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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9일 12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09일 12시 08분 KST

백석 시집 '사슴' 초판 경매 '들썩'...시작가만 5천500만원

'천재 시인' 백석(1912~1996)의 유일한 시집 '사슴'에는 '여우난골족(族)' '노루' 등 주옥같은 시 33편이 실려 있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중략)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여우난골족' 중)

백석은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로 향토색 짙은 풍경을 빚어냈다.

'사슴'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계간 '시인세계' 2005년 여름호 조사)으로 꼽힐 만큼 일반인은 물론 시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1936년 1월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사슴'은 당시 100부밖에 찍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꼽힌다.

'사슴' 초판본이 경매에 나왔다. 경매 시작가만 5천500만원이다. 100부 한정판으로 찍은 '사슴' 초판본의 가격은 1936년 당시 2원(圓)이었다. 시집 뒤편에 저작(著作) 겸 발행자 백석이라고 명기돼 있어 백석이 자비로 시집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고서적, 고미술품 등을 다루는 경매사이트 '코베이'에 따르면 이번에 경매에 나온 '사슴' 초판본은 백석이 이육사(1904~1944) 시인의 동생인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에게 직접 준 것이다.

시집 안에는 "이원조씨 백석"이라고 적혀 있다.

백석 문학 전문가인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는 "100부는 그 당시에도 적은 것이었다"면서 "당시 다른 시집과 달리 겹으로 접은 한지에 인쇄하는 등 손품이 많이 들어간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백석과 이원조의 관계에 대해 김 교수는 "이원조는 해방 전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면서 "백석과는 조선일보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뿐 아니라 일본 문학, 유럽 문학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짝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 당시 유럽 문학, 세계 문학을 자기식으로 평가하고 논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백석과 이원조는 폭넓게 의견을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모두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이원조는 호세이대에서 불문학을, 백석은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부르주아 문학을 비판하는 평론을 썼던 이원조는 해방 후 월북했다.

백석은 시문학파 선배 시인 김영랑(1903~1950)에게도 '사슴' 초판본을 줬다. 백석은 시집에 '영랑 형께'라고 적었다.

김 교수는 "'영랑 형께'는 애정 어린 존경심이 느껴지고, '이원조씨'는 허물없이 지내면서도 약간의 격을 갖춘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문학파 신석정(1907~1974) 시인에게 백석이 보낸 글을 보면 신석정에게도 시집을 준 것으로 나온다"면서 "시문학파의 영향을 받은 백석이 존경심에서 시문학파 시인들에게 시집을 준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사슴'이 후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윤동주(1917~1945) 시인은 연희전문에 다닐 때 '사슴'을 구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 노트에 직접 베껴 쓸 정도로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1936년 발간된 김동인(1900~1951)의 단편소설 '깨어진 물동이' 초판본은 경매 시작가 100만원에 나와 있다. 향파 이주홍 선생이 초판본의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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