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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9일 18시 36분 KST

눈알굴리기는 탁월한 트라우마 치료법

수오서재 제공

안구운동으로 트라우마 치료

9·11 테러, 일본 쓰나미 때도 활용

우리네 문화에서 눈알을 심하게 굴리면 경박하다 취급받기 십상인데, 미국의 심리학자 프랜신 샤피로(66)는 눈알을 굴리다 심리 치료의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바로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기법이다. 줄여서 ‘이엠디아르’(EMDR), 혹은 ‘(기억) 재처리 치료법’이다. 그 핵심은 다음 문장에 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을 양쪽으로 움직이면, 뇌에 갇혀 있던 기억이 처리되어 현재의 여러 증상들이 사라진다.” 무슨 마법 같은 이야기인가 싶지만, 세계 정신의학계에서 점점 널리 확산중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료 기법이다.

1987년 공원을 산책하던 샤피로는 자신을 괴롭히던 생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왜, 어떻게?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자신을 관찰했더니, 그 생각을 할 때 자신이 눈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던 것.

고통스런 생각에 정신을 집중하여 치료자의 손을 따라 좌우로 안구운동을 하는 것을 요체로 하는 이 치료법은 1990년대에 의학계에서 큰 논란을 불렀지만 이후 수많은 임상사례와 연구 결과틀 통해 트라우마 치유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참전군인, 성폭력 피해자처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이들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비롯해, 이미 존재하지 않는 절단한 다리에서 통증을 느끼는 환상지통 환자 치료에서도 효과를 봤다. 2001년 미국 9·11사건과 타이 지진해일(쓰나미), 일본 고베지진 때에도 활용됐으며, 세월호 트라우마 치료에도 국내 전문가가 참여하기도 했다.

샤피로가 2012년 펴낸 <트라우마,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는 20년 넘은 임상 치료 경험에서 뽑아낸 100여명의 치료 성공 사례에 대한 보고서이자 이 치료법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이다. 이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건 입증됐지만 그것이 왜 효과가 있는지, 정확한 몸(뇌)과 마음(기억)의 연결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지금도 연구가 진행중이다.

샤피로는 이 치료기법이 수면중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유사하리라고 말한다. 곧, 수면 단계 중 ‘빠른 안구운동(REM) 수면’에서 일어나는 안구운동 덕에 우리가 편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는 것처럼, 깨어 있는 동안에도 안구운동을 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에는 치유를 위한 메커니즘, 곧 ‘적응적 정보처리’ 시스템이 내장돼 있는데 우리가 어떤 정서적 혼란을 경험하든 어느 정도 건강한 수준으로 적응하여 회복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정보처리 과정은 대부분 ‘빠른 안구운동 수면’ 상태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나 신체적 고통, 고통스러운 경험은 정보처리 시스템을 압도하여 기억 네트워크 간의 연결을 방해하고 결국 그 고통의 경험은 뇌에 그대로 기억된다. 당시 감정, 이미지, 신체감각, 그와 관련된 기억이 처리되지 않은 본래의 상태 그대로 저장된다.

그것이 ‘시금석 기억’이다. 달리 말해 ‘처리되지 않은 기억’이다. 이 기억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언제든 비슷한 경험을 할 때 계속 튀어나온다. 큰 싸움을 했던 상대방을 볼 때마다 분노나 두려움이 되살아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거나, 자꾸 떠오르는 원치 않는 불쾌한 생각, 수면 장애, 불안, 큰소리에 지나치게 놀라는 과민 증상도 그런 예다. 샤피로가 이 요법을 ‘재처리’ 치료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예를 들면, 10년째 공황 발작에 시달리며 이를 약물·알코올 중독으로 ‘해소’해온 캐런은 이 재처리 치료 과정에서 네살 때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가 공원에서 두살 동생을 돌보라 한 뒤 가버렸고 이에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캐런은 처음 발작했다. 그런데 얼마 있다 돌아온 아버지는 캐런을 위로하긴커녕 “겁쟁이”라고 했다. 캐런은 이 치료를 통해 그때의 공포와 수치심,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느낌과 기억을 ‘재처리’했고 치유됐다.

이 치료는 단순히 안구운동뿐 아니라, 치료자와 환자의 면담을 통해 시금석 기억을 찾아내고, 양손을 번갈아 두드리거나 환자의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 교대로 소리를 들려주는 ‘양측 자극’ 등을 결합한 통합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책의 옮긴이 셋은 모두 국제 공인 치료자다. 대표 번역자인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한국이엠디아르(EMDR)협회 이사는 14일 전화 통화에서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실은 굉장히 까다로운 치료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독자들이 지금 내 문제가 과거와 연결돼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개선된다. 정신분석보다 이 치료법을 통해 훨씬 더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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