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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0일 12시 31분 KST

'식구'가 별건가요?

한겨레

집밥이 그리운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현실에서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든 비벼대며 살다가도 불현듯, 그런 그리움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지난해 초 페이스북에 ‘집밥’을 내건 페이지를 처음 알게 됐다. 슬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듯했다. 집밥이 그리운 사람이 많았구나,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집밥’은 어엿한 소셜다이닝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집밥’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실 삼아 모임을 쉽게 개설할 수 있도록 일종의 ‘정거장’을 제공한다. 이른바 소셜다이닝 ‘플랫폼’이다. ‘집밥’과 소셜벤처, 그 관계가 궁금했다. ‘집밥’의 박인 대표를 지난 11월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요리도 못하고, 집밥도 싫지만…

꽤나 이름 높고 연봉도 많은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박인 대표는 애초 소셜벤처를 만들겠다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SNS에서 집밥 이벤트를 시작한 것은 2012년 9월, 뜻밖의 반응을 얻자 2013년 3월 정식으로 기업의 모습을 갖췄다. 무엇이 그를 소셜벤처 기업가로 이끈 것일까? 이벤트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가치 또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런 게 없었어요. 제가 필요한 것을 했을 뿐이죠.” 행복하지 않았던 회사 생활을 그만둔 박 대표는 백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감받고 싶었다. 당시 유행하던 토크콘서트를 찾았지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멋있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힐링’의 방식에 의문을 품던 차였다.

소셜벤처 '집밥'의 박인 대표

“토크콘서트의 관객이 아니라 그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했어요. 어떤 거창한 방식보다는 서로가 고민하고 있는 ‘먹고사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우리 인생이 망했네’ 하며 수다도 떨면서요.” 박 대표를 이끈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 그것이 주는 치유 능력이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다리, 바로 그것이 ‘집밥’의 역할이었다.

“전 요리를 못해요. 집에서 밥 먹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모름지기 집밥을 대표한다는 사람이 본래 의미의 ‘집밥’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에게 집밥의 의미는 사전적 의미와 조금 다르다. “행복하게 살자 마음먹었어요. 일반 직장에서 점심을 먹을 때 후루룩 마시다시피 하며 식사를 끝내잖아요. 꼭 사육당하는 것 같았어요. 행복하지 않았죠. 그리고 행복의 원형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때 집밥이 떠올랐어요. 그게 꼭 집이 아니어도, 가족이 아니어도 편안하고 누군가와 공감하면서 먹을 수 있는 밥, 그게 집밥이라고 생각했어요.” 박 대표에게 집밥은 ‘행복한 삶’의 다른 이름이다.

‘집밥’은 거창한 가치나 비전을 보란 듯이 내놓지 않는다.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뿐이다. ‘일상’과 연결짓기 때문이다. 박인 대표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밥이 신해철씨의 음악 같은 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잖아요. 제주도의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걷는 것’ 자체가 위로의 방식이 됐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신뢰하며 관계를 맺고 위로를 얻는 것. 역시 아름답다 여겨지지만 어려운 일이다. 집밥 사용자들끼리 분쟁이 생기는 경우 박 대표는 괴롭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에게 주는 위안의 가치를 포기할 만큼은 아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뭘 하면 좋을까요?”

작은 이벤트로 시작한 소셜 다이닝은 이제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지속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집밥’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소셜 다이닝 모임은 일주일에 400여 개에 이른다. 전국 20여 곳의 도시에서 자발적인 집밥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에 목말랐던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다. 박인 대표는 “사용자들의 반응에 놀랐죠.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뿜어내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 누군들 없을까? 그렇지만 실제로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집밥’이 그 모든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에 수십 개의 모임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그런 의구심이 조금 잦아든다. 박 대표는 “친한 친구에게 다 털어놓지 못하는 속엣말을 하게 된다. 잘난 척, 예쁜 척, 있는 척을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솔직하고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밥’의 주제는 제한이 없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임’ ‘여성이 담배를 피우면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모임’ 등 사람의 수만큼 그 주제는 다양하다.

‘집밥’을 통해 모인 사용자들이 음식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참으로 소소하고 소박하다. 소셜벤처도 기업이니 소박함과 소소함이 항상 미덕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방편은 두 가지다. ‘집밥’ 플랫폼 이용 수수료와 ‘기업 간 거래’(B2B)이다. 기업들은 소셜다이닝 방식을 활용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길 바랐다. 소비재 기업은 기존의 딱딱했던 소비자 심층 조사를 ‘집밥’ 쪽에 맡겼다. 집밥을 매개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솔직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거라 기업은 기대한 것이다. 주류 업체부터 공공기관까지 기업 간 거래의 대상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집밥’이 소셜벤처로 자립하고 기업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지만 박인 대표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그리고 그 질문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던진다.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집밥’의 성장과 구성원의 행복이 꼭 같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박 대표 스스로부터 그렇다. ‘집밥’을 운영하면서 ‘오전 10시 출근, 저녁 7시 퇴근’제를 시행했던 적이 잠깐 있었다고 박 대표는 떠올렸다. “점점 기업의 모습을 갖춰가니까 출퇴근 시간도 정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우선 저부터가 너무 힘들고. (웃음) 다들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없앴죠.” 소셜벤처로서의 사명감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사회적 혁신 기업은 오히려 더 스스로의 행복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으로요.”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사회적 혁신…. 이 말들의 향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여긴다. “정부·학계가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의 확산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사용자를 우선에 둔 사회적 기업이 많아졌으면 하는데 한국은 아직 부족하구나 생각해요. ‘우리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요. 제 친구들도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관련 단어는 많이 생기는데 대중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박인 대표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실행에 옮긴다.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집밥’을 이끈 힘처럼 보였다. 소셜벤처로 인정받고 자립하는 와중에 느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움직인다. ‘집밥’은 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가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고 본다. 그저 ‘좋은 일’을 한다는 데 존재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용자에 대한 조사를 수시로 해요. ‘집밥’을 초기부터 수십 번 이용해본 사용자들을 모아 반상회를 열기도 해요. 그래서 ‘트렌드’를 구체적이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죠.” ‘트렌드’는 변하지만 ‘집밥’을 통해 건네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그것을 ‘재미’라고 요약한다. “재미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셜벤처가 건네는 메시지와 콘텐츠는 재미와 유머,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집밥’ 전국 투어 중이라는 박 대표, 정작 그가 만들고 싶은 집밥 모임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연남동 덤앤더머’라는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밥도 먹고 공연도 보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 팀 정말 ‘재미’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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