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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7일 12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7일 12시 54분 KST

노인을 위해 재산을 기부한 노광준 할아버지 : 전 재산 4억 기부천사는 "고마워요"만 반복했다

구로구 노인들의 영웅, 노광준 씨를 아시나요?

서울시 구로구 ‘온수 어르신 복지관’은 일주일 내내 북적거린다. 세월의 풍파를 만난 노인들이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한글을 배우고 영어, 일어, 중국어를 배운다. 또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강사의 구령에 맞춰 요가와 댄스를 하고 치매예방 교육을 받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손을 호호 불며 강의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마 젊은이들도 따라잡지 못할 열정이다. 이 복지관은 노광준 씨(87)의 기부금을 더해 건립하였고, 많은 어르신들의 젊은 함성으로 매일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구로구 온수 어르신 복지관, 댄스 수업

전 재산 기부를 위해 찾아온 헌옷 입은 노령의 천사

2011년 7월 6일, 한 노인이 남루한 모습으로 구로구청을 찾았다. 평생 양복 한 벌 맞춰 입지 못한 150센티의 작은 키에 왜소한 몸, 노인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입고 온 큰 점퍼는 소매를 세 번이나 접었고, 구멍 난 운동화를 신고 있어 새 운동화를 사 드리겠다고 하자 한사코 사양을 해 결국 헌 운동화를 드린 적이 있었던 분이란다. 그런데 도리어 그 노인이 기부를 하러 오신 것이다. “기부할 곳이 많은데 왜 하필 노인들을 위해 기부할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부인이 병으로 입원해 있는 동안 입원한 노인환자들을 둘러보니 누구도 노인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없어 노인을 위해 기부할 마음을 가졌다”고 했단다. 그동안 세상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갚고 싶었다고도 한다. 노인은 부인이 돌아가시자 평생 동안 모은 돈 4억 원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싸들고 구청을 찾았다.

그분은 그렇게 평생을 모은 돈 1억 8천만 원과 고향의 땅을 판 돈 2억2천만 원을 합한 4억 원을 노인들을 위해 써 달라고 구로구청에 기부를 했다. 그 기부가 씨앗이 되어 구청에서는 17억 원을 더 보태 지금의 구로구 온수 복지관을 지었다. 이 건물 내에는 어르신 복지관, 보훈회관, 대한노인회가 입주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그분의 거룩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어르신복지관 대형 홀 입구에는 그분의 이름을 딴 ‘노광준 홀’ 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구로구 온수 어르신복지관

노광준 할아버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 역시 어르신복지관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서, 노광준이란 분의 소문을 듣고 항상 그분이 궁금했다. 우리 노인들을 위해 영웅적인 일을 한 그 분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경로당에 전화를 걸었다. 몇 일 전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직도 퇴원을 안하셨다는 소식에 노인이 계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환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 , ‘인터뷰는 가능할까?’ 갑자기 머릿속이 바쁘다. 노광준 87세. 노인은 입구에 자리하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간병인에게 취재차 방문했다고 하자 주무시고 있는 어르신을 “너무 오래 주무셔도 안 된다”며 부득불 깨운다.

구로 고대병원에 입원 중인 노광준 씨 (2014 . 12 . 19. 촬영)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자한 얼굴, 백발의 머리에 웃음도 잃어버리고 만사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닌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인사를 하며 찾아온 이유를 말하자 “고마워요”하는데 그제야 메마른 얼굴에 가녀린 미소가 돌았다. 환자분인지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고향부터 여쭤보았다.

노인은 “전북 군산이여”라고 대답한다. 추가로 “읍은 어디세요?” 라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옥구”라는 답을 힘겹게 받아냈다. 그리고는 “고마워요”하며 소년처럼 웃으신다. “결혼은 몇 년도에 하셨어요? 몇 년 되셨어요?”라는 질문에는 “십년”이라고 대답한다. 순간 인터뷰를 위해 준비했던 질문은 머릿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엉뚱한 대답과 무표정한 얼굴에 더 이상의 질문은 어려웠다. 기부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건네자 “내가 남을 돕는 걸 좋아했어”, “고마워요”라는 말만 반복하신다.

병환 중인 노인에게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점점 미안해졌다. 불과 3년 전만해도 총기가 좋으시더니, 앉아있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모두 힘겨워 보였다. 나는 할 말을 잃어 그분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마냥 손등을 쓰다듬었다. 지압도 해보고, 행여 가죽만 남은 손에 멍이 들까봐 다시 마사지를 하며 “악인은 벌을 받아도 이런 분은 건강하게 살아야하는데”하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러온 내가 미안한데 그분은 자주 “고마워요”라는 말씀을 하시는걸 보니 무척 외로워 보였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방해를 하는 듯 끄집어내질 못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빙그레 웃기만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그저 손을 쓰다듬고 있자하니, 살아계시되 무엇하나 할 수 없는 허수아비 인생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봉사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걸 느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을 나오니 12월의 쌀쌀한 겨울바람이 목을 잔뜩 움츠리게 하고 구름 속에 갇혀진 저녁 해가 그분 마음처럼 답답하게 느껴서 서글픔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노광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이름이 무척 힘차 보여 나는 젊은 재력가가 자신의 재산의 한 귀퉁이를 뚝 떼어 기부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노령의 노인인걸 알고 새삼 부끄러웠다. 누구나 돈이라면 벌벌 떠는데 전 재산 4억 원을 기부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우리 구에도 이런 영웅이 계시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한 노인의 크나큰 배려로 우리 구의 어르신들은 일주일 내내 즐기며 건강을 챙기는데 그 분은 현재 이승과 저승의 기로에서 언제 퇴원할지 알지도 못한 채 병마와 외로운 사투를 하고 있었다. 어떠한 보답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사랑을 남긴 87세의 천사, 한 개의 밀알이 썩어 많은 수확을 하듯이 한 노인의 큰 희생은 오래도록 많은 어르신들에게 힘찬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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