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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3일 04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13일 04시 42분 KST

[가계부채 경고음] 주택담보대출 65%는 이자만 낸다

349조 중 227조…몇년째 만기 연장 ‘연명 대출’도

집값 하락·금리 인상 땐 ‘가계 빚 폭탄 뇌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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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사는 40대 자영업자 김아무개씨는 2011년 집(아파트)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1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주택담보대출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최근 김씨는 거치기간(3년) 종료에 따라 원금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가 첫회차에 내야 할 원금과 이자는 150만원이었다. 불황으로 소득이 오른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갑자기 원금까지 갚으려고 보니 김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거치기간 연장을 신청해 원금 상환 개시 시점을 다시 2년 뒤로 미뤘다.

이자만 내면서 원금은 전혀 갚지 않는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227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데도 몇년째 만기를 연장하고 있는 ‘에버그린 론’(Evergreen Loan·연명 대출)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집값 하락이나 금리 변동 등에 따라 잠재적 대출 연체자가 될 수 있어 가계대출의 ‘숨은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house debt

12일 <한겨레>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금융감독원에 의뢰해 받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도래 규모 및 잔액 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349조6000억원 가운데 일시상환 대출(101조1000억원)과 원금 상환을 시작하지 않고 거치중인 분할상환 대출(126조1000억원), 즉 이자만 내고 있는 대출 규모가 227조2000억원(전체의 65%)에 이른다.

특히 일시상환 대출 101조1000억원 가운데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은 83조3000억원(2014년 9월 말 현재)으로, 같은 기간 전체 주택담보대출 만기도래 규모(84조1000억원)의 99%를 차지한다. 지난해 10~12월 9조9000억원, 올해 49조1000억원, 내년에 24조3000억원의 대출 만기가 다가오는 것으로 금감원은 집계했다.

일시상환 대출은 3년 이내 만기 상품이 주를 이루며, 집값 상승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계약 만기가 도래하면 대출 고객들이 ‘금리 쇼핑’에 나선다. 더 낮은 대출금리를 주는 은행으로 대출을 옮겨서 다시 일시상환 대출이나 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을 받는 식”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서 인쇄업을 하는 신아무개(45) 사장도 그런 경우다. 4년 전 그는 주택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7000만원을 일시상환 대출로 받았다. 해마다 만기 연장 시점이 돌아오지만 빚을 갚거나 분할상환으로 갈아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중에 목돈이 생기면 한꺼번에 갚겠다는 계획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시상환 대출의 만기 연장률은 매년 90% 안팎에 이른다. 2011년 90.4%와 2012년 89.5%, 2013년 88.0%를 거쳐 지난해 1~9월 중에도 89.5%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의 한 가계대출 담당자는 “일시상환 대출도 담보만 유지된다면 10년가량은 계속 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자만 내던 분할상환 대출자들의 원금 상환 개시도 임박해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2017년까지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분할상환 대출 규모는 84조원에 달한다. 올해 17조6000억원, 내년에는 30조6000억원에 해당하는 분할상환 대출자들이 원금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원금 상환 부담으로 인해, 자영업자 김씨처럼 분할상환 대출의 거치기간을 계속 연장하거나 다른 은행의 대출로 갈아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의 40대 직장인 박아무개씨도 최근 은행에서 빌린 1억8000만원의 아파트 담보대출을 또다른 은행 대출을 받아서 상환했다. 거치기간 3년이 끝나면서 한 달 145만원가량의 원리금을 내기 어려워, 금리가 더 낮은 은행의 거치식 대출로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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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거치기간 연장이 계속되면서, 이자만 내는 대출 규모는 2009년 말(212조8000억원)에 견줘 소폭 오른 채 거의 일정한 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정부가 뒤늦게 2011년 이후로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 나섰고 최근 몇년 새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이 과거보다 많아지면서, 그 비중은 전체의 80%에서 65%로 감소됐다.

‘에버그린 론’은 연체 위기에 몰린 기업이나 가계에 추가 대출을 해주거나 이자만 내면서 원금을 갚지 않는 대출을 말한다. ‘상록수’처럼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고 해서 ‘에버그린’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전문가들은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 소득 하락 등이 겹칠 경우 이자만 내는 대출 가운데 숨어 있는 ‘에버그린 론’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이자만 내고 있는 대출 전부가 부실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가운데는 원금 상환 여력이 없는 차입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텐데 이런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들도 이자만 잘 갚으면 만기를 연장해주기 때문에 속으로는 곪고 있어도 겉으로는 부실 가능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 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 가운데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답한 가구는 71.8%로 한 해 전에 견줘 1.6%포인트 늘었다. 또 부담을 느끼는 가구 가운데 원금 상환 및 이자 부담으로 저축 및 투자, 지출을 줄이고 있는 가구는 79.5%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상환 여건을 따져보는 쪽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지섭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은 단기·일시상환 방식의 계약 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은퇴 연령이 가까워지면서 부채를 감축해야 하는 시점에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차주(돈 빌린 사람)의 현재 소득뿐 아니라 미래 소득 흐름도 감안하는 방향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산정 방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가계부채 구조개선 ‘머나먼 길’

2%대 고정금리 대출 내놓는다지만

원금부담 큰 차주 유인효과 미지수

정부도 몇년째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 대출의 비중을 늘리는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잇따른 금리인하로 변동금리 상품 쪽이 대출받는 사람들에게 당장 더 득이 돼왔고,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로 갈아타도록 하는 각종 유인책도 상대적으로 상환 여력이 되는 이들만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가 적용되는 대출 규모는 전체의 4%(13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고정금리 대출이 20.9%에 달한다고 발표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런 차이는 일정기간 고정금리가 적용되다가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 금리 대출 가운데 상당부분이 정부 발표의 고정금리 대출에 포함됐기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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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같은 기간에 혼합형 금리의 비중은 24.8%(86조9000억원)나 된다. 박원석 의원은 “혼합금리 적용 대출이 대부분 10년 이상 장기대출로 평균 3.1년(2013년 말 기준) 안에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전환된다”며 “저금리 기조를 벗어나 시장금리가 정상화되고 변동금리가 적용되면 대출자의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혼합형 금리는 정부가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하기 전인 2010년 말만 해도 3.9%에 불과했다.

순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2010년 말 1.1%(3조원)에서 2012년 말 5.4%(17조원)까지 올라갔다가 2013년 말부터 다시 4%대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변동금리 대출 상품에 고객들이 더 몰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7년 말까지 40%로 비중을 늘리기로 한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도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24.1%로, 목표 달성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금리우대 등을 앞세워 유인해도 원금 상환 부담이 큰 차주들을 끌어들이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금리우대 등을 앞세운 정부의 적격대출 상품이 나오더라도 부실 위험이 큰 차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환 여건이 나은 이들이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오는 3월 파격적 금리조건을 앞세운 주택금융공사의 적격대출 상품을 내놓기로 하는 등 가계부채 구조개선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다. 적격대출은 은행이 장기·고정금리 상품을 팔면, 주택금융공사가 이를 사들여 주택저당증권(MBS) 등으로 유동화하는 구조다. 2012년에 처음 도입됐는데, 이번에 낮은 금리와 중도상환 수수료(대출잔액의 1.5%) 면제, 소득공제 확대 등의 인센티브를 추가해서 대출 전환 비중을 확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 쪽 구상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적격대출의 금리를 변동금리 대출에 견줘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2% 후반대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거치기간을 두지 않는 적격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그에 따른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올해부터 만기 15년 이상 고정금리 대출과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의 이자상환액에 대해 1800만원 한도의 소득공제가 신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