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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4일 13시 59분 KST

장하성 "새정치, 10년 안에 집권 불가능"

한겨레
장하성 기업지배구조 연구소 소장이 11일 오후 고려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내가 안철수 후보를 버린 게 아니라 그가 날 버린 것”

함께 잘사는 자본주의 주창 <한국 자본주의> 곧 출간

“정책은 얼마든지 있고, 문제는 이를 실현할 정치적 리더십이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한겨레>와 만나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를 극복할 수 있는 한국경제의 새 패러다임으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제시하며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의 경제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소액주주운동 대부’, ‘재벌 저격수’로 불려왔다.

장 교수는 “정당들이 진보와 보수를 넘어선 정치개혁을 통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구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계급배반투표’, 공약을 제대로 안지키는 정당의 후보를 찍는 ‘묻지마식 기억상실투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인터뷰는 오는 16일 한국경제 진단과 해법을 담은 <한국 자본주의> 출간을 앞두고 이뤄졌다. <한국 자본주의>는 20여 년간의 경제민주화운동과 안철수 18대 대선 예비후보의 경제정책 총괄 등 정치 관련 활동의 성과를 담은 그의 첫 저서다. 전 세계적인 불평등 심화를 분석한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론> 한국어판 출간과 시기가 맞물려 관심을 더한다.

장 교수는 정의로운 자본주의 달성을 위해 기업 이익 중에서 가계로 분배되는 몫을 늘리기 위한 ‘초과 내부유보세’의 신설, 비정규직이 맡은 일이 2년 이상 지속되면 해당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 소득세와 법인세 증세 등을 제안했다. 또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 등을 통한 재벌의 소유구조와 경영행태 개선 정책도 내놓았다. 그는 또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신자유주의 비판과 정부개입 확대 주장,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과 삼성특별법 제안도 한국 현실에 안 맞는다며 비판했다. 장 교수가 사촌동생인 장하준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책 출간을 계기로 한국경제에 관한 새로운 논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도발적 제안을 곁들였다.

“한국경제 논쟁 비현실적…한국은 서구와 달라”  

-이번 책의 집필 동기는?

=그동안 한국경제 논쟁은 파편적으로 진행됐다. 또 좌우진영 모두 한국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이념적 대립 속에서 진행했다. 우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좌파는 이념적 지향성을 위해 논쟁을 했고, 대중영합적인 주장도 적지 않았다.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외국에서 벌어진 일을 마치 한국의 일처럼 착각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문제의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가치에 맞도록 경제도 나아가야 한다.

-2008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한국경제의 문제도 이와 연관짓는 지적이 있는데.

=한국은 선진국과 외형적 유사성은 있으나 원인과 과정이 다르다. 미국과 유럽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복지의 축소, 정부 역할의 축소를 가져왔다. 하지만 한국은 애초 복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유럽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가 존재했다. 미국도 대공황 이후 정부 개입을 확대하는 케인스주의가 주도하다가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로 전환했다. 하지만 한국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에서야 겨우 시장경제를 시작했다. 일부 진보좌파들이 나쁜 것을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한국 현실에 안 맞는 ‘수입된 논쟁’에 불과하다. 잘못된 진단으로는 옳은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보다는 기득권이 문제”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아니라 구자유주의(시장경제의 기본질서)의 결핍이 근본문제라는 진단인데, 한국의 잘못된 신자유주의 비판의 사례를 꼽는다면?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채택했음에도 100대 부자 중 70%가 당대의 창업자다. 하지만 한국은 75%가 물려받은 부자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시장이 아니라, 기득권이 지배하는 나라다. 민영화나 정리해고 등을 신자유주의라며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문제다. 담배판매는 국가가 굳이 직접 할 필요가 없다. 전매청을 담배인삼공사로 민영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신자유주의가 아니다. 기업이 망할 지경이 돼서 정리해고를 하는 것도 신자유주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외환은행 노조가 하나은행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것도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높은 임금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정부 개입 확대 주장을 일부 진보좌파의 ‘박정희 향수’라고 비판했는데.

=한국경제의 근본문제는 박정희 모델(정부에 의한 계획경제와 관치)에 기초한 정부와 재벌의 개발연대에 의한 시장 압살이다. 따라서 그 해법은 시장경제를 정상화하고 시장실패를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일부 진보좌파가 신자유주의 탓을 하면서 오히려 박정희 모델에 향수를 보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사촌동생 장하준 교수도 비판…“재벌과 타협은 불가능”

-장하준 교수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론도 비판했다. 장하준 교수는 삼성의 승계 과정에서 외국인의 경영권 위협을 막아주고, 대신 경영에 실패하면 국가가 경영권을 갖는 ‘삼성특별법’을 제안했는데.

=재벌과의 대타협은 불가능하다. 우선 대타협의 한 축인 노동계의 대표성이 없다. 재벌도 이미 2, 3세로 승계돼, 타협의 픨요성을 못느낀다. 삼성특별법은 사실상 이건희 특별법에 불과하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경영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교체한다. 역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운명과 국가경제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삼성의 경영권은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좋은 경영을 하기 위한) 도전의 대상이다. 재벌총수의 황제경영권을 보호해주고 세습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기득권 세력의 궤변이다.

지난해 5월 22일 안철수 의원의 정책연구소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관련 기자 간담회 모습. 가운데는 '노동 중심 진보정당론'을 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외국인 주식투자자를 ‘먹튀 투기꾼’이라고 공격하고, 국부유출을 우려하는 주장도 많은데.

=1997년과 2008년 위기 당시의 주가 폭락이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의 대규모 이탈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또 소버린과 론스타를 예로 드는 국부유출론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버린과 론스타는 에스케이와 외환은행의 주가 상승으로 큰 이익을 얻었는데, 같은 기간 나머지 국내 투자자들도 똑같이 이익을 봤다. 론스타에 앞서 외환은행에 투자한 독일의 코메르츠방크는 손실을 봤다. 또 중국의 상하이차도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손실을 보고 떠났다. 돈을 번 외국인투자자는 나쁜 먹튀자본이고, 돈을 잃은 외국인투자자는 좋은 자본이라는 말인가?

“규제완화? 국가경쟁력 낮은 건 대부분 기업들 잘못”

-박근혜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투자 확대를 위한) 규제완화론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약한 것은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많은 규제를 촉발시키는 원인(병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오히려 높다.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투자부족이 아니라 소비부족이라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무지 탓이다. 또 전경련이 국가경쟁력 저하 책임을 각종 규제에 전가하면서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를 인용하는 것도 엉터리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기업 이사회의 경영진 감독 역할(121위), 소액주주 이익 보호(109위),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99위), 노사 협력(129위), 여성의 노동참여(94위) 등에서 모두 최하위권이다. 이들 대부분은 기업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스스로 해결할 사안들이다.

 

-일부에서는 장 교수의 소액주주운동을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확산을 몰고온 ‘트로이의 목마’라고 공격하는데?

=미국과 유럽의 경우 주주들이 단기 경영성과를 중시하는 게 문제로 지적되는데, 한국은 해당이 안된다. 기업이 배당을 안 해도 한국의 주주들은 반발을 못한다. 한국은 (주주가 횡포를 부리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재벌총수가 멋대로 하는) 총수자본주의다. 주주권리 보장이 잘되는 나라 순위를 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하는 북유럽 국가들이다. 정작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은 16위에 불과하다.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국가들이 주주 권리도 제대로 보호한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주만을 위한 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리 존중을 요구한다.

“주주자본주의 아니라 총수자본주의가 문제”

-2004년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삼성전자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국민불안을 조성해서 경영권을 지키려는 삼성의 자작극에 불과하다. 삼성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필요한 자금 규모는 최소 100조원에 이를 정도로 크다. 올해 6월말 현재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은 50%를 넘지만, 5% 이상 보유자는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지분이 많은 외국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부펀드이거나, 미국계의 퍼트남 등 분산투자를 하는 재무적 투자자로, 경영권 인수와는 관련이 없다.

장하성 교수는 안철수 의원의 정책연구소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핵심 멤버였으나 결별했다. ⓒ한겨레

-‘정의로운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업이 내부유보를 줄이고 임금과 배당으로 분배를 늘리도록 기업이 적정수준 이상으로 유보한 이익에 대해 ‘초과 내부유보세’를 부과해야 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 전환 기준 기간 2년을 ‘동일 노동자의 근무기간’에서 ‘동일 업무의 존속기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 10억원 이상의 초고소득에 대한 소득세율을 50%로 높이고, 대기업의 법인세도 올려야 한다.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해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배제, 다중 주주 대표소송제를 도입해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재벌정책으로는 소유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제도’, 계열사 주식을 100% 소유하는 ‘내부회사제도’, 계열사의 경영권을 목적으로 주식을 소유할 때는 50% 이상 보유를 의무화하는 ‘계열사 주식 의무매수제도’가 필요하다. 또 재벌의 경영행태 개선을 위해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집중투표제 도입,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초과 내부유보세는 최경환 경제팀이 발표한 기업소득 환류세제와 유사하다.

=올초에 내부유보세 관련 부분의 원고 집필을 끝냈는데, 최 부총리가 최근 거의 똑같은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피케티 교수의 ‘자본세 도입’ 주장은 한국 현실에 안 맞아”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심화에 대해 경고하고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주장했는데.

=불평등 심화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누진세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세 도입 방안에는 생각을 달리한다. 자본세 도입의 근거가 있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한다’는 피케티 이론은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한국은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낮다.

-정의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며, ‘바보야, 문제는 정치다’라고 말했는데.

=정책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이미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주장하던 경제민주화를 수용했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정치적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도 당선되자마자 공약을 버리지 않았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정당들에게 진보와 보수를 넘어선 정치개혁을 통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구현하도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요구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있다. 프란체스코 교황도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계급배반투표’, 공약을 제대로 안지키는 정당의 후보를 찍는 ‘묻지마식 기억상실투표’에서 탈피해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의 정책을 총괄한 것도 올바른 정치를 위한 것일 텐데, 왜 안 후보와 결별했는가?

=안 후보와의 관계를 끊은 것은 2013년 11월 신당 창당을 위해 새정치추진위원회 결성했을 때다. 캠프 참여 때부터 정치는 안한다, 당이 만들어지면 떠난다고 천명했다. 더욱이 안 후보가 민주당과 합당을 한 이후에는 내가 도울 일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 구조라면 10년 안에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 지향점과 가치가 없고, 정책의 일관성도 없이, 오로지 계파끼리 국회의원 자리 지키는 데 급급한 정당이다. 내가 안 후보를 버린 게 아니라 안 후보가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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