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4년 12월 02일 09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2일 09시 07분 KST

'재건축' 이유로 권리금 등 6억 원 날린 사연

한겨레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1년8개월간 종업원으로 일하던 박아무개씨는 2011년 5월에 일하던 가게를 인수했다. 건물주로부터 10년 이상 장사 할 수 있다는 구두약속을 받고 가게를 계약했다. 권리금 1억5000만원과 전 임차인이 밀린 임대료 3000만원도 대신 냈다.

메뉴를 바꿔 ‘가마솥과 삼겹살’집을 내는데 2억6000만원이 들었다. 골목 안쪽에 있는 외진 상가라 불리했지만 열심히 한 덕분에 장사는 제법 잘됐다. 문제는 건물주가 바뀌면서 생겼다. 2013년에 바뀐 새 건물주는 올해 1월 재건축을 이유로 퇴거를 요구했다. “전 건물주만 믿었는데 원망스럽다”는 박씨는 “대출금 1억6000만원의 원금도 갚지 못했다”며 억울해했다.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뒷길 상가건물에서 지난해 5월부터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 중인 윤아무개(36)씨는 올해 말 이곳을 떠난다. 건물주가 건물을 새로 짓겠다며 지난해 6월 윤씨를 포함한 세입자 10명에게 ‘퇴거’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명목상 1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지 두 달 보름 만이었다.

건물주가 낸 명도소송 과정에서 계약 닷새 만에 재건축 계획이 세워진 것을 안 윤씨는 기가 막혔지만, 결국“연말까지 나갈테니 강제집행만은 말아달라”며 ‘투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전 세입자에게 건넨 4억원의 권리금과 내장공사에 들어간 1억5000만원은 고스란히 날아갔다.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전국상가세입자협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경제민주화실현 전국네트워크 등 공동주최로 1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상가세입자 피해사례 발표회가 열렸다. ‘구멍난’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상가 세입자 6명이 직접 자신의 피해사례를 소개했다. 현행 법은 재개발·재건축 등의 이유로 임대인이 퇴거를 요구할 경우, 임차인들이 시설투자금이나 영업권 확보 투자비용 등을 회수하지 못한 채 쫓겨날 수밖에 없다. 임대기간 5년이 끝나면 강제퇴거를 종용당하거나 임대료 폭탄을 맞기도 한다.

서울 홍대앞에서 ‘참숯 만난 닭갈비’를 운영하는 최선재 사장은 임대기간 5년이 끝나자 가게를 비우라는 요구를 받았다. 최씨는 “죽어가던 상가를 살려놓았더니 건물주가 권리금을 강탈하려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건물을 나가는 것만은 막으려 노력했다. 대장암 걸린 아들의 병원비를 말하며 인정에도 호소하고, 임대료를 올려주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최씨는 “억울한 상가세입자들로 대한민국이 들썩인다”며 “법이 빨리 개정돼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 엔제리너스 세입자는 2년 후 재계약 시점에서 임대료 폭탄을 맞았다. 건물주는 월 임대료가 470만원인데 800만원을 요구했다. 2년 재계약 요건으로 임대기간 만료시 퇴거하는 화해조서를 강요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밝힌 권리금 법제화 필요성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발의했다. 그러나 토론 참석자들은 우선변제 임대차기간의 연장 등 상가세입자들의 입장을 담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안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1월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과 함께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적용범위 및 우선변제 범위 제한 폐지, 법정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임대차기간) 10년 보장, 퇴거료 보상제 도입을 뼈대로 한 법안이다. 참여연대는 “임차상인들의 영업 가치를 보장하는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미 발의된 개정안들을 넘어 임차상인에 대한 실질적 보호방안이 이번 회기에 반드시 마련되도록 국회와 여야 정치권에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