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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9일 14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9일 14시 20분 KST

비운의 떠돌이 : 이라크 쿠르드족에 대한 5가지 사실

이라크사태가 끝없는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고, 유럽 국가들도 지원에 나섰다.

내전이 진행되면서 이라크 쿠르드족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르드군은 최근 반군이 장악하던 모술댐을 탈환하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이라크 정부와의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라크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누구일까? 미국과 유럽은 왜 쿠르드군을 지원하는 걸까? 쿠르드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는 걸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라크사태를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1. 쿠르드족, 탄압과 핍박의 기구한 역사

쿠르드족 앞에는 늘 ‘역사상 단 한 번도 국가를 가져보지 못한 세계 최대의 민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졌지만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한 쿠르드족은 주로 중동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현재 이라크 북부와 이란, 시리아, 터키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들이 모여 사는 영토를 일컬어 ‘쿠르디스탄’으로 칭하기도 한다.

쿠르드족 인구는 3천만~3천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이중 절반가량인 1천460만명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500만~650만명이, 이란에는 8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6월25일)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독립 투쟁을 벌였다. 돌아온 건 끊임없는 탄압과 박해, 그리고 대규모 학살이었다.

‘다섯 조각’으로 쪼개진 상황에서도 쿠르드족은 독립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이 거주하는 국가를 상대로 수십 차례 분리·독립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각국 정부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는 등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데다 역량마저 부족했던 탓이다. 10년에 한 번꼴로 대규모 학살을 당했다. (서울신문 5월11일)

1920년대의 무장투쟁은 유전지대를 탐낸 영국이 개입하면서 잔인한 학살로 끝났다. 터키와 이라크 국경에 독립국가를 세우려던 1980년대의 무장투쟁도 실패로 끝나면서 언어와 문화에 대한 터키 정부의 말살정책이 이어졌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0년대 후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을 자행했고,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을 도왔다’는 구실로 18만명 이상의 쿠르드인을 학살했다.

2. ‘단결’된 쿠르드족은 없었다

그러나 탄압과 학살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쿠르드족의 역사는 곧 분열의 역사이기도 했다. 각지에 흩어진 쿠르드인들은 터키계, 이란계, 이라크계 등으로 나뉘어 대립했고, 강대국과 주변국들은 쿠르드족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이용했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양대 세력인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의 갈등도 역사가 깊다. 때에 따라 손을 잡고 힘을 모으기도 했지만, 1994년과 1997년 등 여러 차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KDP는 이라크를, PUK는 이란을 끌어들였다.

쿠르드족이 여기서 하나로 똘똘 뭉친 것도 아니고 크게 두 파로 나뉜다. 쿠르드 지역을 둘로 나누어서 위쪽은 아르빌을 중심으로 하는 쿠르드민주당(KDP)으로 마수드 바르자니가 집권하고, 아래쪽은 술라이마니야를 중심으로 쿠르드애국동맹(PUK)으로 잘랄 탈리바니가 집권하고 있다.

문제는 두 파가 그동안 서로 대립해 죽고 죽이면서 물리도록 싸웠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겉으로는 연합하는 척해도 물밑에서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겨레21 제515호, 2004년 7월1일)

1992년 5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쿠르드의회 선거 직후 PUK의 잘랄 탈리바니(왼쪽)와 KDP의 마수드 바르자니(오른쪽)이 손을 맞잡고 있다. ⓒAFP

이라크 내에 있는 쿠르드족이 분열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그 전에도 쿠르드족 정치 세력은 독립 투쟁 노선과 방법을 놓고 대결을 벌여 왔는데, 79년 쿠르드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무스타파 알바르자니가 사망한 뒤에 양측 간의 대결이 첨예화했다. (시사저널 제360호, 1996년 9월19일)

이해관계에 따라 각 나라의 쿠르드족끼리 서로를 배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석유는 피보다 진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쿠르드 자치정부가 생기고 이로 인해 터키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라크 쿠르드족의 석유 수출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쿠르드족 처지에서는 터키와 화해 모드를 만들며 석유 수출을 꿈꾸는 와중에 동족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태도와 달리 이라크 쿠르드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는 “시리아 쿠르드 민주동맹당이 시리아 정부와 비밀 거래를 해서 자치정부를 설립하려 한다”라고 맹비난했다. (중략) 같은 쿠르드족이지만 이제는 제각각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 다른 입장이 된 것이다. (시사in 제324호, 2013년 12월6일)

통합된 독립국가를 가져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이런 분열을 낳았던 걸까?

3. 이라크 쿠르드군은 (적어도) 이라크 정부군보다 강하다

이라크 쿠르드족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미국이 개입한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미국은 자신들을 도왔던 쿠르드족에게 자치권을 약속했다. 2003년, 이라크 북부에는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세워졌다.

인구 500만여명의 쿠르드자치정부는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패배한 이후 미국 지원으로 자치 정부와 의회, 헌법, 군(軍) 구성을 보장받고 있다. 특히 관할 유전지대에서 하루 22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등 이라크 중앙정부와는 독립된 행보를 보여 왔다. (한국일보 6월24일)

지난 2003년 4월,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시민들이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는 모습. ⓒAFP

이번 이라크사태에서 쿠르드군(페쉬메르가)은 수니파 반군 IS를 몰아내는 데 있어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쿠르드군이 관리하는 지역의 치안이 제일 안전하다는 소문에 난민들이 밀려들 정도다.

이유는 하나다. 반군에 맞서 그나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쿠르드군 뿐이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껍데기만 남은 이라크 정부군은 IS를 피해 도망가거나 투항하기에 바빴다.

이라크 정부군이 무능한 조직으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후세인 축출 후 군 조직을 새로 만들면서 잘 훈련된 바트당 출신을 배척한 데 있다.

후세인 정권 시절 잘 훈련된 바트당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서부와 북부의 수니파 밀집 지역에서 무장단체로 흡수됐고 그 일부는 ISIL의 이번 봉기에도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조직 안에 만연한 매관매직과 같은 부패 관행도 군경을 무능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두 번째로 미군이 2011년 말 급하게 철수하면서 이라크군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한 점도 정부군의 무능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6월17일)

오합지졸인 이라크 시아파 보안군의 실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IS의 세력을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여전히 페쉬메르가뿐이다. 강대국과 이라크 정부의 박해 속에서 단련돼온 페쉬메르가가 이제는 이라크의 유일한 희망이 된 것이다. (경향신문 8월12일)

18일, 모술댐 지역으로 쿠르드군이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렇다고 쿠르드군이 강하기만 한 건 아니다. 쿠르드군은 IS에게 속절없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8월 초,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모술댐과 인근 유전지대를 IS에게 내준 것.

그러자 미국이 크루드군을 돕고 나섰다. 미군은 무인기와 전폭기 등을 동원해 이 지역의 IS를 상대로 공습을 단행했고, 미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르드군은 17일 모술댐을 다시 손에 넣었다.

페쉬메르가 사령관 타우피크 데스티 장군은 이라크군과 미군 전투기 공중 지원하에 이날 오전 모술댐에 대한 탈환 작전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부는 미군 중부사령부가 전날 전투기와 무인기를 동원, 모술댐 주변 등지에서 IS의 근거지를 9차례 공습한 데 이어 이날도 14차례나 공습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습에는 폭격기와 전투기, 무인기 등이 총동원된 것은 물론 지상기지에서 발진한 폭격기까지 처음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8월18일)

4. 미국과 유럽은 왜 이라크 쿠르드군을 지원하나?

이라크 공습을 결정한 이래, 미국은 쿠르드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애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습을 발표하면서 미군과 미국 시설이 있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을 IS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지역은 쿠르드자치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유럽연합(EU)도 쿠르드군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EU 28개국 외무장관들은 15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3시간 동안 긴급회의를 열고 수세에 몰린 쿠르드군 지원을 위해 주요 회원국이 무기를 공급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8월16일)

이라크 중앙정부는 미국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는 16일(현지시간) 미국의 쿠르드군 지원에 대한 이라크 중앙정부 당국자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전했다.

이들은 “미국의 공습지원이 IS의 세력확장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미국의 편향된 지원이 이라크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고 IS의 바그다드 진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쿠르드군은 미국의 공습이라는 든든한 지원 속에서 아르빌을 방어하는 반면 정부군은 미국의 이렇다 할 도움 없이 바그다드로 밀려오는 IS에 고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합뉴스 8월18일)

IS가 진격하면서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된 이라크 투르크멘족도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이 이라크를 ‘3등분’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ITC)’의 아샤드 알살리히 지도자는 휴리예트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쿠르드족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테러조직 IS에 대응하는 긍정적 조치”라며 “이런 지원을 쿠르드족에 한정하지 말고 투르크멘족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략)

그는 서방의 지원이 KRG에 한정된다면 시아파의 남부와 쿠르드족의 북부, 수니파의 중부 등으로 나뉘는 ‘이라크 3분할’ 계획이 이면에 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부 니네바에 기독교인과 야지디족을 위한 특별 구역을 설정하는 것도 이런 계획의 일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8월18일)

혼란에 빠진 이라크 중앙정부의 권력투쟁에 미국이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공격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 이라크가 내부 권력투쟁에 휩싸였다. 미국은 이라크 정부를 지원해선 사태가 풀릴 것 같지 않자 이라크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활용해 IS와의 전쟁 및 이라크 내 권력투쟁을 동시에 해결하려 하고 있다. (서울신문 8월13일)

5. 쿠르드족 독립국가 설립, 가능성 높지만 만만치 않다

이라크의 혼란 속에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독립의 꿈에 부풀어 있다.

우선 그동안 중앙정부와 영토분쟁을 벌이던 키르쿠크 지역을 확보했다. 이 지역은 450억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세계 9위의 산유국인 리비아와 비슷한 규모다.

또 쿠르드자치정부는 이라크 중앙정부의 간섭을 피해 독자적으로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 탄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뤄 독립국가를 완성하겠다는 포부에 부풀어 있는 것. 아예 공개적으로 독립 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은 “쿠르드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시간이 왔다”며 이라크 중앙정부로부터의 공식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바르자니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CNN방송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는 2주 전에 살던 이라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라크에 살고 있다”며 쿠르드인들이 지금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6월24일)

쿠르드자치정부는 최근 이라크 치안군과 반군이 교전하는 틈을 타 중앙정부와 관할권을 다투던 유전지대인 키르쿠크 지역을 장악했다. 또 시리아 접경 마을인 라비아, 동남쪽 이란 접경 마을인 잘룰라까지 점령하는 등 기존 자치구역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영토를 추가로 확보했다. (경향신문 6월24일)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자치정부는 그동안 북부 유전에서 나오는 수익을 배분해왔다. 하지만 쿠르드정부는 지난해 터키 해안 지역으로의 송유관 개설과 올 초 이슬람 수니파 계열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옛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의 공세를 틈타 중앙정부와는 별도로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쿠르드정부는 과거 중앙정부 관할이었으나 IS가 점령했던 키르쿠크 등 북부 유전 2곳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에 중앙정부가 자치정부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경고하자 쿠르드정부는 오히려 독자적인 원유 수출을 늘리겠다고 맞섰다. (세계일보 7월29일)

14일, 한 쿠르드군이 아르빌로부터 40km 떨어진 아스키 카라크 지역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 ⓒAFP

그러나 독립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이라크에 쿠르드 독립국가가 생기면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는 인근 국가로 여파가 번질 수 있다. 주변국들이 이를 수수방관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도 알말리키 퇴진 이후 이라크 중앙정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 움직임이 주변국의 쿠르드족 독립운동으로 확대되거나 쿠르드족 대량 이주 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동 분쟁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과 시리아는 물론이고 터키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6월24일)

그러나 수십년간 이라크 쿠르드족의 우방이었던 미국이 독립 추진에는 선을 긋고 있다는 점,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을 탄압해온 터키와 이란 등 주변국들의 대응 등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 추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4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을 방문해 바르자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가 ‘통합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stay united)’는 뜻을 밝혀 미국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6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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