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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3일 07시 05분 KST

직장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이유

한겨레

[매거진 esc] 라이프

2014년 2월 발행된 책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는 1년새 8만권이 팔렸다. 같은 작가가 같은 해 12월 발표한 <회장님의 글쓰기>도 1월 한달 동안 1만권이 팔렸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장석주 지음),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윤태영 지음) 등 나온 지 한달가량 되는 책들도 눈에 띄게 팔려나가고 있다.

참여정부 홍보수석실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백승권씨는 “몇년 전만 해도 한달에 4~5회 정도 글쓰기 강의를 했다면 지금은 매일같이 강의를 한다. 게다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글쓰기 강사로 데뷔하고 있다. 글쓰기강좌 저변이 넓어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도 최근 몇년새 글쓰기 강좌가 2배 정도 늘었다. 지난해 작가 고종석이 글쓰기 강좌를 엮어 <고종석의 문장>을 낸 데 이어 유시민 전 의원도 곧 글쓰기 책을 낸다. 글 좀 쓴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글쓰기를 책과 말로 가르치기에 나선 참이다.

지난 6일 케이티앤지 상상마당에서 열린 강원국의 ‘스피치라이팅 매뉴얼’ 강좌

누구나 매일 쓴다. 문명화된 인간의 보편적 도구인 글쓰기를 새삼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굴까?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글쓰기 책을 산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30~40대의 비중이 전체의 66.1%로 압도적이며 남녀가 반반씩이었다. 보통 여성이 책을 더 많이 사고, 특히 문학은 여성 독자가 80%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글쓰기는 유독 중장년 남성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직장에서 보고서, 이메일 쓰기도 업무능력으로 여겨지면서 실용 글쓰기가 세분화·전문화되는 추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라이팅 컨설턴트 강원국씨는 “‘보고서를 잘 쓰면 과장 땐 퇴근이 빠르고 부서장 땐 진급이 빠르다. 반대로 보고서를 못 쓰면 퇴직이 빠르다’는 말이 있다. 결국 회사는 보고서로 돌아간다. 그 안에 내공이나 일에 대한 열의가 다 들어 있다. 말단사원은 보고서로 승부해야 하니까 직장인들이 글쓰기 강좌를 통해서라도 배우고자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글쓰기 코치 백승권씨는 “과거엔 홍보팀에서 보도자료를 써줬는데 요즘엔 업무 담당자가 직접 보도자료를 쓰는 쪽으로 바뀌면서 특히 직접 글을 써야 하는 공무원들이 강좌를 많이 수강한다”고 전한다.

요즘 연예인들은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자기 트위터로 해명하고 홍보하기를 더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140자의 기회는 에스엔에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이유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김민영 강사는 “수강생의 20% 정도는 에스엔에스 활동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결국 사진밖에 못 올리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지는 못한다는 자괴감이 커져서 왔다는 사람들”이라며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데 글을 쓰려면 그냥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고 했다. 백남신(65)씨는 지난 1월 “내가 내 말을 쓰기가 쉽지 않아” 사회연대은행 시니어브리지 아카데미에서 여는 자서전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교사로 일하다 2012년 은퇴한 백씨는 “내 인생의 대하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렵다. 붓을 들어 자신을 표현할 용기를 얻기까진 한참 걸렸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으니 회고형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한 기업체에서 열린 백승권의 ‘기획보고서 및 보도자료 작성’ 강좌.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명로진씨는 “몇해 전만 해도 한국의 글쓰기 강좌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늘어났다. 이 강좌 저 강좌를 찾아다니면서 글쓰기를 배우고 또 배우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명씨는 “결국 에스엔에스로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나 열의가 해소되지 않는다. 종이책 한번 내보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하다. 특히 인문·경영을 전공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던 중년 수강생들은 자기 책을 한권 쓰면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고 전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글쓰기 강사들이 권하는 비결은 우선 독서다. 김민영씨는 ‘마감 있는 독서’를 제안한다. “기본적으로 읽기가 안 되니까 이야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감이 없다. 한 학기에 한 시간 정도 독서토론을 시키는데 강의평가를 받아보면 독서토론 만족도가 가장 높다.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마감 시간을 주고 책읽기를 시킨다. 독서 과제를 해내면 성취감이 높다. 글쓰기 다음엔 독서토론 강의가 뜨는 현상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강원국씨는 “보통 쓰면서 고치니까 글쓰기가 더욱 어렵다. 우선 자기 것을 드러내고 다음으론 독자 입장에서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도 충고했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글쓰기를 배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책을 쓰고 출판하고자 하는 욕망을 저술광, 메모광이라는 뜻의 그라포마니아라고 부른다. 밀란 쿤데라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고독하거나 권태로울 때 그라포마니아가 된다고 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날마다 쓰면서도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가치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독자들에게 확인받고 싶어서 사람들은 글쓰기를 배운다.

나에게 글쓰기는 □이다

글쓰기는 전쟁이고 고통이고 두려움이지만 강력한 유혹이기도 하다. 글쓰기와 문장에 대한 책을 낸 강원국, 고종석, 장석주씨가 ‘나는 왜 쓰는가’에 답하는 글쓰기의 이유.

“글쓰기는 호객 행위다. 식당 간판(제목)을 잘 달고 메뉴(내용)가 알차야 손님(독자)이 온다. 그러나 맛(재미)이 없고 건강식(효용)이 아니면 외면당한다. 나는 오늘도 식당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내게 글쓰기는 세상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바꿔보겠다는 욕망의 소산이었다. 다시 말해 넓은 의미의 정치적 욕망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심미적 욕망도 강하게 개입했다. 투명하고 아름답게 쓰인 정치평론, 그것이 내 글쓰기의 목표였다.”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 저자

“글쓰기는 밥이다. 날마다 읽고 쓰는 자는 항상 배고픈 자이다. 내면 고갈이 없었다면 글 같은 건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기까지 온 것은 불굴의 의지 때문이 아니다. 내 안의 끝도 없는 배고픔, 즉 갈망과 고갈이 만든 환각이 나를 ‘백지’라는 바다에 투신하도록 이끌었다.”

장석주,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