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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4일 11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4일 11시 29분 KST

'야쿠르트 아줌마'는 그냥 아줌마가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원인 ‘야쿠르트 아줌마’ 김재숙(62·사진)씨는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터줏대감이다. 1989년, 용산전자상가가 막 조성되기 시작한 무렵부터 허허벌판에 자리잡고 앉아 상가 사람들에게 야쿠르트 판매를 해왔다. 일단 담당 판매구역을 배정받으면 일을 그만둘 때까지 구역을 바꾸지 않는 한국야쿠르트의 방침 덕에 26년간 그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상가에 입점해 있는 상인들과 ‘끈끈한 엑기스’ 같은 정이 있어. 내 자식보다 어린 아이들이 ‘이모’ 하며 턱 안기면 아들 같고, 장사 안돼서 다른 건물로 갔다가 잘돼서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 있으면 반가워서 포옹도 하지.”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 한국야쿠르트 본사에서 만난 김씨는 ‘아이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일터에서 그는 ‘아줌마’가 아니라 ‘이모’다.

“사람들이 바쁠 때는 ‘걱정 마, 내가 해줄게’ 하고 커피도 대신 사다 주고, 배달이나 심부름도 해줘요. 상가 직원들은 커피믹스에 ‘이모 거’라고 써놓고 제 몫을 챙겨주죠. 용산역에서 헤매다 전자상가로 넘어온 ‘시골 양반들’에게는 길 안내도 해줍니다.”

발효유 등 건강기능식품 전문회사 한국야쿠르트가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방문판매를 처음 도입한 것은 회사 태동기인 1971년이었다. 47명으로 시작해 90년에 7342명으로 늘었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늘어 2005년부터는 1만3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매출 1조원가량, 발효유 시장 점유율 1위(41%)인 이 회사 매출의 95% 이상이 전국 방방곡곡에 포진한 야쿠르트 아줌마로부터 나온다. 사업 초기엔 냉장물류 시스템도 없었고, 냉장고도 널리 보급돼 있지 않아 손수레에 싣고 가 집집마다 야쿠르트를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기혼 중년 여성의 일자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의 인기는 높았다. 89년 야쿠르트 아줌마 생활을 시작한 김재숙씨는 “나도 모집에 지원해 1년이나 기다려 겨우 자리가 났다”고 회상했다.

기혼 여성의 일자리로 야쿠르트 아줌마는 ‘괜찮은 일자리’일까? 우선 짚고 가야 할 것은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국야쿠르트 ‘사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므로 회사에서는 4대 보험 가입, 교통비·식대·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기본급도 없다. 토요일을 빼고 주 6일 일하는데 연차휴가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아프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를 대비한 지원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않다. 다만 일하다 다쳤을 경우 회사에서 치료비를 지급하고, 퇴직금은 아니지만 이율이 높은 목돈마련제도인 ‘적립금’을 운영한다. “개인사업자다 보니 딱히 ‘정년’도 없고 해고할 수도 없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실제로 78살의 최고령 야쿠르트 아줌마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와 같은 고용 형태를 회사 쪽에서는 ‘개인사업자’, 노동계에선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부른다. 보험모집인, 정수기 관리사, 학습지 교사처럼 명목상 ‘개인사업자’이지만 독자적 사무실도, 작업장도 없이 사실상 다른 사업자의 사업에 편입돼 근로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야쿠르트 아줌마가‘괜찮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중년 여성 일자리에 견줘볼 때 ‘나쁜 일자리’로 볼 수도 없다고 말한다. 평균연령 44살인 야쿠르트 아줌마는 하루 평균 6.8시간 일하고 월평균 17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야쿠르트 제품을 1개 사면 제품값의 25% 정도가 야쿠르트 아줌마의 수입이다. 마트 수수료(18%가량)보다 높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3년 여성가족패널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19~64살 여성 가구원 1만1234명 중 여성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수입은 140만원가량이었고, 여성 특수고용 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158만원이었다.

근무지가 집과 멀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근무시간이 비교적 탄력적인 것은 육아며 가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기혼 여성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집안일이 있을 경우 아침에 배달 업무만 마치면 퇴근해도 규제하는 사람이 없고, 정해진 휴가는 없지만 한동네에서 오래 일한 덕에 소비자와의 관계가 돈독해 양해를 구하고 2~3일치 배달을 미리 하는 방식으로 ‘짬’도 낸다.

게다가 한국야쿠르트의 관리 전략은 다른 방문판매에 비해 야쿠르트 아줌마 일을 덜 경쟁적이고 더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화장품·보험 등 다른 방문판매 업종을 거쳐 야쿠르트 아줌마가 된 박성희(44)는 “야쿠르트는 영업 구역이 철저히 나눠져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단위 영업소에서도 우수 판매자 포상은 있지만, 판매 성과를 비교하는 표를 벽면에 붙이는 등의 직접적인 경쟁 유도는 없다. 그래서 26년 경력의 김재숙씨나, 13년 경력의 신영숙(50)씨나, 3년 경력의 박성희씨의 월수입은 170만~210만원 사이로 큰 차이가 없다. 관리하는 고객도 180~200명 정도로 비슷하다.

신씨는 “야쿠르트 아줌마란 것이 자랑스러워 어디서도 숨긴 적이 없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야쿠르트 아줌마는 40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된 여성 일자리라는 면에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 객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일자리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들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일자리다. 깔끔한 복장에 지역사회 공헌자라는 이미지도 있다. 독거노인 돌봄 등 봉사활동은 무급이지만, ‘봉사는 여유 있는 계층에서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 탓에 야쿠르트 아줌마의 자부심을 오히려 키워줬을 것이다. 고도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아줌마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일방통행’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야쿠르트는 대형마트·편의점 등 유통 채널이 범람하는 지금도 유통 채널을 야쿠르트 아줌마로 단일화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 매출 비중 5% 이내인 마트 등에서도 끼워팔기나 할인판매를 하지 않으며 야쿠르트 아줌마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 임채운 교수(경영학)는 “다른 유통업체에 물건 공급을 시작하면 방판이 위축되며 유통 채널 간 갈등이 일어난다. 방판, 로드숍, 백화점, 온라인 판매 등을 병행하는 화장품업체의 경우가 그렇다. 채널 갈등이 일어나면 방문판매자들의 충성도가 떨어져 여러 브랜드 제품 판매를 시작한다. 방판은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유통업체가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방문판매가 유지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소비자들도 정기적으로 같은 제품을 마셔야 하는, ‘구속력이 높은’ 방문판매보다 유통업체에서 이것저것 비교해보고 한번에 쇼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보험처럼 자세한 상품 설명과 맞춤형 설계가 필요한 상품, 화장품처럼 방판에 적합한 고가·고부가가치 제품과 대형 유통에 적합한 저가 제품이 공존하는 형태라면 방문판매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발효유는 둘 다 아니다. 임 교수는 “방문판매는 관리는 용이하지만, 인건비 비중이 높고 한 사람이 전달할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어 확장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판매원을 늘리면 최소수입 보장이 안 돼 판매원들의 충성도가 떨어진다. 방문판매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새 유통 채널을 발굴하는 것이 한국야쿠르트의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가정 아래 야쿠르트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외국에서는 방판으로 성공할 수 없는 상품을 ‘엄마의 정성’으로 마케팅해 성공한 특이한 사례다. 아파트가 많다는 지리적 장점도 있었다. 점포 유통에 비해 비용 대비 수익이 명확하고 불황기에 신축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앞으로는 서비스업종에서 고용이 창출돼야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사람이 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치, 판매인력들의 노하우가 훨씬 고평가된다. 고객 분석을 더 철저히 해서 노하우를 축적하면 불황기에 유리하다. 야쿠르트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