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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3일 16시 17분 KST

문재인, '여론조사' 돌출카드에 역풍 맞았다

한겨레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위한 국회 본회의를 사흘 앞둔 13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여론조사로 인준 여부를 결정하자’는 ‘돌출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몇 시간만에 제안을 철회했다.

문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대화와 타협의 의회 정치를 부적격 총리 후보자와 맞바꿔서는 안된다”며 “만약 우리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여기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여야 공동으로 조사해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회의가 비공개에 들어가자, 참석자들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새누리당이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했다고 한다. 우윤근 원내대표조차도 이날 최고위에서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결국 회의를 거치며 문 대표의 발언은 “새누리당이 일방처리하지 말고 국민여론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김영록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문 대표의 발언은 곧 새누리당의 반격을 불러왔다. 같은 시각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문 대표 발언을 들은 뒤 “문 대표는 어제까지 원내대표간의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야당 대표께서 하루만에 말씀 바꾼 점에 대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은희 대변인은 “총리마저 여론조사로 뽑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의 극치”라며 날을 세웠다.

문 대표는 최고위에서 ‘여론조사 구상’을 밝히기 전날인 12일 측근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문 대표는 이완구 후보자가 총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정치공세가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면,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공정하게 실시해 이를 수용하자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표의 이런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론조사 제안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에서도 지방선거 기초의원 무공천, 기초연금 지급 문제,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유임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여론조사로 결론을 짓곤 했다. 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취약한 지도부의 리더십 때문에 여론조사라는 계량적 도구에 의지해 난국을 돌파하는 한계를 보여온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전대에서 선출된 대표라는 권위로 당을 힘있게 끌고가든가, 그게 안되면 여당과 타협과 협상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며 “리더십으로 표 단속을 잘해 당당히 표결에 참여할 것이지 왜 여론조사의 권력에 휘둘리느냐”고 지적했다. 이날 최고위 회의에 배석한 한 당직자는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할 수 있겠지만, 자칫 의회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프닝이 되어버린 이날 사태 이후 문 대표의 정무적 판단을 도울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과거 손학규 당대표 시절에는 당대표가 최고위원회 전에 박영선 정책위의장 등과 사전 협의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와 아젠더를 정했다”며 “문 대표에게도 그런 협의 체계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