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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6일 21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06일 23시 58분 KST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시대는 끝났나?

gettyimageskorea
한 남자가 런던에서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찍고 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거이자 온라인 플랫폼 Artsy의 아트게놈프로젝트 디렉터 매튜 이스라엘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이번 글은 이전에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가 한 명의, 하나의 작품에 대한 내용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 '항상 희망이 있다(There is Always Hope)'라고도 알려진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말이다.

뱅크시, 풍선을 든 소녀, 2007

그런데 뱅크시에 반감을 품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그의 작품을 훼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또한 2013년 뱅크시의 뉴욕 거주가 끝난 뒤 그의 이름을 언론에서 많이 못 접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뉴욕 거주를 다룬 영상을 보았다. 끝 부분에 자기 나이(38)에 대해 농담을 하는데, 스스로 거리미술을 계속 하기에 너무 늙지 않았나 운을 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이제 끝인가? 앞으로 뱅크시의 작품 활동이 예전만 하지 못할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역사 속의 인물로 기억되어야 하나? 보통 사람에게는 물론 예술계에서 뱅크시의 영향력은 의미가 없어질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뱅크시는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물론 미술사에서도 그와 그의 작품이 오랫동안 토론되기를 바란다. 이런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뱅크시에 대한 몇 가지를 나열해 봤다. 미술 토론이나 수업이 있을 때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뱅크시 완결판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제안사항이 있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1

인기

미술사적인 차원, 그리고 아방가르드 작가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과도한 인기가 항상 효과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뱅크시의 매력, 특히 젊은이들이 그에게 느끼는 매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작품이 발견될 때마다 뱅크시만큼 높은 인기를 끄는 아티스트가 또 있나? 어떤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어디에 '거주'한다고 그만큼의 관심이 쏠리겠나? 또 어떤 예술가의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2010년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한 장면

#2

익명성

뱅크시의 본명이 로빈 거닝햄(Robin Gunningham)이라는 설과 그가 작업하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되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다. 유명인에 대한 집착이 만연하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자기표현과 자랑이 만연한 시대에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의 정체를 숨겨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뱅크시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또 그의 작품에는 늘 정치적 이념이 깔리기에 사회악의 대척점에 있는 소설의 익명 영웅들, 즉 브이포벤데타의 V, 배트맨, 스칼렛 핌퍼넬(엠마 오르치의 소설에 나오는 영웅)과 같은 인물들은 물론, 국제 해킹 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와 등을 연상시킨다.

#3

제도권 밖의 예술

뱅크시의 작품은 갤러리와 박물관에 여러 번 걸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작품을 미술계와 동떨어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소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수많은 작품이 불법공간에 전시된 것은 당연지사고 때로는 매우 도발적인 장소에 나타났다. 뱅크시가 아니면 감히 누가 이스라엘-웨스트 뱅크 국경에서 작품을 선보일 생각을 할 것이며, 누가 디즈니랜드 롤러코스터 앞에다가 '관타노모 죄수복'을 입은 전쟁 포로의 인형을 설치하겠나? 그리고 누가 영국 모든 음반 가게에 있는 패리스 힐튼의 CD를 DJ 데인저 마우스의 리믹스로 바꿔치기할 수 있었을까?

2006년 미국 디즈니랜드에 불법 설치한 전쟁 포로 인형

#4

거리미술(Street Art) 시장

뱅크시가 상업적으로 타협했다고(즉 작품으로 돈을 벌었다고) 비난을 하든 안 하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거리미술 시장을 상당한 규모로 키웠다는 것이다.(그래픽 디자이너 셰퍼드 페어리의 역할도 있었다. 패션 브랜드 OBEY의 그래픽 로고를 만들었다.) 거리미술 또는 도시미술로도 불리는 이들의 작품을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만나는 것이 이젠 전혀 어색하지 않다. 또한 뱅크시가 새롭게 창조한 거리미술 시장 덕분에 다양한 작품이 미술 경매에서 혹은 미술 애호가에게 팔리고 있다. 그런 호황에 힘입어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1980년대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특히 뉴욕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호평을 받고 있다.

#5

상위/하위

뱅크시는 그 어는 작가보다 미술계의 상위문화와 하위문화를 잘 접목한 작품을 만들었다. 뱅크시의 작은 영국 언론의 전통을 대표하는 선데이타임스(The Sunday Times)의 일면을 장식했다가 몇 주 후 찌라시로 여겨지는 더선(The Sun)의 일면에 등장했다. 뱅크시의 작품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또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뱅크시의 작품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있다.

#6

인터넷의 힘을 최대로 이용하는 기술

뱅크시는 수명이 짧은 그래피티 아트가 역동적인 인터넷을 통해 어떻게 퍼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2014년 뉴욕에서 활동하던 중 디지털 문화와 과학을 위한 국제 아카데미가 주는 웨비상에서 '올해의 인물'상을 수상했다. 웨비상은 인터넷이야말로 그의 '거주'를 제대로 묘사하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그 예로 뱅크시가 한 달간 운영한 인스타그램 계정(하루에 한 작품만 올렸음) 팔로워는 35만 명에 달했다. 또한 해시태그 #banksy는 3만 8천 번이나 사용됐다. 웨비상은 뱅크시를 통해 "인터넷상에서 미술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고 한다.

뱅크시의 2013년 인스타그램 계정

#6

거리미술의 뉘앙스와 기술적 복잡함

뱅크시의 작품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작품에 따라 준비과정에서부터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색칠을 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그는 짧은 농담을 기피하고 약간 심오한 뜻이 담긴(어떨 땐 익살스러운) 메시지를 추구해왔다. 작품 '풍선을 든 소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더 직설적인 그의 작품을 다시 볼 만하다. 아래 사진은 '이것이 나의 뉴욕 액센트다'라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습게 느껴지지만,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선입견에 빗대어 '전형적인'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선입견을 질문하고 있다.

뱅크시, '이것이 나의 뉴욕 액센트다', 2013

그의 조각품이나 전시품은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리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좋은 예로 런던에서 전시된 도끼에 찍힌 공중전화 박스와 뉴욕에서 만든 트럭 속의 폭포가 있다.

뱅크시, '런던 공중전화 박스', 2006

뱅크시는 그래피티 작품과 조각품 외에도 여러 가지 작품 활동을 했는데 다수의 저서와 전시회가 그것이다. 또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영화까지 만들었다.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이러한 진화된 모습을 보인 경우가 있지만 뱅크시가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7

정치적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뱅크시만큼 정치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가 몇 명이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9/11 테러 자리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원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반대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현대 미술계에 엿을 먹였으며, 소위 말하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개념(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내세운 젊은 영국을 지향하는 문화정책)은 개똥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또한 카트리나 폭풍에 대한 정부의 늑장대응을 맹비난한다. 그 외에도 사회적 악을 다룬 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작품, 감시카메라와 광고의 편재성을 다룬 작품, 빈곤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 유럽의 엄청난 실업률에 대한 작품, 그리고 권리를 박탈당한 시민들의 분노에 대한 작품이 있다.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부조리에 반대하는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새로이 조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범죄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규정을 무조건 좇다가 생긴다.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폭탄을 떨어트리고 한 마을을 완전히 학살하는 것이다."

* 모든 이미지는 banksy.co.uk, instagram.com/banksyny, 그리고 banksyfilm.com에서 받았다. 위 기사에 관한 수정, 제안사항을 환영한다. 관련 시리즈 기사로는 신디 셔먼의 '무제 사진 스틸', 장 미셸 바스키아의 '페가수스', 그리고 키스 해링의 '"크랙 이즈 왝(Crack is Wack)"가 있다.

* 매튜 이스라엘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www.twitter.com/crosstemp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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