. 신인 충원과 활동 무대 및 프로그램 제작까지 여러 측면에서 두 나라 개그계의 현실이 크게 다른 점을 지적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선, 개그계가 방송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개그판의 특수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출중한 신인을 발굴하는 문제부터 벽에 걸린다. 일본은 기획사가 신인을 발굴해 키우지만, 한국은 방송사 공채 시스템 아래 이뤄진다. 배우는 10년 전부터 기획사 중심으로 넘어갔는데, 개그맨은 방송사가 뽑아 교육하는 문화가 여전하다. 공채에 합격하면 1~2년 전속이 된다. 전속이 끝나도 다른 방송사 개그프로에 나가는 게 쉽지 않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개콘>은 한국방송 공채 출신들만 출연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콘>에 나가려면 공채시험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2007년 에스비에스 공채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한 김승혜도 2014년 다시 한국방송 공채 시험을 본 뒤 <개콘>에 출연중이다. 한 방송사 피디는 “공채 위주다 보니 기획사나 극단에서 신인을 모집해 키워도 결국은 목표가 방송사 공채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코코도 신인발굴팀이 있었고 몇명은 <웃찾사>에 나갔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방송 공채였을 것”이라고 했다. “방송사에만 목매지 않고 신인들을 발굴해 키우려면 극장이 있어야 하는데, 돈도 많이 드는데다 수익 측면에서 쉽지 않다”고 했다.

gag

gag 대표적인 개그맨 전문 기획사였던 코코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사실상 폐업하자, 개그계 안팎에선 또다시 ‘개그맨 기획사’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준호에 앞서 박준형, 박승대, 컬투도 개그맨들로만 구성된 기획사를 설립했지만 모두 문을 닫은 바 있다.

신인 발굴이 쉽지 않은 한국 개그맨 기획사들은 매니지먼트에 집중한다. 한해 7000억원을 버는 요시모토의 가장 큰 수익도 매니지먼트다. 그러나 우리나라 특유의 패쇄적인 개그 방송 문화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한 개그맨은 “<개콘>에 출연하는 개그맨이 다른 방송사 예능에 나가려면 제작진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허락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고, 그럼에도 나가면 <개콘>을 관둬야 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개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콘>을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 기획사들이 개그맨들을 여러 방송사의 다양한 예능에 출연시켜 수익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나마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가 타 방송사 출연을 자유롭게 하는 등 장벽을 허물고 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한때 컬투가 극장 1·2관을 운영하며 개그맨들을 에스비에스와 문화방송에 나눠서 출연시키는 식의 파격적인 시도를 했지만, 문화방송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이 또한 반짝 시도로 끝났다. 개그 문화가 발전하려면 장기적으로는 한 기획사의 개그맨들이 코너를 짜서 다양한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에 오디션을 보러 가는 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지적도 방송가에선 나온다.

최신화 요시모토 한국사무소 대표는 “개그맨 기획사가 성장하려면 제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요시모토가 매니지먼트와 함께 큰 수익을 내는 부분도 제작이다. “1주일에 80편을 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개그맨들로 구성한 프로를 다른 방송사에 납품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방송사가 갑인 상황에서 개그맨이 대표를 맡은 것도 제작진과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했다. 방송 제작 외에 또 다른 부가 수익을 내기에도 시장이 협소하다. 한 방송사 피디는 “코코도 모바일게임 개발을 추진하는 등 사업 다각화 노력을 했지만 큰돈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명 개그맨들을 앞세워 광고 수익 확충에도 공들였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개그는 한류에서도 비껴 있다.

한 방송사 피디는 “개그맨들의 방송 출연료도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시장도 없고 개그맨 자체도 돈이 잘 안되는데,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려면 큰돈이 필요해 자꾸 외부 투자를 받으려다 보면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과 마찰이 생기면서 결국 기획사가 주저앉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개콘>은 본방송 기준 회당 6억원의 광고 매출을 올렸지만, 개그맨 80명의 총 출연료는 7500만원이었다. 이런 한국적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몸집만 부풀린 것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예계 약자인 개그맨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회사는 필요하다. 하지만 신인 발굴이나 처우 향상 등 제구실을 하기 위해선 무작정 외형만 키우려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전한 수익구조를 낼 수 있는 내실 있는 기획사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