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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13시 41분 KST

에펠탑에는 직원용 벤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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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계산원에게 의자는 있습니다. 노동부가 ‘의자를 놓으라’며 행정지도를 시작한 2008년 8월부터의 변화일 겁니다. 하지만 등 뒤에 의자가 놓여 있다는 사실만 추가됐을 뿐, 계산원은 지금도 서 있습니다. ‘불친절해보인다’는 우리의 시선 때문입니다. 파리 교민 최정민씨가 ‘손님용 의자가 아닌 직원용 의자에만 난방기를 설치’한다는 너무나 아득한 프랑스 이야기를, 놓인 의자에 그들을 앉히지도 못한 우리에게 보내왔습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박복숭아’(@peach_nebula)씨의 이야기▶관련 기사 : ‘카트’에 눈물짓던 관객들, 영화관 알바는 ‘투명인간’ 취급에 이어 영화 <카트>가 보내온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슈퍼에선 여전히 계산대 직원분들이 서서 일하시나요?”였고, 대부분의 대답은 “그럼요. 앉지 못하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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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일하니 좋아요.” 세이브존 서울 노원점이 계산대마다 의자를 지급했다. 한 직원이 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몇 해전 한국에 갔을 때, 서서 계산하는 마켓의 풍경이 이상했다. 프랑스의 마켓 직원들은 앉아서 계산한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땐 지친 손님들과 대비될 정도로 편하게 앉아서 일한다. 물건을 담는 것도 손님의 몫이다.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보니, 의자가 있음에도 서서 일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그래서일까, 마켓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카트’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에 관심이 갔다. 아직 보지 못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 이야기’라는 기사를 보았다. 레드카펫의 꽃으로만 알았던 유명한 여배우들이 나온다는 소식도 반가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관심은 파업 이야기도 아니고,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도 아니었다. 내가 계속 궁금했던 것은 여전히 그 문제였다. ‘앉아서 일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얼마 전 늘 단답형으로만 끝나던 나의 질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의자에 앉을 수는 있지만 손님이 앞에 있으면 앉을 수 없죠.”

나는 이 친절하고 ‘의식 없는’ 답변 덕분에 상황을 이해했다. 한국에선 계산대의 직원이 ‘일하는 사람’이 아닌, ‘종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상전’인 손님 앞에선 앉아서도 안 되고 앉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서서 일할 수 없는 그 풍경이 내게 낯설었고, 한국에선 당연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에펠탑 2층에 가면 두 종류의 벤치가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쪽은 ‘손님용’이다. 그리고 ‘STAFF ONLY’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붙여 있는 쪽은 ‘직원용’이다. 손님용과 직원용이 구분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 팻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면 앉고 봐야 하는 것은 전세계인 모두가 같았다. 연간 7500만명이 오른다는 에펠탑이니 늘 사람들이 ‘인산인해’이고,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벤치는 늘 손님 차지였다. 그런 상황을 보다 못한 에펠 측은 언젠가부터 직원용 벤치에, 앉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줄을 설치했다. ‘손님’으로부터 ‘직원의 쉴 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물론 그 줄조차 무시하고 덥석 앉는 관광객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직원들의 쉴 자리는 보장되었다.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직원이나. 2층에서 관리를 하는 직원들은 그 벤치를 줄로 막아 놓았다가 쉴 때는 줄을 걷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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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쇼핑 카트를 닦고 있다.

고객을 상대로 직원들의 쉼터를 보장해 주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몇 해전 겨울. 에펠은 2층 두 종류의 벤치 중 한 곳에만 ‘난방기(히터)’를 설치했다. 어느 쪽일까? 그것은 바로 ‘직원용 벤치’ 아래였다.

우리라면 그랬을 것이다. 손님용에 히터가 있고, 직원은 바들바들 떨고 손님은 편히 쉬는. 그러나 한겨울, 에펠 2층에선 손님이 바들바들 떨고 직원은 따뜻하게 앉아 있는다. 잠깐잠깐 다녀가고 파리 풍경을 보러온 고객의 궁둥이보다, 늘 그곳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의 궁둥이가 더 귀했던 것이다.

에펠탑뿐만이 아니다. 베르사이유도 루브르도 겨울에 난방기가 있는 곳은 직원이 일하는 자리 옆이다. 또 관광지뿐만이 아니다. ‘마켓’에도 난방기가 설치된 곳은 입구 쪽, 그러니까 계산대 직원의 머리맡, 자리 위에 천정이다.

‘카트’라는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보다, 파업이라는 상황보다, 더 많이 생각이 났던 것은 일하는 현장에서 앉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모습들이었다. 의자가 있어도 손님이 있다고 앉아선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면, 일하는 사람이 그저 한 사람의 ‘시종’ 취급을 받는 사회라면, 파업도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하는 사람’이 ‘종놈’인 이상 ‘파업’이란 ‘종놈’이 벌인 ‘반란’ 정도로 치부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