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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9일 14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09일 14시 09분 KST

일당 5천원짜리 허드렛일...잔혹한 호텔리어의 꿈

Alamy

[뉴스쏙] 노동착취에 멍드는 실습생들

당신의 서비스는 착취에서 시작된다

#1. 알바만도 못한 실습생

이승연(가명·23·ㄱ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휴학)씨는 2012년 여름방학 기간에 중부권의 한 특급호텔 뷔페식당에서 첫 실습을 했다. 그는 새벽 5시30분에 출근했다.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휴게시간 제외)이었다. 호텔 쪽은 실습생에게 점심 한 끼와 월 30만원을 줬다. 1시간여씩 추가 근무를 하며 교통비도 받지 못하고 접시를 닦았다. 힘들었지만 호텔리어의 꿈을 이루려면 밑바닥부터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2주가량 지났을 무렵 뷔페 팀장이 수시로 그의 몸을 만지고 추근댔다. ‘캡틴’에게 실습장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객실에서 근무하고 싶었지만 배치된 곳은 스카이라운지였다. 오후 2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시내버스가 끊긴 새벽에 퇴근했지만 교통비는 받지 못하는 등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대우였다.

그는 올 1~2월에 충청권 한 특급호텔의 양식당에서 두 번째 실습을 했다. 처음 실습한 호텔보다 체계가 잡혀 있어 교육도 받았다. 분야별 직원들이 컵·기물 종류, 메뉴, 테이블 세팅 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러나 실습비는 월 15만원에 불과했고 짓궂은 농담은 여전했다. 그는 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실습한 호텔은 ‘계약직으로 2년을 일하면 정직원을 시켜 준다’고 했는데 캡틴, 지배인, 팀장 외에 정직원은 없었다. 일손 채우려고 실습생과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것 같았다. 호텔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호텔리어의 꿈을 이뤄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실습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2. 알선업체 소개, 국외 호텔도 고생길

국내 호텔의 열악한 실습 과정을 피하려고 국외 호텔의 인턴으로 진출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알선업체가 제공하는 호텔 정보가 불확실하고, 의무 근무 기간을 채워야 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김연정(가명·24·ㄴ대 호텔관광경영학과 4학년 휴학)씨는 올 4월 국외 호텔 인턴십을 알선하는 한 업체의 주선으로 싱가포르의 한 호텔과 2년 계약을 하고 출국했다. 그러나 새로 문을 여는 특1급 호텔이라는 소개와 달리 휴양시설이 있는 겸용 호텔이었고 공사도 끝나지 않아 개관할 때까지 4개월을 공사판에서 일했다. 김씨는 6개월 이상 근무해야 퇴사가 가능한 조건에 숙소 계약 기간도 1년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해야 했다. 월급은 1500싱가포르달러(약 125만원)이다. 방값 600달러를 내고 교통비·식비를 제하면 용돈이 부족해 하루에 2~6시간 정도 시간외 근무를 한다. 동남아 관광객들이 특히 한국 여자에게 관심이 많아 부담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1년은 근무해야 경력으로 인정받고 외국어를 배울 수 있어 오기로 참는다. 몇몇 학생들은 외주업체가 하는 바닥 광내기 등 호텔 고유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국외 호텔 인턴은 알선업체의 말보다 해당 호텔의 처우 등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호텔은 증가, 직원·임금은 감소

중국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지난 9월 한국의 관광수지가 28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되는 등 한국 관광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관광산업의 중심에 있는 관광호텔의 실습생들은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월 15만~30만원의 실습비를 받으며 혹사당한다.

실습생들은 대학의 호텔 관련 학과 학생들과 졸업을 앞둔 실업계 고교생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이 실습에 나서는 것은 필수과목인데다 실습 경력이 있어야 호텔업계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호텔산업·취업박람회에 참가한 주요 호텔들은 3개월 실습 뒤 우수 수료생을 인턴으로 선발하고, 최소 9개월 이상 근무해 팀장 등의 추천을 받으면 정직원 전환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김민지(23·한양대 중국어학과 4학년)씨는 “어렵지만 성실하게 근무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계에서는 호텔의 실습과 인턴이 취업을 위한 과정이니 하는 것일 뿐, 헐값에 호텔의 부족한 인력을 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실제 통계청의 자료를 근거로 산출한 전국 관광호텔의 총매출액 대비 총인건비 비율은 2007년 26.7%에서 2008년 28.9%로 다소 늘었으나 2009년 28.6%, 2011년 24.8%, 2012년 24.4%로 떨어졌다. 2007~2012년 호텔 수는 564개에서 603개로 늘었으나 종사자는 3만8328명에서 3만7483명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년 관광호텔 인력 사정 조사’를 보면, 총 631개 가운데 인력이 부족한 호텔이 36.8%(232개)로 전체 호텔의 3분의 1을 웃돌았다. 인력이 적정한 호텔은 62%(391곳), 인력 과잉 호텔은 1.3%(8개)로 집계됐다. 호텔은 늘었지만 직원과 임금 수준은 낮아진 것이다.

김용태 배재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호텔의 채용 과정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노동력을 얻는 구조다. 실습생들은 호텔의 다양한 업무를 배우는 대신 뷔페, 레스토랑, 바 등 호텔의 식음료부서에 배치돼 접시닦이 등을 한다. 대형 호텔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2~3년 경력을 쌓으면 작은 호텔 같은 곳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습 이유로 월 15만~30만원

“경력있어야 업계 취업 가능해”

횡포에도 지원자 몰리는 구조

전국 관광호텔 인건비 비중 24%

부담 줄이려 정직원 대신 실습생

학교마다 실습시설 부족도 이유

“학교-호텔 분담, 비용 현실화해야”

■ 실습생은 호텔의 미래

호텔 관련 학과 교수들은 실습생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 원인으로 △호텔의 인건비 절감 악습 △학교의 실습시설 부족 △공급 과잉을 꼽는다. 홍영택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전통 있는 특급호텔은 연봉이 높은 직원이 많다. 특히 근무자가 많은 식음료부서는 인건비가 매출의 40%에 육박하기도 해 인건비를 줄이려고 정직원을 채용하는 대신 실습생을 집중 배치한다”고 전했다. 또 “호텔 업무는 수업만으로 가르칠 수 없고, 학교에 완벽한 실습장을 갖출 수도 없어 현장 실습이 불가피하다. 반면 호텔은 인력이 부족하고, 실습생이 실무 경험이 없어 업무에 투입할 수 없다 보니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전국적으로 200여개의 호텔 관련 학과가 있으며, 연간 2만여명이 졸업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호텔업계는 실습생 대부분이 호텔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특1급호텔의 객실근무 계약직 선발 기준은 토익 700점 이상, 중국어 4단계, 일본어 1급이다. 롯데호텔 인사 담당 부서 관계자는 “실습 지원자는 많은데 호텔이 원하는 인재는 부족하다. 대학은 부당한 처우를 지적하기에 앞서 호텔이 원하는 인재를 보내야 한다. 또 실습을 마치고 인턴으로 뽑혀도 정규직 전환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 것은 자기개발을 게을리해 입사할 때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정란 한국관광호텔업협회 인재개발팀 과장은 “실습비는 현실화해야 한다. 다만 호텔업계는 수업의 일환으로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데 학생들에게 수당까지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학계와 업계가 논의해 등록금을 받는 대학과 실습 과정에서 노동력을 활용하는 호텔이 실습비를 분담하는 방안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정혜 경기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호텔은 실습생이 호텔의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는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자 한국 호텔의 미래라는 점을 인식하고 실습 취지에 걸맞은 현장 실무교육을 해야 한다. 또 호텔리어를 저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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