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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05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13일 11시 05분 KST

단통법은 어떻게 '호갱님법'이 됐나

15일이면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된지 꼭 보름이 된다. 벌써부터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달은 커녕 보름도 되기 전에 이런 말이 나오는 법이 또 있을까.

‘가계 통신비 부담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공약이 있었고, 단통법이 태어났다. 통신비 부담이 너무 높다는 문제를 개선하려 했다면, 그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거기에 따라 개선책을 찾는 게 순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단부터가 잘못됐다.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리 만무하다. 이름만 ‘개선법’이지 결국 단통법은 아무 것도 개선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났다.

‘전국민을 호갱(호구+고객)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이 기이한 법의 시작과 끝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함께 따라가보자.

Intro : 통신비 부담이 너무 높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우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통신비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보조금 대란 때문에 호갱님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다른 몇 가지 내용들과 함께 ‘반값통신비’ 공약에 포함됐다.

스마트폰 단말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유통체계를 개선하고,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법을 제정해 이용자 간의 차별을 방지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최근 통신사들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갤럭시S3 할부원금이 17만원까지 떨어져 그전에 스마트폰을 산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다. 윤창번 새누리당 행복위 방송통신추진단장은 “박 후보가 통신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단말기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니지만 유통분야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2012년 10월30일)

2012년 10월3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가진 정보ㆍ방송ㆍ통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보통신분야 대선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한겨레

당시 대선의 화두는 ‘반값’이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어떻게든 펴주겠다고 했다. 통신요금 인하가 빠질 수 없었다. 여야 후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통신요금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곧 일련의 절차가 착착 진행됐다.

단통법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통신비 부담완화와 반값 통신비 대선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법안 논의가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의 의지를 담아 법안을 추진했다. 지난해 5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을 대표로 국회의원 10인이 발의했다. (비즈니스포스트 10월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함께 단통법의 기초를 다졌다. 관련 토론회를 주최했던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약 보름 뒤, 이렇게 마련된 내용을 바탕으로 ‘단통법을 발의했다. 2013년 5월24일의 일이다.

1장 : 잘못 꿴 첫 단추

시계를 더 앞으로 돌려보자. 정부는 그동안 휴대폰 보조금이 일정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규제해왔다. 과다한 보조금 경쟁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가계의 통신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단통법 이전까지 그 상한선은 27만원이었다. 27만원을 넘는 보조금을 지급하면 ‘불법’으로 간주했고, 과징금과 영업중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왜 정부가 기업의 영업활동을 규제하나?

보조금이 뭔가? 마케팅 비용이다.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들이 ‘우리가 돈을 얹어 줄테니 이 제품을 사달라’고 유혹하는 영업활동에 투입되는 비용이다. 자동차 딜러가 ‘저한테 차를 사시면 50만원 빼드리고 블랙박스랑 내비게이션이랑 썬팅은 최고급으로 챙겨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동차 딜러의 과도한 마케팅으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고, 차별받는 소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딜러들의 영업활동을 규제하지는 않는다.

‘누구는 제값 주고 차를 사면서 혜택도 하나 못 받았는데 누구는 할인도 받고 심지어 블랙박스에 내비게이션에 썬팅까지 받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나서서 영업비용 상한선을 정해놓고 이를 어길 경우 자동차회사의 영업을 정지시키는 일도 없다.

제조사나 통신사가 자체적으로 ‘천차만별인 보조금을 없애고 가격을 공개해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선언할 수는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정찰제’를 시행한다고 홍보했고, KT가 한때 ‘페어프라이스’를 도입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썬팅은 '기본 3종세트'로 불린다.

논리도, 근거도 없다

왜 휴대폰 보조금만 규제할까? 단통법이 태어나기 전부터, ‘정부의 보조금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케팅 비용을 못 쓰도록 정부가 규제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

2007년 말에 일몰된 단말기 보조금 금지법은 2003년 3월 도입돼 2006년 3월까지 시행하고 사라지는 일몰제 법안었는데 한 차례 연장해 2007년 12월까지 시행되고 소멸됐다. 당초 이 법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무역수지 적자를 유발하는 휴대폰의 과소비를 막아보자는 차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단말기 부품 대부분을 수입했기 때문인데 이 법은 나중에 통신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한 법으로 변질된다.

마케팅 비용을 규제하는 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경쟁 사업자를 몰아내기 위해 부당하게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부당염매를 규제하고 있지만 단말기 보조금은 이런 경쟁제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마케팅을 규제하는 보조금 금지법이 경쟁제한 행위에 가깝다. 경쟁이 과열됐다는 이유로 경쟁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통신사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통위의 입장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 뿐이다. (미디어오늘 2012년 11월1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조금 상한선을 ‘27만원’으로 정한 이유도 불투명하고, 애초에 보조금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위법하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한 마디로 정부가 보조금을 규제하는 데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

보조금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없다. 방통위는 “판매촉진비는 시장경쟁 여건과 매출액 규모 등을 고려해 적정하게 산정돼야 하며, 방통위는 필요한 경우 판매촉진비의 상한선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회계분리기준 제35조 제2항 제3호 가목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전 이사는 “회계분리기준 고시는 판매촉진비를 규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방통위가 정한 상한을 초과할 경우 판매촉진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강제규정이 아니고 처벌규정도 없다는 설명이다. (최재천 의원실 보도자료 2012년 11월26일)

보조금 규제? 통신사는 웃는다

통신사들이 마케팅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면, 그게 결국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된다. 오랫동안 통신비 문제를 파헤쳐 온 전응휘 오픈넷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거기 숨어있는 거짓말이 있다. 그 주장대로라면, 마케팅비를 줄이면 요금이 내려가나. 마케팅비를 ‘제로(0)’로 만들어도 요금은 한 푼도 안 내려간다. 대신 통신사업자들의 영업이익률이 높아진다. 마케팅비를 많이 쓰니까 요금이 안 내려 간다? 과거에 8년동안 (보조금을) 금지했다. 그 8년 동안 이동통신 요금 한 푼도 안 내려갔다.

이통사가 돈을 쓰는 걸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떼 돈을 못벌게 해야 한다. 왜 이통3사가 영업 판촉비를 그렇게 많이 쓰겠나. 펑펑 써도 되니까 쓰는 거다. 어디서 그렇게 쓸 돈이 나와서 펑펑 쓰냐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체 누구 좋으라고 단말기 보조금을 금지시켰나. 통신사업자들 좋으라고 한 거다. (미디어오늘 2012년 9월26일)

게다가 징계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방통위는 연례행사처럼 ‘불법 보조금’의 책임을 물어 통신사들에게 벌금과 영업정치 조치를 내려왔지만, 이런 징계를 통신사가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은근히 즐긴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영업정지로 인해 이통사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대세다. 보조금 경쟁이 줄어들면서 전체 수익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휴대폰 보조금은 마케팅 비용으로 분류되며, 평균적으로 전체 매출 대비 23~28%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지디넷코리아 3월7일)

'45일간의 순차 영업정지'로 마케팅 비용을 쓸 기회가 없던 이통3사가 덕분에 2분기 실적을 선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에는 이통3사가 보조금 대란으로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썼지만 2분기에는 영업 정지로 마케팅 비용이 줄면서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뉴시스 7월28일)

전응휘 이사는 통신사들이 오히려 정부에게 규제를 부탁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 망한다’는 것. 이쯤되면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얘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장 : 예견된 실패

단통법은 보조금 규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아예 ‘보조금 규제’의 근거를 법에 명시했다. 이제 위법 논란에서 벗어나 정부가 대놓고 보조금을 규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비극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 ‘짜고치는 고스톱’이 똑같이 벌어질 판국이다.

내 맘 알지?

통신사는 계~속 웃는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이 10월1일자로 시행된 가운데 통신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며 그간 통신사들의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던 마케팅 비용이 크게 절감돼 실적 호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진 것이다.

(중략)

증권가에서는 단통법이야말로 통신사를 위한 법으로 보고 있다. 문지현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단통법이 마케팅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단통법의 도입은 마케팅 과열 방지 효과를 가져와 주가의 할인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머니위크 10월5일)

9일 한국투자증권이 발표한 ‘단통법 시행의 변화’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으로 내년 이동통신 3사가 사용하는 마케팅 비용이 5.6% 감소,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39.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동통신3사의 평균 보조금(제조사 판매장려금 제외)이 2013년 20만3000원에서 14년 상반기에 28만원으로 높아졌으나, 2015년에는 2013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비즈 10월9일)

머니투데이 머니위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홍식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단통법이 결국 ‘보조금 담합’을 유도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 무한 보조금 경쟁에서 통신사간 보조금 담합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고
  • 현실적으로 보조금 경쟁이 공격적 요금 경쟁 양상으로 전환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며
  • 폰/네트워크의 차별성이 없어 프로모션 형태로 통신사 영업 전략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 단말기 자급제가 현재보다는 다소 활성화되며, 외산폰의 점유율이 상승할 전망
  • 이동전화 시장점유율이 고착화되며 통신사들의 이익 안정성이 향상되는 반면 실적의 변동폭은 축소될 것

전국민을 ‘호갱’으로

왜 ‘보조금 담합’이 벌어진다는 걸까?

단통법으로 인해 이통사들이 단말기 가격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점유율을 지키려고 빼앗긴 만큼 고객을 다시 빼앗아 오려고 막대한 보조금을 썼지만, 앞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3개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지원금 규모가 공시(公示)되고 일주일마다 상대방 가격에 대응해 이를 바꿀 수 있는데 굳이 무리해서 가격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며 "이통사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10월7일)

'정답'은 없다...

그렇다고 통신사들이 요금을 낮춰 가입자를 데려오려고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가입자 한명당 평균 매출(ARPU)이 늘어나는 그래프 곡선을 흐믓하게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관계자는 “지원금 상한이 없으면 과도하게 지원금 경쟁이 이뤄질 우려가 있고 투자와 요금 인하 등으로 사용돼야 할 재원이 소모성 경쟁으로 사용될 걸 우려해서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보조금 경쟁 때문에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근거도 없고 보조금을 규제해서 요금이 인하된 적도 없다”는 지적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미디어오늘 10월4일)

더 나아가서 7만원 이상만 30만원 보조금을 받게 된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요금제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 통신사는 또 한번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1인당 매출액을 올리는게 통신사들의 지상과젭니다. 전보다 줄어든 보조금으로, 전보다 더 비싼 요금을 물게 만들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렇게 돈을 더 벌게 되지만, 요금을 내리겠다는 통신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서비스 경쟁을 하겠답니다. 돈은 안 쓰고 고개만 몇도 더 숙이겠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기사를 찾아보시면 증권사들이 앞다퉈 통신사 주식을 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SBS 취재파일 9월25일)

이제 한국 국민들은 다같이 휴대폰을 비싸게 사게 됐을뿐만 아니라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휴대폰을 사야 할지도 모르는 신세가 됐다. ‘사도 손해, 안 사도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단통법은 소비자들이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휴대폰을 살 수 있게 통신사들이 지원금 규모를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는 "보조금이 줄어들어 모두 똑같이 비싼 가격에 휴대폰을 구입하게 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중략)

일부 소비자는 "미국 판매 가격보다 국내가 훨씬 비싸다"며 "(단통법으로) 국내 소비자들끼리 차별은 없어졌지만, 해외 소비자들과의 격차는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갤럭시 노트4를 사려면 84만6000~87만7000원이 들지만, 미국 통신사 AT&T에서 2년 약정을 맺으면 약 32만원(299.99달러)에 살 수 있다. 국내에서 75만~78만원인 갤럭시S5나 G3도 미국에선 각각 21만원(199.99 달러)과 11만원(99.99달러)에 살 수 있었다. (조선비즈 10월7일)

저가 요금제 사용자들은 '통신사에 도움이 안 되는 고객들'이라 보조금이 확 깎였고, 비싼 요금제를 쓰는 사람들도 '어차피 최신 전화기를 쓸 사람들'이란 점이 간파 돼서 함께 보조금이 깎였습니다. 구형 전화기도 사기 어렵습니다. 거의 공짜로 팔렸던 구형 전화기들이 어느새 새 전화기와 같은 비싼 가격표로 갈아 입어습니다. 스마트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 국민들이, 그 스마트폰을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에 사야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겁니다. (SBS 취재파일 10월10일)

통신비 부담 높은 진짜 이유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단통법이 발의되기 보름쯤 전인 2013년 5월8일에 '의견수렴'을 위해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도 이 얘기가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리점과 판매점들은 보조금 규제 움직임 자체에 대해 반대했다. 자신을 온라인에서 통신업을 영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보조금 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단말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비싸게 산 사람이 억울하다고 모두가 비싸게 사는 방향으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보조금 규제가 필요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2013년 5월9일)

한 대리점 관계자는 "휴대폰 싸게 팔았다고 처벌하는 법이 어디 있나"며 "차별이 문제라고 보조금을 규제하면 전부 단말기를 비싸게 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보조금 규제 자체를 왜 논의하는지 모르겠다"며 "통신사가 단말기를 유통하지 말게 하면 해결될 문제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뉴스1 2013년 5월8일)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널리 알려져있는 것처럼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혼탁, 그 자체였다.

통신사는 단말기와 요금제를 ‘끼워팔기’ 하면서 고가 요금제에 가입할수록 요금할인 혜택이 늘어난다고 홍보해왔다. 그렇게 소비자가 다 쓰지도 못하는 ‘무료통화(염연히 요금을 내고 쓰는 건데 통신사들은 무료통화라고 부른다)’가 포함된 고가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한 것.

그러나 통신사가 단말기 제조사와 담합해 단말기 출고가를 처음부터 높게 부른 다음 선심 쓰듯 기기값을 할인해준다고 해놓고는 비싼 요금을 물리는 건지 아닌지,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제조사가 특정 통신사에게 보조금을 더 지급하거나 아예 어떤 단말기는 특정 통신사를 통해서만 살 수 있도록 하면서 ‘보조금 담합’을 하는 일도 허다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디 통신사가 요금이 저렴하니까 거기로 옮겨야 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보조금을 몇 푼 더 준다니까 그 통신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보조금 경쟁만 있을뿐, 요금 경쟁이 없다는 얘기다. ‘요금 담합’ 수준이다.

요금이 똑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문자메시지 20원, 통화도 1초당 1, 8원, 기본요금 1만1000원 데이터 요금도 같고요. 더 심지어는 정액요금제가 같습니다. 34요금제, 44요금제, 54요금제. LTE 52요금제, 62요금제. (YTN 10월3일)

이 배경에는 ‘요금인가제’라는 제도가 있다.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하거나 기존의 요금제를 변경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KT나 LG유플러스는 그냥 신고만 하면 된다.

이 제도는 ‘1위 통신사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아 후발 사업자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1991년에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일종의 ‘요금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면서 ‘요금 담합’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고 요금인가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요금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다.)

진단도, 처방도 틀렸다

결국 핵심은 통신사와 제조사의 단말기 출고가 & 보조금 담합, 통신사들 간의 요금 담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기는 커녕 엉뚱하게도 오히려 보조금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요금 경쟁 없이 보조금 경쟁만 이뤄지던 상황에서 이제는 아예 보조금 경쟁마저 금지하는 법을 만든 것.

그러면서 정부는 ’보조금을 규제하면 요금이 내려갈 것’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보조금 차별을 없애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리점들이 반박했고, 국회입법조사처에서조차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가 나왔는데도 말이다.

작년 초,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보고서를 냈습니다. 통신사가 보조금을 쓰는 것은 마케팅 활동인데, 정부가 이걸 규제하는 것은 영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할 소지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통신사가 보조금을 자유롭게 정하되, 외국산 등등 해서 다양한 단말기를 공급하고 가격만 투명하게 공개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단통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또 지적했습니다. 올해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참고하라고 낸 자료에서, 정부가 보조금 상한선을 왜 정하냐며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정확한 문구는 이렇습니다.

"단통법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단말기 보조금의 상한선을 고시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이용자 간 보조금 차별을 해소하는 문제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음” (SBS 9월25일)

3장 :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

정체가 의심스러운 단통법에도 그나마 괜찮은 구석이 한곳 쯤은 있었다. ‘분리공시제’였다.

단통법의 사라진 반쪽

방통위는 논의 끝에 "이동통신사업자는 이동통신사업자가 지급하는 지원금을 공시할 때에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제조업자와 협의해 이동통신사업자가 직접 부담하는 금액과 이동통신단말장치 제조업자가 이동통신사업자에 지급한 장려금 중 위 지원금에 포함된 금액을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공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휴대전화 제조사의 판매장려금과 이동통신사의 개별 지원금을 합해 구성되는데 분리공시는 이를 따로따로 소비자에게 공시하자는 것이다. (연합뉴스 8월8일)

단통법이 엉터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이 분리공시제에 대해서만큼은 기대를 걸었다. 왜 그럴까?

보조금 분리공시로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지급하는 휴대폰의 모델별 보조금이 고스란히 공개된다. 현행처럼 특정 이통사나, 대리점·판매점을 통해 불법 보조금을 살포할 수도 없다. 출고가에서 보조금을 제외한 사실상의 가격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만큼 출고가 인하에 경쟁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경제 8월10일)

제조사의 지원금이 공개되면 단말기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단말기 가격이 90만원이고 제조사의 지원금액이 10만원이면 그만큼 단말 인하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 제조사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8월8일)

또한 분리공시제는 ‘분리요금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제도로 꼽혔다.

분리요금제는 꼭 새 단말기를 구입하지 않고 중고폰이나 ‘직구’를 통해 공기계반쪽(가입되지 않은 단말기)를 들고 가더라도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제도다. 새 폰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보조금 혜택을 많이 받고 같은 기기를 오래 쓰는 사람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억제하고, 혜택을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취지였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체 보조금 중 제조사 보조금을 뺀 통신사 보조금이 얼마인지를 알아야 했다. 예를 들어 ‘전체 보조금 30만원 중에 통신사 보조금이 24만원이니까, 거기에 맞춰서 요금할인은 매달 1만원씩 해주겠다’고 계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30만원’만 가지고서는 통신사가 깎아줘야 하는 요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것.

로비, 로비, 로비

그러나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혔던 이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시행 불과 1주일 전에 무산됐다. 통신사와 제조사들은 모두 분리공시제에 찬성했다. 오직 삼성전자만 노골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통사는 분리공시제가 단말기 출고가 인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일찌감치 찬성 입장을 천명한 반면에 국내 최대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마케팅 비용 등 영업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며 이에 반대해왔다. (연합뉴스 9월24일)

지난 9월24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단통법 고시안 가운데 ‘분리공시제’ 조항을 삭제하도록 방통위에 권고했다. 상위법인 단통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단통법 제정 때부터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자료 제출 의무를 정해놓은 단통법 제12조 1항 마지막 문장은 ‘다만’이라는 단어 뒤로 이렇게 이어진다. “이통사가 제출하는 자료는 휴대전화 제조사마다 이통사에게 지급한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게 작성되어서는 안 된다.” 법 제정 때부터 삼성전자가 강력하게 요구해 들어간 문구다.

삼성전자는 왜 분리공시제에 반대하는 걸까? 한 이통사 임원의 말이다. “삼성전자는 자기 물건을 많이 팔아주는 대형 대리점에 장려금을 더 많이 준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장려금을 각각 얼마씩 준다는 게 공개돼버리면, 대리점을 통제할 채찍과 당근이 없어진다. 이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LG전자는 분리공시제에 반대하다가, 최근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겨레21 제1030호, 10월6일)

삼성전자의 조직적 로비가 있었다는 정황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단통법 국회 통과가 무산됐던 지난 2월 이경재 당시 방통위 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제조업체의 로비가 있어 그런지 진행이 잘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석 달 뒤 이 전 위원장은 전격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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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단통법이 통과되자 삼성전자가 분리공시 조항 삭제에 로비력을 집중했다. 지난달 24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김재홍 상임위원은 “(분리공시 조항은) 통신사가 찬성하고 제조사가 반대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통신사, 시민단체 전부 다 찬성하는데 제조사 가운데 삼성만 반대한다”면서 “그걸 규개위가 받아들여서 억압으로 결과를 내놓으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 10월5일)

주무부처인 방통위의 최성준 위원장은 분리공시제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는 제대로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첫날인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분리공시를 놓고 업계의 의견이 대립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는 제대로 몰랐다. 각계 의견을 청취하느라 관련부처와 협의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가운데 주요 골자였던 분리공시가 무산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판단 착오는 있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마치 분리공시 무산을 정상 업무 처리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차질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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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단통법의 핵심이었던 분리공시는 무산됐다. 한 이통사 임원은 “분리공시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은 코미디에 가깝다”며 “분리공시와 관련된 반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한국일보 10월9일)

결말...? :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단통법 지옥

단통법이 ‘반값통신비’는 커녕, 전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더 높이는 법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이해관계가 얽힌 주체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

결국 단통법과 관련한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동통신사, 새로운 시장을 얻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 예전보다 강력한 규제 수단을 거머쥔 일부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이해 관계자가 손해를 보는 구도다. 소비자나 스마트폰 제조 및 판매업체, 미래부와 방통위를 제외한 경제부처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동아일보 10월6일)

정부는 뒤늦게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곧 통신사들이 요금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 말이다.

10월1일 단통법 시행 이후 네티즌들이 단통법을 '전국민 호갱법'이라고 비꼬고 있다. 최 위원장은 "단통법 시행 첫날 (보조금이 낮다고) 한 말 등을 (이동통신사가) 참조할 것"이라며 보조금 혜택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단통법으로) 이동통신사 수익이 늘어나면 소비자 비난을 받고 요금을 인하하거나 데이터를 더 주거나 등 소비자 후생을 늘리는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10월8일)

여론이 악화되자 통신사들도 움직이긴 했다. 보조금을 ‘찔끔’ 올렸다. 그마저도 최고가 요금제에 한해 적용되거나 특정 단말기는 아예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동통신 3사가 이동통신 단말기유통구조개건에관한법률(단통법) 시행 2주차를 맞아 일부 최신 기종의 휴대폰에 대한 보조금을 소폭 올렸다. 성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8일 이통 3사는 해당 홈페이지에 휴대폰 보조금을 일제히 공시했다. 이는 지난 1일 단통법 시행과 함께 처음 휴대폰 보조금을 공시한 후 1주일 만에 이뤄진 2차 공시다. 이통3사는 휴대폰 보조금을 한번 공시하면 1주일간 수정할 수 없다. (국민일보 10월8일)

지난 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후 단말기를 살 때 주는 지원금이 너무 적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이동통신3사가 8일 재 공시를 통해 지원금을 조금 상향했다.

하지만 상향된 금액이 많아 봤자 10만 원이 안 되는 데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은 갤럭시노트4의 경우 사실상 지원금이 그대로다. (이데일리 10월8일)

그 사이 휴대폰 대리점 관계자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하소연을 쏟아내고 있다.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한 한 대리점 관계자는 매출이 90% 감소했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일부 대리점주들은 13일 통신사를 항의방문하기로 했다.

한 시민단체는 국회에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고, 온라인에서는 단통법 폐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이 ‘지옥도’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13일부터는 단통법 관련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다. 성토가 이어지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뾰족한 해법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세상에 이런 법이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