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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3일 13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13일 13시 37분 KST

패자부활 사다리 끊긴 사회

한겨레

대학 졸업 뒤 3년째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송아무개(29)씨에게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해체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송씨는 “개천에서 용은 나지 못한다. 이제 한번 실패한 이들은 재기하기 어렵다. 꿈을 펼쳐볼 기회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이 떠올라 원더스 해체가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패자부활전은 있다. 시청자들은 극적으로 무대에 돌아와 열창하는 이들에게 환호를 보낸다. 그러나 발 딛고 사는 일상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 사회는 이런 숨통조차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7전8기’를 꿈꾸는 선수들이 모인 고양 원더스의 갑작스런 해체는, 이 팀의 슬로건이던 ‘열정에게 기회’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05년 시즌 종료 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됐던 넥센 히어로즈의 내야수 안태영(29) 선수는 7년 뒤인 2012년 11월 고양 원더스를 통해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다. 지난해 7월에는 친정팀인 삼성을 상대로 ‘원더스 출신 1호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안씨는 “원더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고 했다.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은 팀 해체 이튿날인 12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옛날에는 실업팀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프로구단 말고는 갈 데가 없다. 피라미드의 위가 넓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감독을 맡은 뒤 “원더스를 통해 한국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1등으로 가는 좁은 문을 통과한 소수 엘리트의 승자독식만으로는 ‘한국 야구’가 강해질 수 없다는 것, 훈련과 노력을 통해 ‘2류’나 ‘퇴물’들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발판이 ‘한국 야구’에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한국 야구’를 ‘한국 사회’로 바꿔 읽은 전문가들은 고양 원더스의 해체를 우리 사회의 어떤 징후로 해석한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2부 리그가 없어지면 1부 리그 역시 존립할 수 없다. 더 이상 올라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영역에서 보면,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 패배자가 되고, 패배하면 제2의 삶은 없다는 식의 인식이 너무 팽배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이상적인 사회는 피라미드 형태가 아니라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꼴이다. 원더스 해체는 오직 1등에게만 ‘살아갈 권리’를 승인하는 한국 특유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적 현상”이라고 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실패조차 두려워하게 만들고 ‘모 아니면 도’라는 투기적 생활양식을 부른다. 서관모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몇년 동안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독주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기보다는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더 늦기 전에 어려운 이웃과 패자를 끌어안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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