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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5일 17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5일 17시 56분 KST

은행 없는 은행, 지갑 없는 지갑의 '핀테크 시대'가 온다

60년 넘게 이어온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물물교환과 화폐를 거쳐 1950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신용카드는 ‘제3의 화폐’로 불렸다. 그러나 반세기 넘도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신용카드도 이른바 ‘핀테크’(Fintech) 개념의 등장으로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핀테크라는 단어의 표면적인 뜻은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합한 말이다.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과 언론 등은 내년을 지배할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핀테크를 꼽았다. 그만큼 금융과 기술의 융합이 가져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전자상거래가 자리잡고 있는 환경에서 기술을 앞세워 결제·송금·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한다는 건, 기존 금융산업을 재편할 만큼의 영향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핀테크는 여전히 ‘표면적인 뜻’에만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외에서 적용 가능한 핀테크 기술을 한번 상상해보자.

금융+기술, 2015년을 지배할 열쇳말

① 토요일 오전, 직장인 김민수(가명)씨는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결혼식장 근처 은행 현금입출금기(ATM) 앞에 선 그는 지갑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신용카드 대신 전자지급 결제대행 서비스를 쓰고 있는 그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ATM 화면에 나타난 QR 코드에 대고 계좌의 돈 10만원을 출금했다.

② 결혼식장에 다다르자 스마트폰 메신저가 울렸다. “부탁 좀 할게.” 직장 동료가 대신 전달해달라며 메신저 송금 서비스를 이용해 10만원을 보냈다. 그는 김씨의 은행 계좌번호를 모르지만, 메신저에 등록된 것만으로도 돈을 쉽게 보낼 수 있다.

③ 결혼식장을 빠져나온 그는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뒤, 스마트폰을 꺼내 NFC(근거리 무선통신) 기능을 인식하는 계산대 단말기에 갖다 댔다. 그가 미리 등록한 은행 계좌에서 실시간으로 돈이 빠져나갔다.

④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를 들렀다. 차에 앉아 내비게이션 대신 달린 태블릿 PC를 켰다. 태블릿 PC의 결제 앱이 주유기와 인터넷으로 연결돼 가솔린 5만원어치 주유를 선택했다. 이른바 사물인터넷(loT)이다. 화면에는 이달의 주유량, 평균 연비가 계산됐다.

⑤ 집에 도착해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을 살펴봤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친구가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전자제품이 싸다고 귀띔해줬기 때문이다. 국내보다 싸게 파는 최신 스마트폰을 찾았다. 전세계 회원을 둔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통해 계좌이체로 구매했다. 실제 내 계좌의 돈이 빠져나가 국경을 넘은 게 아니기 때문에, 신용카드 해외 결제보다 환전·송금 수수료가 덜 든다.

⑥ 오늘 꽤 많은 돈을 썼다. 결제대행 서비스 회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 자산관리 서비스 앱이 “같은 소득수준의 회원들보다 26% 많은 소비를 했다”는 알림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주식매매결제서비스(STS) 앱에서 제공하는 주가 정보를 읽으며 ‘주식을 팔아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김씨가 하루 동안 겪은 ‘가상의 금융 서비스’는 핀테크 기술 아래에서는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현재 해외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다. 핀테크는 이처럼 기존 결제·송금·대출·자산운용 등 제도권 금융업체가 해오던 금융 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지고 그 영역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설자인 빌 게이츠가 “미래의 은행은 ‘은행 없는 은행’(Bank without bank)이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핀테크가 가져올 영향력을 빗댄 것이기도 하다. 실제 김씨의 하루에서 은행과 카드업체, 증권사 등 기존 제도권 금융업체의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을 보면 그렇다.

미국·중국·영국에 부는 핀테크 바람

이러한 분위기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월4일 국회에 나와 “최근 IT 분야와 금융의 접합 면이 넓어지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검토할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핀테크 혁명’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행보가 뒤처졌다고 비판한다. 이미 미국·중국 등 핀테크 산업의 선두 그룹이 한참 앞질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핀테크 산업의 흐름을 보면, 전자지급 결제대행을 중심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해가는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대표적 업체로 미국 ‘페이팔’(PayPal)과 중국 ‘알리페이’(Alipay)가 손꼽힌다. 그 후속 주자로 애플페이 등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영역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그 밖에 기존 금융권이 하지 않던 다양한 대출 서비스를 하는 업체도 있다. 미국 ‘온데크’(Ondeck)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타나는 평판을 기반으로 돈을 빌려주는 ‘스마트 대출’ 서비스를 한다. 독일의 ‘피도르’(Fidor)는 온라인 활동을 하는 회원들에게 예금 금리를 우대해주는 ‘SNS 기반형 은행’이다. 알리페이를 소유한 알리바바에서 하고 있는 ‘위어바오’라는 금융 서비스도 신용을 까다롭게 매기는 기존 은행을 통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한 대출을 할 수 있다.

핀테크 시장은 국경의 제약 없이 송금·이체 서비스를 가능케 한다.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이 업체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유로·파운드·달러 등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한다. ‘아지모’(Azimo)는 페이스북·모바일 앱 등을 기반으로 192개국에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 업체 모두 영국에서 시작한 이른바 ‘인터넷 전문 은행’으로 은행 창구도 없고, 나라마다 직원을 두고 있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은행 등에서 받는 송금 수수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세계 모바일 결제액은 2354억달러로 2017년에는 7210억달러까지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뱅크월렛카카오, 첫 테이프는 끊었지만

핀테크의 열풍은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첫 테이프는 11월11일 카카오톡의 플랫폼을 활용한 모바일 지갑 서비스 ‘뱅크월렛카카오’(이하 뱅카)가 끊었다. 뱅카는 충전형 선불카드인 ‘뱅크머니’와 은행권이 발급하는 ‘현금카드’를 스마트폰에 넣어 사용하는 이른바 ‘모바일 지갑’ 서비스다. 금융결제원과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시중 16개 은행의 모바일 지갑을 다음카카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스마트폰에 나타나는 가상 계좌에 최대 50만원을 충전해 쓸 수 있으며, 가맹점 결제와 ATM 출금도 할 수 있다.

소극적인 대응이 액티브엑스(ActiveX) 사용을 둘러싼 논란과 공인인증서 사용을 통한 금융 규제 등으로 폐쇄적으로 바뀐 금융 IT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카카오의 핀테크 시장 데뷔로 삼성·네이버도 후발 주자로 몸을 풀고 있다. 네이버는 해외 시장에 회원을 많이 둔 라인의 플랫폼을 활용한 결제 서비스 ‘라인페이’를 준비하고 있다. 제휴 매장 등에서 라인 앱을 통해 결제가 가능하도록 꾸리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에 내놓은 모바일 지갑 서비스 ‘삼성월렛’에 ‘옐로페이’의 송금 서비스 기능을 얹기로 했다. 약 32만 명의 가입자가 있는 옐로페이는 주요 은행과 제휴해 송금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애플이 내놓은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애플페이’에 대한 대항마 성격이 짙다. 그 밖에 기존 이동통신사들은 소액·간편 결제 등을 개선해 핀테크 흐름을 따라가려 한다. LG유플러스는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나우’와 모바일 지갑 ‘스마트월렛’을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SK텔레콤도 ‘BLE 페이먼트’와 ‘BLE 전자카드’를 내놨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핀테크의 주요 영역인 송금·결제·투자대출·개인자산관리 가운데 송금·결제에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다. 인터넷뱅킹 이용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핀테크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업체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 대응이 액티브엑스(ActiveX) 사용을 둘러싼 논란과 공인인증서 사용을 통한 금융 규제 등으로 폐쇄적으로 바뀐 금융 IT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나 미국처럼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등을 지원하려면 금융산업의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의 한 축은 핀테크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로 인해 기존 금융 서비스 시장이 붕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스냅챗(Snapchat)을 즐겨 사용하는 10~20대 여성들이 은행 서비스가 아닌 전자결제 서비스 ‘스냅캐시’(Snapcash)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를 보면 그렇다. 인터넷뱅킹이 어색한 세대에게는 뱅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이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바뀌어갈 것은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뱅카’가 더 친숙한 세대 등장할 것

다른 나라에 견줘 인터넷뱅킹 등 은행 서비스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금융 환경 아래에서 핀테크의 충격파가 생각만큼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핀테크의 현황은 대부분 해외 사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뱅킹 인프라가 잘돼 있고 교통카드 사용률이 높은 등 상황이 다른 부분이 있다. 핀테크의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력 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시장에서 통용되기엔 여러 가지 제약 요인이 있다고 본다.” 신용카드 사용률이 낮은 중국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핀테크 산업이 활발하고, 영국 보다폰이 동유럽·아프리카 등에서 핀테크 금융 서비스가 활발한 이유는 ‘미비한 금융 서비스 인프라’ 때문이라는 것이다.

핀테크 시장이 국내 금융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국 관광객 증가 등 경제 상황의 변화로 핀테크 업체가 활발해지거나, 정보 누출 같은 기술적 한계에 따라 보안사고가 일어나는 등 악재가 발생하면 대중의 시선이 싸늘해질 수도 있다. 어찌됐든 금융 당국이 이런 변화에 둔감하다면 문제가 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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