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4년 09월 04일 02시 52분 KST

'뉴라이트' KBS이사장 후보, 과거엔 '진보'였다

한겨레

[유레카] 이인호의 변신 / 김의겸

진보 성향 이인호 교수의 ‘변절’ 이유는 ‘혈연’?

조부 이명세, 친일인명사전 수록된 이후 추측

<한국방송>의 이사장이 될 게 확실한 이인호(78)는 영민한 학생이었다. 서울대 사학과 몇 년 후배인 원로 역사학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최고 명문인 서울대사대부고에서 쟁쟁한 남학생들을 제치고 학생회장을 했다. 대학은 1학년만 마치고 유학을 떠났는데도 교수들이 계속해서 이인호를 칭찬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대 교수 시절에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데모가 치열했던 1980년대 러시아 혁명과 인텔리겐차의 역할에 대해 강의를 해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계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만들어질 때는 강만길, 김진균, 이만열 등 대표적인 진보 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전교조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강연도 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이었던 시인 최영미는 “독문학과로 갈까 서양사학과로 갈까 고민하다, 이인호 교수의 얼굴이 어른거려 서양사학과를 선택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인호는 2006년 교과서포럼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본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본인은 “내 사고의 프레임은 변치 않았다. 다만 주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주위에서는 ‘혈연’ 때문일 것으로 짐작들을 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이명세가 2005년 발표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것이다.

이인호의 집안 내력을 보면, 부모 양가 모두 대단하다. 외가 쪽 증조부인 이중하가 대표적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를 두고 청나라와 국경 문제를 논의하다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며 끝내 양보하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남긴 인물로, 국사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훼손되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역사관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래도 정말 그렇다면 사실과 객관을 중시해야 할 역사학자로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러시아 지성사’를 연구한 학자치고는 지성이 결핍됐다.

PRESENTED BY 네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