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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7일 1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17일 14시 38분 KST

"길에서 죽고싶지 않은데..." 내몰리는 쪽방 주민들

"겨우 노숙생활 면하고 쪽방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는데…이렇게 갑자기 나가라는 말은 길에서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에서 만난 주민 천부용(58)씨는 이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7일 동자동사랑방 등에 따르면 이 건물의 주인은 이달 초 "공사가 시작되는 3월 15일까지 모두 퇴거해달라"는 통보문을 건물 벽에 붙였다.

건물주가 지난해 12월 전문기관에 맡겨 구조 안전진단을 했더니 철거 및 구조 보강공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공사를 시작해야 하니 그전에 나가달라는 내용이었다.

건물주는 이 건물이 A∼E등급 중 하위에 속하는 D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세부지침에 따르면 D등급은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며,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동자동에서도 유독 월세가 싼 곳으로 알려진 이 건물에는 원래 42가구가 살았다. 건물주가 벽보를 붙이고 얼마 되지 않아 1명이 집을 비워 지금은 41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모두 홀로 살고 있으며 대부분 60∼70대의 기초생활수급자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정도 노숙생활을 하다가 겨우 몸을 누일 공간을 마련한 이들이다.

입주민들은 쪽방촌의 특성상 집에 들어올 당시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보증금 없이 15만∼17만원의 월세만 내고 지내왔다. 건물주가 입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셈이다.

건물주는 3월 공사 이후 쪽방을 다시 만들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건물을 지을지 밝히지 않고 있다. 퇴거 통보한 주민들의 재입주 여부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동자동사랑방과 입주민들은 지난 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탄원서 작성을 위해 건물주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입주민들은 건물주와의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이사할 쪽방을 찾아야 하지만 겨울철이라 빈방이 없고 지금보다 더 비싼 집에 들어갈 경제적 여건도 안 되는 탓에 꼼짝없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IMF 이후 10년 넘게 노숙생활을 하다가 6년 전 쪽방촌 주민이 된 천씨는 "여기에 총 네 동의 쪽방촌이 있는데 일단 시범으로 한 동을 비우면서 나머지 동도 차례대로 내보내려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업실패 후 노숙하다 10년 전 이 쪽방에 자리 잡은 김영국(58)씨는 "돈도 없고 여유도 없는 우리가 나가란다고 어떻게 바로 나가겠는가"라며 "결국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조승화 동자동사랑방 사무국장은 "쪽방은 노숙하던 분들이 절망의 끝 자락에서 겨우 갖게 되는 공간"이라며 "이런 쪽방에서마저 내쫓는 것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본질적으로는 사회 밑바닥 복지를 민간시장에만 맡겨 경제논리에 휘둘리게 한 것이 문제"라며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등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