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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9일 04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0일 11시 26분 KST

"이상득 의원 준다며 8천달러 걷어가"

[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① 뒷돈과 조작의 신화 - 페루·볼리비아 르포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사업이 정치의 복판에 섰다. 2월 중순부터 국정조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원외교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첫해 국정화두였다. 5년간 공기업이 총대를 메고 나선 80개 사업에 31조2600억원이 투입되었다. 자원외교 사업에 나선 민간기업에 준 성공불융자, 세제 감면 혜택 등을 합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조사 증인 출석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한겨레>가 국회의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앞서 ‘지면 국정조사’를 기획했다. 석 달 추적한 탐사기획을 다섯 차례에 걸쳐 내보낸다.

‘자원외교’ 명목으로 볼리비아를 방문 중이던 이상득 전 의원에게 국내 기업인들이 ‘뒷돈’을 챙겨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에서 자원개발 사업 중이던 광물자원공사의 김신종 당시 사장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인들에게 지시해 돈을 거뒀다는 것이다.

‘이명박 자원외교 1호’로 평가받는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선 석유공사 직원들이 쿠르드 정부 인사로부터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석유공사 전·현직 직원 2명이 카자흐스탄 브로커를 동원해 공사의 3850억원(3억5000만달러)짜리 사업 인수 계약을 성사시킨 뒤 뒷돈으로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31조원가량 투입된 초대형 ‘국책 사업’에서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불법 돈거래’가 적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국정조사의 주요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광물공사 사장 ‘찬조금’ 요구

“SD 숙소 로비서 3자에 건네”

볼리비아 뒷돈 수수 의혹은 201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상득 전 의원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축하사절단을 이끌고 18~25일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자원외교의 일환이었다. 김신종 광물공사 당시 사장이 동행했다. 이때 광물공사와 함께 자원개발 사업을 했던 기업인들이 8000달러가량의 찬조금을 거둬 이 전 의원 쪽에 건넸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2012년 광물공사 감사실에 접수됐으나, 공사는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한겨레>의 현지 취재를 통해 의혹은 구체화됐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만난 광산 사업가 정기태 켐볼 대표는 4일 <한겨레>에 “2010년 1월23일 오후 김신종 사장이 ‘이상득 의원에게 줘야 하니 2000달러씩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며 “나는 이날 밤 켐볼 등 두 회사 몫으로 4000달러를 마련해 건넸고, 다른 한국 기업들은 2000달러씩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물공사는 당시 대우인터내셔널, 엘지(LG)상사, 켐볼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볼리비아 코로코로 광산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 대표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했다. 그는 “이 의원, 김 사장 등 여럿이 라파스의 카미노레알 호텔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광물공사 전임 본부장이 내 돈을 받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7월 초 이런 사실을 광물공사 감사실에 진술했지만 “감사가 ‘증거가 없으니 덮고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 대표는 2012년 6월 리튬 개발 사업을 위한 컨소시엄에서 켐볼이 제외되자 광물공사를 비롯해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2010년 8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자원외교 특사’를 자임하며 모두 12차례 24개 나라를 찾아다녔다. 이 가운데 볼리비아만 6차례 방문했다. 이 의원은 <자원을 경영하라>는 본인의 책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동행한 사람들에게 돈을 거두지 않았다”고 썼다.

광물공사 쪽은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 김 전 사장은 <한겨레>에 “정기태 사장도 모르고, 그런 일 자체를 모른다”고 말했다. 중간에서 돈을 전달했다는 이아무개 전 광물공사 본부장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 쪽도 “있을 수 없다. 10원 ‘한 장’ 안 받았다”는 뜻을 밝혔다.

김홍규 광물공사 전 감사는 2012년 7월 정 대표 면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뒷돈 관련 진술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김 전 감사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녹음을 했으나 파일이 날아갔다”고 말을 바꿨다.

당시 녹음을 했다는 김아무개 광물공사 팀장은 “개인 휴대전화로 녹음했다”, “녹음 파일을 저장했으나 컴퓨터 하드가 날아갔다”, “(녹음한) 전화기를 버렸다”, “전화기를 아들에게 줬다”며 계속 말을 바꿨고, ‘전화를 확인하고 싶다’는 취재진에겐 당시 정 대표 면담 시점 이후에 출시된 휴대전화를 들고 나왔다.

볼리비아에서 20여년 거주하며 광물공사 사업에 참여해온 정기태 대표는 “필요하다면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MB 자원외교 1호’도 돈거래

석유공사 직원들 거액 사례비

의문의 돈은 정치인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에선 공기업 직원들이 직접 돈을 챙겼다.

<한겨레>가 석유공사의 자체 감사 결과 등을 입수한 결과, 사업 대상국인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계약 전 공사 직원들에게 ‘사례비’를 준 사실이 19일 확인됐다. 쿠르드 유전개발 건은 석유공사가 2008년 6월 계약을 체결해, 지난해까지 8494억원을 투입한 ‘이명박 자원외교 1호’ 사업이다.

석유공사 쪽 내부 자료를 보면, 2008년 2월 신규사업처 유전매입팀 윤아무개 팀장 등이 쿠르드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총리 일행으로부터 사례금 명목으로 1320만원(1만2000달러)을 받았다가 경고를 받았다. 총리 일행은 2008년 2월12~16일 방한해 바지안 등 쿠르드 지역 광구 참여에 대한 양해각서(MOU) 등을 석유공사와 체결했다. 실무 책임자가 윤 팀장이었다.

바르자니 총리는 방한 일정 마지막인 2월16일 서울 신라호텔 로비에서 공사 직원들에게 “성공적 행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사례”한다며 대외협력부장관을 통해 돈을 건넸다. 이후 공사는 윤 팀장이 돈을 회사에 자진 반납했다며 별도의 징계 없이 경고만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에도 수상한 대목이 많다. 2월16일 돈을 받은 윤 팀장은 그해 7월22일 회사에 신고한 것으로 되어 있다. 6개월가량 “사무실 개인 서랍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윤 팀장은 사례금을 받은 사실을 당시 신규사업1처장(신유진 현 본부장)과 신규사업단장(김성훈 전 부사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1처장은 “향후 쿠르드 정부 쪽에서 요구할 것들에 대비하여 보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행정 투명도가 떨어지는 국가를 상대로 불투명한 자금거래가 존재함을 방증한다. 하지만 윤 팀장 외 어떤 추가 감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윤 팀장은 당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례금이 전달되었고, 하찬호 전문위원(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의 투자유치티에프 전문위원)도 총리에게 후한 사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찬호 전 위원은 <한겨레>에 “윤 팀장은 알지만, 쿠르드 총리가 돈 줬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윤 팀장의 해명에도 의문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카자흐 사업때는 수십억 오가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장 류아무개(54)씨는 공사에서 퇴직한 동료 김아무개씨와 함께 대놓고 회사를 등쳐먹기도 했다. 2009년 공사가 현지 원유개발회사인 숨베사를 인수하는 과정이었다. 둘은 거래 중개인인 카자흐스탄 정유 사업가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류씨와 김씨는 정유 사업가에게 28억원가량(254만5000만달러)을 받았다. 결국 류씨는 징역 7년, 김씨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공사는 강영원 사장 취임 뒤 가능한 많이 해외 광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사건은 이런 외적인 힘이 작용되는 상황에서 생긴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탐사기획 -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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