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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8일 14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28일 14시 31분 KST

대우그룹은 정말 억울하게 해체됐나 : 김우중 '대담집'을 둘러싼 3가지 이야기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증언이 담긴 책이 출간되면서 새삼 대우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고 있다.

15년 만에 본격적으로 명예회복에 나선 그의 행보가 심상찮기 때문이다. '김우중 부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 17조9253억원에 대해 “대우에 내린 판결이 헌법 정신에 어긋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까지 준비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가 DJ정부의 기획 해체였다고 주장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 담긴 핵심 내용과 반박들을 3가지로 나눠 정리했다.

1. 대우자동차는 헐값에 GM에 넘어갔다?

김우중 대우회장이 1999년 4월 19일 대우빌딩 본사에서 그룹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모토로 지나치게 확장 투자를 벌이다가 대우자동차의 부실로 몰락했다는 것이 국내외 정설이다.

1999년 당시 DJ 정부는 대우해체 이후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의 계열사들은 살렸지만 대우자동차는 미국의 제네럴모터스(GM)에 넘겼다. 신장섭 교수와 김우중 전 회장은 “남 좋은 일만 시켜주고 한국경제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었다”고 지적한다.

한국금융위기 중에 진행됐던 대우자동차와 GM간 합작 협상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대우가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GM에 합작을 요청했고 GM이 대우차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합작협상을 깬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당시 대우는 당시 무리한 해외사업으로 빚에 허덕였다. 부채는 60조원에 이르렀고 1999년 8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에 돌입하며 해체됐다. 한국일보는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금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채권을 발행하다 보니 부채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김 전 회장은 대담집에서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목적이 수출 등 국내외 생산이나 판매가 아닌 ‘내수용’ 전략이었다고 비판했다. GM 측은 발끈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대목에 대해 한국GM 호샤 사장은" GM이 대우차 인수를 결정했을 당시 직원 수 8200명, 생산량 38만8000대의 회사였으나, 지금 한국GM에서는 직원 2만명이 200만대를 생산한다"며 "수출 대상국도 당시 80여개국에서 150여개국으로 늘었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2. 대우의 유동성 악화와 워크아웃 : 대우의 ‘경영실패’인가 DJ정부의 ‘기획해체’인가

1998년 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단독 면담한 대우 김우중 회장. 당시 빅딜을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신장섭 교수는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정책을 주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신장섭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서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IMF(국제통화기금)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강하게 주장하다 정부와 충돌해 대우그룹이 몰락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한 핵심 쟁점인 '부채비율 200% 규제의 근거와 효용성', '제너럴모터스(GM)의 대우차 비밀 인수의향서', '대우와 삼성의 자동차 빅딜 종용 배경', '대우그룹의 단기차입금 19조원 증가 원인' 등에 대해 해명하라며 공개 질의했다.

대우의 유동성 문제가 외부로 본격적으로 불거진 계기는 금융감독원에서 두 차례 걸쳐 시행한 유동성 규제조치였다.

대담집에 따르면 1998년 7월, ‘CP 발행 한도 제한조치’와 10월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직후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금융권의 자금회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경제팀에서는 DJ에게 대우의 자금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후 유동성 위기가 지속되면 대우는 결국 1999년 8월 ‘워크아웃’으로 처리됐다. 김 회장은 대우 유동성 위기에 대한 정부 측 주장이 본말(本末)을 전도(轉倒)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구조조정 없이는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구조조정을 안 했으면 1년 반 만에 외환위기 극복은 불가능했다. 당시 위기극복에 4∼5년이 걸린다고 했었다. 국제 금융기관에서 칭찬할 만큼 구조조정을 잘한 덕분에 우리나라 재벌들은 이후로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끄떡없었다.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유효한 정책이었다." (연합뉴스, 8월 26일)

강 전 장관은 당시 기업에 적용한 부채비율 200% 규제의 효용성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재정건전성 기준이 자기자본 부채비율 200%였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 맞추자는 것이었는데 대우만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하지만 2년쯤 지난 뒤 재벌들이 모두 맞췄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반박이 무수히 되풀이 되는 재벌 총수들의 언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법조계 인사는 “김 전 회장의 주장은 경영부실로 망한 다른 대기업 사주들의 변명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도 정부나 금융권에서 조금만 더 지원했더라면 기업을 살렸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재계 인사도 “정부 말을 듣지 않아서 멀쩡했던 기업이 망했다는 식의 낡은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싶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일보 강철원 기자, 8월 28일)

3. 추징금 17조9253억원은 과연 부당한가

지난 1999년 1월, 삼성자동차와 맞교환에 반대하는 대우전자 직원들의 모습.

김우중 회장의 이 같은 반격은 결국 추징금 17조9253억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대우그룹의 40조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1심은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2심은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재산을 국외에서 처분한다는 인식만 있으면 자금 순환이 목적이었어도 재산 국외도피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우그룹 사건의 추징금은 임원들에게 선고된 추징금까지 포함하면 모두 23조원이다. 단일 사건 추징금으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국민일보, 8월 28일)

이런 김 전 회장은 재판결과와 추징금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가 공익변론 차원에서 현재 대우 관련 법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법인 서울의 대표 변호사이기도 한 이석연 변호사는 27일 조선비즈와 통화를 통해 “과거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대한)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현재 깊이 있는 검토를 하고 있다”며 “당시 판결 자체가 헌법적으로, 혹은 판결 이후 판결의 기초가 된 사실이 어떻게 변했는지 등, 여러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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