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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1일 10시 52분 KST

서울대공원, 동물 4분의 1 퇴출한다

한겨레
잔점박이물범

서울대공원 동물원 관람객들에게 수달은 ‘귀요미’로 통한다. 미끈한 몸매로 재빠르게 물살을 헤쳐가 카메라에 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동물원에서 수달 부산이(암컷·10살)와 삼척이(수컷·10살), 서천이(수컷·10살)가 누는 똥은 귀한 존재다. 동물원은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수달 똥을 수거해 성호르몬을 분석하고 있다. 피를 뽑으면 손쉬울 일이지만,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23일 수달사에서 만난 서울대 수의학과 대학원생 오카모토 유미코(24)는 “특별한 약을 먹은 수달의 똥만 반짝거리는데, 이 똥을 수거해 번식 주기 등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사육하는 수달은 야생에 견줘 번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귀요미’로 통하는 수달 삼척이가 사육사가 준 먹이를 물고 보금자리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수달 번식에 성공하면 일본 도쿄의 동물원으로 보낼 계획이다. 해안도로 ‘로드킬’과 모피를 얻기 위한 사냥 탓에 수달이 멸종해버린 일본의 수달 복원을 돕기 위해서다. 윤정상 서울동물원 동물연구실 팀장은 “다른 동물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에도 수달은 바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에 동물원 입장에서는 전시 가치가 높은 종”이라고 했다. 동물원 쪽은 수달 외에도 오랑우탄·고릴라·침팬지 등 영장류와 기린, 코끼리 등 동물 6종의 종을 보전하기 위한 호르몬 분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변해야 산다…동물종 4분의 1 ‘감량’

서울대공원이 본격적인 ‘군살 빼기’에 들어갔다. 수달처럼 반드시 필요한 ‘기초 체력’과 ‘필수 영양소’는 남겨서 적극적으로 종 보전을 하는 대신, 개체 수가 많고 전시 가치가 떨어지는 동물은 굳이 창살 안에 가둬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1909년 문을 연 ‘창경원’ 시절을 포함해 한국 동물원 105년 역사에서 동물원이 종 보전·관리 계획을 내놓기는 처음이다.

전체 동물 333종 2732마리를 3개군으로 나눴다. △동물원에서 내보낼 동물(정리종) △적정 개체 수를 맞춰 전시할 동물(유지종) △적극 번식시킬 동물(전략종)로 구분했다. 정리종은 서울대공원이 보유한 동물 종의 4분의 1이 넘는 89종(242마리)이나 된다. 전시 가치가 떨어지는 물개와 너구리, 뉴트리아, 잡종이 많은 자넨염소, 야생성이 강한 고라니, 희귀성이 떨어지고 애완용으로도 키우는 라쿤 등 포유류 40종(102마리), 번식이 안 되는 고방오리와 쇠백로, 폐사율이 높은 큰고니 등 조류 23종(47마리)이 포함됐다. 살모사·누룩뱀·꽃거북 등 양서파충류 26종(93마리)도 서울대공원을 떠난다. ‘정리’ 방식은 다른 동물원과의 교환이나 증여다.

오랑우탄

수달처럼 적극 번식시켜 나갈 전략종은 58종(636마리)이다. ‘혈통이 훌륭하고 반출 가치가 높아서’(수달), ‘세계 최고 높이의 타워가 있어 전시효과 좋아서’(침팬지), ‘희귀하고 수명이 길어서’(코끼리) 등이 선정 이유다. 관람객들이 좋아하는 대형 포유류가 많이 선정됐다.

이런 기준을 통해 큰돌고래·남방큰돌고래·아시아코끼리·오랑우탄·침팬지·그물무늬기린·말레이곰·쌍봉낙타·라마등 포유류 38종(303마리), 쿠바홍학·황새·오색앵무·따오기류 등 조류 15종(211마리), 남생이·샴악어 등 양서파충류 5종(122마리)이 전략종에 포함됐다. 서울대공원은 번식이나 외국 동물원으로부터의 수입(교환)을 통해 이들 종은 더 많이 확보할 계획이다.

적정 개체 수만 유지해 전시할 ‘유지종’은 186종(2104마리)으로 가장 많다. 사막여우·로랜드고릴라·꽃사슴·표범·사자·늑대·단봉낙타·여우·삵·독수리·구렁이 등이다. ‘내실에 비해 과다 보유’(사자), ‘전시가치는 높으나 값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음’(사막여우) 등이 선정 이유다.

서울대공원은 “국내 다른 동물원의 동물 보유 현황, 개체의 번식 및 폐사 정도, 사육 환경, 관람객 선호도, 토종 여부와 희귀성, 종 보전 및 복원 가치, 연구· 교육적 가치를 두루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공원의 변화는 이제 ‘종의 다양성’을 앞세우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최근까지 동물원들은 ‘종 보전’보다는 ‘오락과 휴식’을 강조했다. 더 많은 종과 개체 수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 서울대공원도 밖으로 내보이기 부끄러운 역사가 이어져왔다. 야생에서는 엄연히 다른 종으로 구분되는 아종끼리의 교배가 이뤄진 적도 많았다. 호랑이가 25마리나 있지만 러시아에서 들여온 두 마리만이 시베리아호랑이 순종이다. 피임을 하지 않은 잡종 오랑우탄의 출산으로 또다른 잡종 오랑우탄 새끼가 태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동물원 폐지’ 목소리까지 나오는 지금은 ‘종 보전’이 동물원이 존재해야 할 주요 이유로 꼽힌다. 국내 동물원 중 맏형 격인 서울대공원에서는 패팅(먹이주기)·동물 만지기·야간개장 등의 ‘반동물적’ 프로그램들은 이미 동물단체의 요구로 사라졌다. 30년 전 개원 당시 서울대공원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돌고래쇼장은 ‘제돌이’ 야생방사 뒤로는 존폐 논란을 만났다.

노정래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어미와 새끼를 분리해 운영하는 인공포육장도 개선했다. 하늘다람쥐와 산양 서식지 보전 캠페인도 하고 있다. 동물복지와 종 보전 기능을 강화하는 동물원으로 변하려고 노력중”이라고 했다.

사막여우

■ 야생방사 돌고래가 전략종?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서울대공원의 변화를 반기면서도 한계 역시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관람객들한테 인기가 없어 상업적 이용가치가 적은 동물이나 짝을 찾지 못해 번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정리종으로 지정됐다. 반면 전시 가치가 높고 번식이 가능한 동물은 전략종으로 선정했다. 야생방사를 한 제돌이와 같은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수컷 2마리만 보유하고 있는데도 정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을 하겠다고 한다.

돌고래를 포함해 영장류와 코끼리 등 ‘전시 부적합종’ 대부분이 전략종으로 선정된 점은 서울대공원의 변화에 동물복지 측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가장 큰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이 종 관리 계획을 세우면서 전시 부적합종인 코끼리를 ‘정리’하기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학계와 동물보호단체들은 영장류, 코끼리, 돌고래, 북극곰을 전시 부적합종으로 꼽는다. 높은 지능 때문에 동물원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등에서는 일부 법학자와 동물보호운동가 사이에서 영장류와 돌고래 등에게 그들의 삶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법적 권리’를 주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는 “이제라도 개체별로 구분해 관리하겠다는 선언은 환영한다. 그렇지만 종 보전이라기보다 번식이 가능한 종을 선별해 관리하는 계획으로 보인다. 번식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기존 동물원의 한계는 여전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물원이 인력과 자원, 시설 등 ‘자신들의 능력’을 면밀하게 살핀 뒤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선진 동물원의 종 관리는 동물종을 정하기 전에 그 동물원이 현재의 사육시설에서 적정하게 보유할 수 있는 동물이 몇 마리인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은 종 보전과 함께 전시 효과, 관람객 교육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노정래 동물원장은 “멸종위기종 복원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종 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 것도 종 보전 정책의 하나다. 코끼리는 전시 부적합종에 해당하지만 서울대공원의 사육시설 환경이 나쁘지 않다. 동물원에서 번식·연구하는 것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좋다고 판단해 전략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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