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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23일 06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23일 06시 26분 KST

고위공무원 47명이 말하는 박근혜의 정부 3가지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을 계기로 정부 주요 부처 고위 공무원 47명에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질문을 던져 22일 취합한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공직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박근혜 정부 들어 잦은 정책 혼선과 번복 등 공직사회가 갑자기 왜 이렇게 무능해졌는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년 국정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4명 중 15명이 ‘인사 실패’를 꼽았다. ‘소통과 조율 부족’이 12명으로 그다음이었고, 이어 ‘권위주의적 국정운영’과 ‘정책적 유연성 부족’이 각각 7명, ‘단기 성과 집착’ 3명 등의 차례였다. 그동안 민심과 일반 여론의 지적과 거의 차이가 없다. 공무원들의 답변 중에는 “생동감이나 활력이 사라졌다.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무기력과 위기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특히 많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부각된 ‘관피아’ 논란에 대한 불만도 컸고, 정권의 인사 무능과 불통뿐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통치 행태를 꼬집는 구체적인 답변들도 이어졌다.

1. 과도한 인사 개입, 늑장 인사…“이해할 수 없는 인사, 예측 불가”

공무원들이 비판하는 인사상의 문제들은, 통상 언론이 자주 언급했던 ‘수첩 인사’나 ‘밀실 인사’ 등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주로 고위 공직자들이 답변을 했기 때문인지, 각 부처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과도한 간섭과 개입을 비판하는 이들(7명)이 많았다. 상습적인 늑장·지연 인사로 업무 공백을 호소한 이들(4명)도 있었고, 인사 방향이나 내용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지적(3명)도 나왔다.

전직 장관급 인사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인사 개입과 늑장 인사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산하기관장 인사 때 청와대에서 온 명단은 대부분 충성하겠다는, ‘말이 안 되는’ 인사들뿐이었다. (인사안이) 청와대에 올라가면 (확정하는 데) 두 달 이상 걸리는데, 빨리 되는 게 있다. (특정 인사가 찾아와) 인사 청탁을 해서 안 받아줬더니 (청와대) 비서실장 통해서 얘기하겠다고 하더라. 다음날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검찰 등 권력기관 내부 인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검사장급(차관급) 간부는 “(인사를) 몇몇이 좌지우지한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실무진에서 뭘 어떻게 결정해서 올려도 그냥 블랙홀처럼 삼켜버리고 마니까 인사 작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도 “우리 부처에서도 (청와대 3인방의) ‘문고리 권력’에 의해 인사가 좌우되는 걸 봤다. 부처 내부에서 결정한 인사를 가지고 청와대를 다녀오더니, 내용이 확 달라지더라. ‘(청와대가) 이렇게까지 일일이 간섭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부 직원들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의 유명한 인사 문제 사례가 즐비하다. 지난해 말 국외 문화원장으로 내정된 인사가 외교관 비자를 받고 송별회까지 했는데, 엉뚱한 산하기관으로 발령이 나고 대신 외부 인사가 낙점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인사는 역량평가 기준에 미달하는 바람에 해당 문화원장 자리는 현재도 1년 이상 장기 공석 상태다.

늑장 인사로 인한 업무 공백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인사 속도가 너무 늦다. 책임장관제 하겠다면서 부처 인사나 공기업 인사를 청와대가 꽉 쥐고 있다. (청와대에서) 오래 걸리다 보니 1년 이상 공석인 경우도 있었다. 업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 초기 장관이나 총리 인선 때 ‘밀봉 인사’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예측하기 어려웠던 청와대의 인사 결정 방식이 청와대가 개입하는 개별 부처 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사회 분야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이 정부 인사는 정말 알 수 없다. 99% 결과를 확신해도 또 달라질 수 있어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자신이 경질 대상인지, 왜 경질되는지도 모른 채 기분 나쁘게 나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일하는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회 분야 부처의 또다른 공무원도 “관료들은 적임자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자리에 가는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해야 자신의 진로를 계획하며 조직에 충성할 수 있는데, 이 당연한 생리를 지금 정부가 너무 모른다. 단순한 선입관이나 왜곡된 정보만 믿고 부처의 세세한 인사까지 챙기려다 난맥상이 도지고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2. 소통과 조율 부재…“불통 원인은 무능?”

정부 부처 중 통일부는 청와대와의 ‘소통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자괴감이 가장 심한 곳으로 꼽힌다. 정부 초기부터 장관의 발언이 청와대에서 뒤집히는 일이 잦더니, 2013년엔 남북실무회담 3차 회담 중 수석대표가 전격 교체되고 지난해엔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된 통일부 핵심 인사가 8일 만에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우리는 당시 수석대표와 비서관이 교체된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이제는 청와대 지시 없이는 통일부 자체(판단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청와대의 정확한 지침을 받고서야 일을 시작한다. 당연히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교육부나 보건복지부도 지난 2년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 지난해 11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시·도교육감들에게 ‘누리과정 예산 5000여억원 국고 지원’을 약속했다가 친박근혜계 여당 지도부의 반대로 단박에 없던 일이 됐고, 기초연금과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준비했던 복지부의 의견이 청와대에서 뒤집힌 것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공무원도 “지난해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때 초안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까지 했는데,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바꿔 혼란이 가중됐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 공무원 사기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기’ 문제와 상관없이 ‘지시’받은 일 외에는 하지 않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불통의 원인을 컨트롤타워 부재와 능력 부족 탓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증세나 복지, 구조개혁 이런 논의를 하면서 정확한 진단 없이 너무 막연하게 이야기한다. 증세라고 하더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소득자 다 제각각이어서 그걸 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유형화한 다음에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게 잘 안된다”고 지적했다. 사회 분야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며 “정부 3.0의 취지대로 부처 간 협업, 소통·개방 등을 하라고 해놓고 (정책 관련 정보를) 공개해서 국회나 언론이 지적하면 책임을 따지고 혼내니, 추진이 제대로 안된다.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안 생긴다”고 진단했다.

외교안보 분야 공무원들의 답변 중엔 현 정부의 ‘불통’이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주의’와 이에 따른 유연성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물밑 접촉을 통해 합의를 해야 남북관계에 물꼬를 틀 수 있는데, 대통령은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이 때문에 관료들도 (더이상)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또다른 공무원도 “원칙도 좋은데 한번 정해지면 그냥 고집불통이다. 대북전단은 표현의 자유고, 청와대 상공의 삐라는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중잣대라는 생각을 안 한다”고 답답해했다.

3. 지시만 있고 토론은 없다…“권위주의 회귀, 가만히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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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 장관급 직책을 맡았던 한 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권위주의적인 방식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해양경찰청 해체 같은 결정도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다.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야 전화를 하니, 토론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수석들이 직접 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보고서를 부속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부속실에서 ‘그대로 하세요’ 하면 진행하는 거고, 반응이 곧바로 오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는 구조”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시와 이행’만 있을 뿐 ‘설명과 토론’이 없는 권위주의적 국정과 피드백이 상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정부 부처에도 연쇄적인 여파를 미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부처에서 올린 안이 청와대에 올라가서 바뀌어서 내려왔는데, 왜 바뀌었는지 부처에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국장급 공무원도 “공무원들이 정책 전문가이고 가장 많은 자료가 있으니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대한 상식과 판단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상식과 판단에 근거한 의견 수렴의 여지가 없다. 오직 오더, 주문만 성립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무원들의 답변 중엔 이처럼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가능했던 상명하복식 국정운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의외로 컸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지난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임기응변으로 일관했다면, 이번 정부는 상명하복과 규율이 너무 강해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원칙적·교조적으로 접근하고, ‘그분’ 말씀에만 따라야 한다. 뭐든 문제가 없이 하려니까 시기를 놓쳐 국민의 기대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편 보도를 보고 청와대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기사 관련해 보도 자막을 고쳐달라는 건데, 옛날처럼 언론에 ‘올려라, 내려라’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언론 환경이 많이 바뀌어 옛날처럼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이 전한 말이다. ‘시대착오적 언론관’으로 비판받으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던 이완구 국무총리의 식사 자리 발언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 고위 공무원은 사회문화 분야 한 장관의 방송 인터뷰가 불방된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해당 장관이 방송과 인터뷰까지 했는데, 당시 청와대 내부 분위기가 인터뷰 내용과 달라 방송사에 방송을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실제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분야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우리 부처 업무 관련 발표도 청와대에서 미리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 이후 ‘보안’을 강조하며 정보를 통제하는 청와대의 분위기가 각 부처에도 그대로 반영됐던 셈이다. 검찰의 한 간부도 “예전에 비해 검찰 조직의 총의를 모아가는 방식이 더 강화됐다. 특수부는 대검에 중수부가 사라지면서 시시콜콜 간섭이 많은 편이고, 공안 쪽도 법무부 쪽의 그립이 꽤 강해졌다”고 전했다.

세종시의 한 고위 공무원도 “업무와 인사, 두 분야 모두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을 열심히 잘해도 청와대 등 위에서 보는 방향과 엇나가면 물을 먹는다. 청와대 시각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많은 직원과 간부들이 어떻게 일해야 잘하는 건지 혼란스러워한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을 날 선 어조로 비판하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이렇게 말하는 게 사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부처에서는 ‘(위에서) 계속 밀고 내려오니 어쩔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