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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6일 09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06일 12시 33분 KST

을밀대, 진심을 우려내다 - 김영길 을밀대 사장

지금까지 IM LEADERS에서 만난 인물들은 마케팅이나, 광고 업계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인터뷰이는 다르다. 서울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한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줄 서서 기다리게 한다는 냉면집 ‘을밀대’의 김영길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40년 전통의 냉면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에서 크리에이터로 활약했던 사람이라면, 구미가 당길 것이다.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사진. 포토그래퍼 이재은 jaeunlee@me.com

서울에는 평양냉면 하면 딱 떠오르는 유명한 집이 몇 곳 있다. ‘을밀대’ 역시 그런 집이다.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을밀대는 차 한 대 정도 지나가는 골목길에 있다. ‘을밀대’ 간판이 없다면 식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간판이 없다 하더라도 점심시간만큼은 이곳을 못 찾을 일이 없다. ‘을밀대’는 1년 내내 냉면을 먹으려는 손님들이 줄 서는 곳이니까.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였었는데, 한 명은 인터뷰어로, 다른 한 명은 인터뷰이로 만나니까 반가우면서도 신기하다. 그것도 인터뷰이는 냉면집 사장이 됐으니까. 광고인이 가업을 이어받아 냉면집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재밌으면서도 놀라운데, 김영길 사장이 을밀대 경영을 맡은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일단, 을밀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을밀대가 지금 이곳에 들어선 것이 1976년이었으니까, 벌써 약 40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함께 운영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내가 인수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인수보다는 물려받았다는 것이 맞겠다(웃음).

김 사장의 아버지께서는 이전에 냉면과 관련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나? 혹시 평양 출신인가?

어린 시절에 냉면집에서 일을 했었다고 들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평양 출신이 아니고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고, 해방 이전에 대구로 내려왔다.

‘을밀대’는 평양에 있는 누각 이름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요새 젊은이들에게는 아마도 냉면집 이름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을밀대는 우리 집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을밀대는 1년 내내 줄을 서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그걸 보면서, 지금까지 을밀대를 있게 한 손님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래옥’이 연세가 많은 평안도 출신의 1세대들이 주를 이뤘다면, 우리 집은 그 세대보다는 젊은 층이 찾아왔다. 그 씨앗이 된 것은 문인들이다. 가게를 열었던 1970~80년대 이곳(마포) 근처에 출판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문인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그룹이 형성됐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그룹은 근처에 있는 서강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수들이었다. 또 여기에, 국내 대학에 교환 교수로 왔던 일본 교수들이 더해지면서 을밀대의 초기 손님층이 형성됐다. 그 뒤로 여의도, 광화문에 근무하던 언론 종사자들이 오면서 우리 냉면에 대한 소문이 빨리 퍼져나가 지금의 을밀대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몇 해 전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단골집이라는 기사도 났었는데.

구 회장님은 오래전부터 우리 집 단골이었다. 소문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우리 집에 에어컨 선물을 해줬다는 것이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다. 지금도 사장단과 종종 들른다.

하루에 오는 손님이 얼마나 되는가?

평균적으로 따지면, 4, 500명 정도다. 아무래도 우리 집은 여름에 장사가 더 잘되니까, 계절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다. 여름에는 천 명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을밀대를 유명하게 한 것 중 하나가 줄이다. 줄이 길다는 것은 맛집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렇게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하다.

한 2002년 정도 즈음이었다. 월드컵 이후부터는 더 많이 늘기 시작했고. 2010년 월드컵 때 김장훈과 싸이가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우리집이 나온다.

월드컵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인연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와서 찍고 갔다. 얼마 전에도 영화 촬영을 하고 갔다. 한효주가 나오는 영화인 것 같던데, 엑스트라만 50명 정도가 왔었다. 밤에 줄을 서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라더라(웃음).

“이렇게 평양냉면은 첫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맛의 기준을 흩뜨리는 독특한 맛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평생 먹고 싶은 소울 푸드이지만, 누구에게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음식인 것이다” - 『냉면열전(인물과 사상사)』 중 -

많은 냉면 중에서 평양냉면은 특별하다. 특별한 맛이 있지만, 맛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기가 모호하다. 심심하다고 하기에도, 싱겁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밍밍하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그러므로 손님 입장에서는 길들여져야 하는 음식이고, 만드는 입장에서는 손님을 길들여야 하는 음식이다.

© 포토그래퍼 이재은

우리나라에 냉면 붐이 인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에도 냉면은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이때 즈음이 아닐까 싶다.

맞다.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다녀오고 이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평양냉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재밌는 것은 우리 집이 1998년도에 을밀대라는 이름을 특허로 냈었다. 그때는 갱신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2005년), 우연히 생각나서 문의를 해보니 해지가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재신청하려고 하니까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을밀대가 고유지명이어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신청했을 때는 그쪽에서도 ‘을밀대’ 자체를 모르니까 그냥 해줬던 것이다. 그 뒤에는 냉면 붐이 일고 유명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고(웃음).

계속 냉면집 사장님으로 김영길 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대홍기획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광고인이었다. 경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광고회사 생활이 재밌지 않았나?

대홍기획 이전까지 합치면 약 13년 정도 광고 업계에 몸을 담았었다. 물론, 광고회사 생활은 재밌었다.

그러다가 1998년 돌연, 냉면집 사장으로 변신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선친이 “네가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이유다. 이전에도, 아버지가 계속 이야기는 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승합차를 구입한 다음, 여행 다닌다고 하더니 가게를 두고 나가셨다. 두세 달 가게를 돌보지 않다 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대로 가업을 잇게 됐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IMF가 오면서 구조조정이 필요했고, 우리 부서에서는 세 명 정도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었다. 당시에 김영길 사장이 “나는 가업도 이어야 하니, 나를 그 리스트에 넣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나도 기억이 난다. 뭐, 결국 나와서 훨씬 잘 됐다(웃음).

김영길 사장이 경영하면서부터 을밀대가 커졌다. 물려받고 나서 세웠던 경영방침이 있었나? 아니면 이왕 맡았으니까 규모를 늘릴 목표가 있었던 것인가?

음…. 그런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알려줄 만한 특별한 경영 방침이나, 마케팅 비법이 내게는 없다. 생각해보면, 그냥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면 되는 것 같다. 나란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욕심이 없다. 냉정하게 분석하면 나는 경영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디자인을 열심히 하거나,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에 더 맞는 사람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이렇게 냉면집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하고, 내가 시켜야 하고, 직접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체질에 맞지 않은 일들 말이다(웃음). 그래도 어쨌든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과 직원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니까, 착한 마음을 갖고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단골 입장에서 보면, 을밀대는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굉장히 많이 알려진 집임에도 뭔가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그렇다. 사실 요즘 잘나간다는 식당을 보면 짜여진 공식 같은 것이 있지 않다.

글쎄…. 나는 친절도 극친절을 싫어한다. 보여주기 위한 친절 말이다. 우리 집은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집 냉면 맛처럼. 직원들에게도 인위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말들을 하면 못하게 한다. 우리 집을 오랜 시간 찾은 손님들도 그런 것(인위적인 친절)에 대해 어색해 한다. 나는 나이가 비슷한 손님이 오면 친구처럼, 나이가 많으면 형처럼 대하고, 훨씬 연세가 많은 분이 오면 부모한테 하는 것처럼 한다.

“사계절의 별미 그 이름 평양냉면 / 동치미 국물와 고기육수가 어울려 / 깊고도 오묘한, 심심하고도 꽉찬 그 맛을 못 잊어 원정을 다닌다” - 큐비스토의 ‘평양냉면’ 중 -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사람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평양냉면의 진가는 내가 먹은 그릇 수가 늘어날수록 나타난다. 맛이 없던 평양냉면은 어느 순간 그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를 만난다.

© 포토그래퍼 이재은

좌석 수를 기준으로 보면, 1998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을 것 같은데.

두 배 이상이다. 매출은 그 이상이고. 1999년도 매출이 약 7,0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약 35억 원 정도다.

말 그대로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지금은 정체기가 오긴 했다. 세무사가 그러더라, “이 정도 매출은 중소기업 2, 300억 원 매출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가게 규모도 늘고, 매출도 늘고, 종업원도 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맛도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게 사실인가.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점에서 맛의 변화는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 이야기가 들린 것은 2003년쯤으로 알고 있다. 맛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운영할 때는 육수를 가마솥 같은 솥에서 만들었다. 2002년 이후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님이 늘어나니까 기존 솥으로 그 많은 손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좀 더 많은 양의 육수를 끓일 수 있는 솥을 디자인, 개발했다. 처음에 사용했던 솥 보다는 약 네 배 정도 큰 솥이었는데, 육수 비율을 맞춰서 했지만, 똑같은 맛이 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해서도 초기에 냈던 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한 번 변했다. 당시에는 손님들에게도 맛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했었다.

을밀대 냉면은 처음 먹었을 때 ‘무슨 맛이야?’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다른 냉면은 먹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김영길 사장이 생각하는 을밀대 냉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글쎄. 다른 음식으로 표현한다면 물이나 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밥이나 물은 특별한 맛이 없음에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지 않는가. 평양냉면은 물과 밥에 상당히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이 없게 만드는 것이 힘들다. 또한, 담백한 맛이다 보니, 손님들 또한 미묘하게 맛이 변해도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힘들다(웃음). 만일, 다시 음식 장사를 한다면 평양냉면이 아닌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발가벗고 음식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맛이란 것이 처음에는 길들이기 힘들지만, 길 한 번 들이면 이렇게 깨끗하고 오히려 맛없는 것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사장이 광고회사 출신임에도 을밀대는 그 어떤 마케팅 활동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 웹사이트, SNS도 안 한다.

제품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을밀대라면 우리가 만드는 음식이다. 광고나 마케팅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자연 그대로 있는 것이 제일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절 하지 않는다. 평양냉면처럼 담백한 맛으로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고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예전에 자꾸 TV에 나가다 보니까,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웃음).

광고 업계를 떠나기는 했지만, 을밀대를 위한 광고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지금은 정신도 없고 해서 생각만 했지만, 조금 안정되면 광고라기보다는 을밀대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영상집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

마지막으로 성공하는 식당 브랜드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해 보자. 음식, 주인의 열정, 종업원의 친절, 위생, 인테리어, 홍보, 식당의 위치…. 뭐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아무래도 음식이 제일 중요하다. 다음에 주인하고 종업원의 열정 등이 따라오고. 위생은 기본이고, 인테리어나 홍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식당을 시작하려는 후배가 있다면 무어라 조언해 줄 것인가?

평양냉면은 그렇고, 하려면 비빔냉면을 하라고 하고 싶다. 평양냉면은 단기적으로 승부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냉면집이 하고 싶다면 비빔냉면을 추천한다(웃음).

*월간 아이엠(IM) 2015년 2월호와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