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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7일 18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07일 18시 59분 KST

'제보자'의 남다른 점

제보자

기자 생활을 <한겨레>에서 했던 탓에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언론 보도에 항의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노태우 정부의 공안정국 때는 편집국에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고, 김대중 정부 때 한 퇴역군인 단체가 신문사에 쳐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섬뜩했던 건, 2005년 이른바 ‘황우석 사태’ 때였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반대하며 시위하던 사람들은, 과시나 으름장의 차원을 넘어 열렬하고 집요해 보였다. 황 박사 연구가 난치병 치료의 희망을 담보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이게 공사구별 못 하는 사회 시스템, 뒤틀린 애국주의, 시류에 영합한 자칭 보수 언론의 보도와 맞물려 실제로 보도를 못 하게 하고 연구 성과의 검증을 막아버릴 지경에 이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대중이 이렇게 무서워질 수 있구나!’

황우석 사태를 다룬 영화 <제보자>를 봤다. 나는 재미있었지만, 재미의 여부를 떠나 영화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실을 다룬 고발영화라서가 아니라, (최근 몇년 사이의) 사실을 다룬 고발영화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어떤 태도를 봤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관객을 자극하는 양념을 덜 쳤다고 할까.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윤 피디(박해일)와, 황우석 박사를 연상하게 하는 이 박사(이경영)가 좋은 편, 나쁜 편의 양끝에 서서 한쪽은 진실을 파헤치려 하고 한쪽은 감추고 덮으려 한다. 이런 구도의 영화라면 으레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사연을 만들어 넣는다. 악당과 악연이 있거나,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개인적인 사정이 있거나…. 이 영화의 윤 피디에게 그런 게 없다. 직업적 열정과, 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직업적 윤리의식만으로 달려간다. 한국 영화에 이런 주인공 드물지 않나.

다음은 나쁜 편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충분히 나쁘게 만들어 관객이 혈압 올리는 순간을 유도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런 순간을 안 만든다. 이 박사를, 옳지 않지만 이해는 가거나, 최소한 정상참작은 해줄 수 있는 인물로 그린다. 잘못된 정보를 광신하거나, 시류에 영합하거나, 미심쩍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한쪽으로 몰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의 혈압은 안 오를지 모르지만, 사회가 너무 쉽게 진실의 반대쪽으로 휩쓸려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박사 연구 결과의 진위가 도마에 올라 사회가 들썩거릴 때, 이 박사가 타고 가는 승용차를 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휠체어가 막아선다. 차에서 내린 이 박사에게 그가 “힘내세요”라고 진심을 담아 힘겹게 말하는 모습을 영화는 꽤 길게 비춘다. 자칫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태도! 관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거다.

그 장애인을 비난하기 힘들지만 편들 수도 없다. ‘약자라고 다 옳은 편에 서는 게 아니구나. 아니, 여차하면 옳지 않은 일에 동원될 수도 있구나. 그럼 그 옳지 않은 일을 누가 주도하나. 이 박사 혼자서 가능한가. 이런 사회의 광기는 어디서 오지?’

<제보자>의 이런 전략은, 자극적이고 강력한 드라마를 원하는 지금 한국의 분위기에서 보면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영화를 보고서 흥행이 덜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개봉 첫 주인 지난 주말에 흥행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의 영화가 흥행한다는데…,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