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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4일 11시 31분 KST

흥미로운 빈티지 지하여행, 회현 지하상가

자전거를 타고 남산 라이딩을 마치고 내려오다 종종 들르게 되는 곳이 남대문 시장이다. 칼국수, 보리비빔밥, 왕만두 등 남대문 시장 별미 먹거리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다 시장통과 연결된 전철역 회현역 옆으로 특별한 시장이 눈길을 끌었다. 보통 ‘회현 지하상가’라 불리우는 이 곳의 정식이름은 ‘회현 지하쇼핑센터’다. 남대문 시장에서 을지로, 명동 신세계 백화점까지 지하로 길게 연결되어 흥미로운 ‘지하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한겨울 폭설이나 매서운 한파가 불어와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온갖 먹거리를 파는 시장과 가게들이 가깝고 지하상가엔 화장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가게의 주인장 아저씨에 의하면 최첨단 공기정화시설이 24시간 돌아가고 있어서 공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한다. 더불어 이 지하상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1960년 대 중반 불법 환전 상인들이 영업을 했던 속칭 ‘달러골목’이 남대문 시장과 명동 주변에 성업했다. 미군부대에서 달러골목으로 흘러나온 레코드들을 수집한 사람들이 장사를 하다가, 이곳 회현 지하상가로 내려와 음악 상가를 이루게 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상에 있는 한국은행과 서울중앙우체국의 영향으로 우표 및 기념화폐 수집점포가 이어서 생겨났다.

마니아, 오타쿠족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이 많다

회현 지하상가는 그 후 중고 오디오, 카메라, 역사 자료 등을 수집·판매하는 가게 등이 추가로 자리 잡으며 마니아라면 반드시 한번쯤 들러야 할 명소가 됐다. 특히 중고LP·오디오 가게는 전국 100여개 점포 중 15개 점포가 회현 지하상가에서 영업 중일 정도로 회현 지하상가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중고LP, 우표, 오디오, 수동 카메라를 취급하는 각종 수집상점들과 바로 옛 골동품과 빈티지 가구, 닥종이 인형 가게, 헌책방등이 밀집해있는 ‘회현지하상가’, 시간이 멈춘듯한 이곳을 지나가다보면 도시에서 바삐 사느라 잊었던 추억과 낭만,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운다. 디즈니사에서 나온 이채로운 만화우표, 88올림픽 때 발행된 기념주화, 고풍스런 디자인의 옛 화폐, 세계 여러 나라의 희귀 주화, 독특한 엽서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유명해진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 산다는 희귀 동물들 사진이 담긴 엽서가 너무 생생해 몇 장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옛날 화폐와 우표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매입하기도 한다고 하니, 우표나 주화, 화폐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겠다. 동전이 아닌 500원짜리 지폐가 반가웠다. 화폐가게 아저씨는 초기 우리나라의 화폐제작 기술이 부족해 영국 회사에 10,000원 권과 5,000원 권의 초상화는 영국 회사에 의뢰해서 만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영국 회사가 그린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 선생의 모습이 서양인과 비슷하다는 논란이 일었고, 500원 권의 이순신 장군부터는 국내 자체 기술로 표준 영정을 정하게 되었다고.

아직도 LP판이 사고 팔린다니 새롭고 새삼스럽다

지금은 구경하기 어려운 LP 레코드판은 회현 지하상가의 대표 상품이다. 명동에서 30년, 회현 지하상가에서 20년, 이렇게 대를 이어 50년째 LP 레코드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가게, 30만장의 LP를 창고에 두고 5만장의 LP를 진열해 마니아를 맞이하고 있는 상점 등 진기하고 정겨운 LP 가게의 풍경이 회현 지하상가를 채우고 있다.

소장하고 싶은 국내외 옛 명반들

중고 LP가게를 구경하다가 015B, 시나위, 레드 제플린, 스팅 등 나도 소장하고픈 국내외 명반들이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맘에 드는 LP가 있다면, 가게 안에 있는 턴테이블로 들어볼 수 있어 좋다. 김창완 아저씨의 LP가 눈에 띄어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감상을 했다. 디지털 음원으로 느낄 수 없었던 아날로그만의 감성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LP는 음폭이 커서 푸근하고, 음색이 풍성해 무척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LP판의 골을 긁는 소리가 포근하게 들릴 정도. CD가 보편화된 세상에 레코드판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을 만 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해 가왕 조용필, 지드래곤, 아이유, 장기하 등 여러 가수들이 LP앨범을 제작 발매하는 보기 드문 일이 생겼다.

LP(long playing record)가 발명 된 건 불과 70여 년 전이다. 녹음 시간의 한계로 여겼던 마의 3분대를 넘어설 수 있는 저장 장치가 탄생한 것. 음악의 대중화에 한 획을 그은 발명이었다. 하지만 CD를 지나 MP3의 시대에 이른 지금 LP는 구식 장치요, 음악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LP의 생산이 공식적으로 중단됐으니 음원 저장 장치로서 그 용도를 상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끊임없이 거래되고 사람들이 찾는 것이 LP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사랑, 슬픔이 담겼을 옛 카메라도 빠질 수 없다. 다종다양한 모양과 독일, 일본산 수동 카메라들이 마치 카메라 박물관에 온 듯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겠다. 조선시대 백자에서 여러 도자기와 무려 고려시대의 청자 등을 파는 어느 가게는 미술관에 들어가 예술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발길이 머물고 마는 수동카메라 전문가게

젊은 층에게는 새롭고, 중장년층에겐 새삼스러운 감회를 느끼게 하는 회현 지하상가. 특별하고 희귀하고 개성 있는 물건들을 쓰고 소장하기 좋아하는 마니아 혹은 ‘오타쿠족’의 천국이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 날씨에도 상관없이 아날로그와 앤틱(antique), 빈티지(vintage)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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