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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4일 11시 44분 KST

팀 쿡의 애플 VS 잡스의 애플

애플 CEO 팀 쿡이 9일 아이폰6와 애플워치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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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CEO 팀 쿡이 9일 아이폰6와 애플워치를 발표하고 있다.

‘미적 가치’ vs ‘실용주의’ 지향점 뚜렷한 대비

주가·시가총액 신기록 행진…‘보통 기업’ 변신

애플의 사령탑 팀 쿡(53)은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가, 약화시키고 있는가? 2011년 8월 잡스에 이어 애플의 최고경영자가 된 팀 쿡이 3년여 만에 사실상 최대의 평가무대에 올라섰다.

지난 9일 애플은 아이폰6, 6+와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 등 일련의 신제품을 발표했다. 그동안 팀 쿡 체제의 애플은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등을 출시해왔지만, 이는 기존 제품의 연장이었다. 팀 쿡에게는 혁신제품을 통해 애플의 리더로 합당한 능력을 증명하라는 시장과 소비자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쿡은 “새로운 카테고리의 대단한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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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자에서 추격자로 변신” vs “스타일과 전통 계승”

제품 발표 이후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포브스>는 “팀 쿡의 애플이 시장 선도자에서 추격자로 변신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4.7인치, 5.5인치의 대화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애플이 내년 출시를 예고한 스마트 시계는 삼성, 엘지, 소니, 모토롤라 등이 이미 판매중이며, 모바일 결제는 구글이 3년 전 진출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내 매체들을 비롯해 일각에서는 쿡이 새로울 것 없는 제품을 들고 나온데다, 잡스의 유산과 철학을 팽개쳤다며 냉소적 평가를 퍼부었다. 쿡은 9일 무대에서 아이폰 새 모델을 선보인 뒤 “한 가지가 더 있다(원 모어 싱)”를 외치고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애플워치를 공개했지만, 잡스 때의 신선함은 없었다. 발표 직전까지 비밀을 고수한 잡스 시절과 달리 이번엔 아이폰의 크기와 모델명, 스마트워치 출시 정보가 행사 전에 유출된 탓이다. 특히 잡스가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대화면 스마트폰을 내놓고, 맨눈의 식별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자랑해온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무색하게 하는 고해상도의 ‘레티나 에이치디(HD)’를 채택했다.

한편 영국 <가디언>의 찰스 아서와 <리코드>의 월트 모스버그는 이번 신제품 발표가 애플이 추격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게 아니라, 오히려 애플다운 전통이라고 평가했다.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채택한 맥 컴퓨터를 비롯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선발 제품이 있는 영역에 뛰어들어 새로운 가치와 시장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사용성의 혁신을 통해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게 잡스의 마법이었다. 쿡이 선보인 제품 역시 이러한 애플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예약판매 신기록…주가·시가총액 ‘사상 최고치 행진’

아이폰 새 모델은 예약판매 신기록을 세우고 온라인 애플스토어 접속이 지연되는 등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의 주요 증권사들은 애플워치에 대해 “기대 이상의 혁신제품”이라며 애플의 목표주가를 상향조정했다.

애플은 세계 최대기업으로 시가 총액이 6087억달러(12일 기준)이며, 2위인 4138억달러의 엑슨모빌과 격차를 크게 벌렸다. 애플 주가는 팀 쿡이 사령탑을 맡은 2011년 8월24일 51.11달러(액면분할 기준)에서 현재 101.66달러로, 3년 만에 2배가 됐다. 잡스는 7인치 태블릿피시에 대해 “출시 즉시 실패할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지만, 아이패드 미니는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출시 첫해인 2012년 아이패드 판매의 60%를 차지했다. 쿡의 경영 성적표는 ‘A+’다.

잡스 시절 상상 못하던 ‘인수합병’ ‘주주 배당’…

‘잡스의 분신’으로 여겨져온 애플호에 쿡이 선장으로 승선한 뒤 기업문화 변화는 확연하다. 최고경영자가 ‘오로지 제품’에만 신경을 쓰던 잡스 시절과 달리, 기업활동의 다양한 측면을 챙기기 시작했다. 잡스는 1996년 애플 복귀 뒤 엄청난 현금이 쌓여도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고 큰 규모의 기업 인수도 안했다. 쿡은 잡스의 ‘무배당 원칙’을 깨고 2012년 17년 만의 대규모 배당을 실시했다. 이후 주식 액면분할,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프로그램 강화 등 주주친화적 정책이 이어졌다. 쿡은 지난 5월 30억달러에 헤드폰 및 음악스트리밍 기업인 비츠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고 브랜드를 유지하기로 했다. 애플 최대의 기업인수이자, 최초로 ‘애플’ 아닌 상표를 쓰게 됐다. 쿡은 잡스가 ‘성전’이라고까지 전의를 불태웠던 안드로이드 진영과의 특허 전쟁도 불씨를 꺼뜨려가고 있다. 지난 7월엔 창사 이래 앙숙이던 아이비엠(IBM)과 전략적 협약을 맺고 기업용 앱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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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트위터에선 “차별 철폐” “성소수자 권리 옹호”

잡스 1인이 주도하던 경영 스타일도 달라졌다. 쿡은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너선 아이브에게 제품 개발 전반을 위임하고, 마케팅은 필 쉴러, 소프트웨어 개발은 크레이그 페러리기 등 주요 임원에게 권한을 넘기는 등 집단지도 체제 형태로 애플의 의사결정 구조를 변모시켰다.

사회책임 경영도 늘어났다. 중국 공장의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등 노동조건을 크게 개선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등 친환경 정책과 잡스 시절 없던 기부도 확대했다.

쿡은 잡스와는 다른 개인적 특징도 드러내고 있다. 제품 발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던 잡스와 달리 지난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 무대에서는 페더리기가 자신보다 훨씬 조명받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쿡 자신은 트위터를 통해 마틴 루서 킹과 미국 민권법의 정신을 강조하고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를 옹호한다.

“잡스가 스타라면 쿡은 무대 매니저”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쿡은 양호한 실적과 고유한 경영스타일을 통해 ‘잡스의 애플’을 ‘쿡의 애플’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9일 신제품 발표와 시장의 반응은 ‘쿡의 애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쿡은 합리적이고 탈권위적 리더십으로 애플 안에서도 인기가 높다. 잡스가 늘 점심을 조너선 아이브와 함께 한 것과 달리, 쿡은 사내 식당에서 모르는 직원들과 합석하기를 즐기고 이메일과 타운홀미팅을 통해 적극 소통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전직 기자 유카리 케인은 잡스 사후 2년간 200여명의 애플 직원들을 인터뷰한 뒤 지난 3월 펴낸 <유령의 제국: 잡스 이후의 애플>에서 “잡스가 스타이자 이상주의자라면, 쿡은 무대 매니저이자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잡스의 창의성 없이 쿡의 고집 센 실용주의에 균형추가 없다는 게 문제다”고 말했다.

쿡의 애플은 시장의 다양한 수요에 적극 반응하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아이폰5는 색상과 가격대를 다변화한 보급형 모델 아이폰5C를 추가했으며, 애플워치 역시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여러 종류의 모델과 시계줄을 준비했다.

잡스 ‘미적 가치 추구’ vs 팀 쿡 ‘실용주의’ 

실용성보다 예술성을 추구한 잡스의 애플과 구별된다. 잡스는 아이폰4에서 디스플레이 기능이 없는 뒷면까지 유리로 만들어 무거우면서 깨지기 쉽게 만들었다. 유리와 철이란 미니멀리즘 집착은 ‘안테나 게이트’라는 수신불량을 초래했을 정도다. 쿡 이후 그런 추구는 사라졌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에필로그에는 병상의 잡스가 직접 쓴 글이 실려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내 방식이 아니다.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쿡의 애플’은 제품 이외에도 소비자, 투자자, 직원 등 다양한 층위의 요구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문제는 애플의 기업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갈수록 늘어나는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일반적 기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독특한 카리스마의 창업주가 건설한 특별한 애플을 후임 경영자가 합리적이면서 효율적인 조직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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