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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7일 10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7일 10시 45분 KST

외로움에 슬피 울던 1만견의 선택 : 도그TV

더 이상 TV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젠 개가 TV를 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개가 보는 방송 도그TV가 올해 2월 케이블채널에서 방송을 시작해 견공(犬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심심풀이나 오락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이 방송의 목적이라네요. 반려견을 키우는 1인가구에서 관심도가 높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도그TV는 어떤 방송을 하고 있을까요.

기자가 키우는 수컷 푸들 양이(5)는 평소 텔레비전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개다. 대다수 푸들이 그렇듯, 반려인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 하루 종일 반려인을 따라다니고, 혼자 집에 놔두고 외출하려 하면 집이 떠나가라 짖고, 따라오려고 두 발을 든다. “같이 가자”고 말하면 그제야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TV를 켜도 양이가 화면에 주목하는 일은 여간해서 없다. 양이의 관심사는 오직 사람, 반려인이다.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보려고 TV를 켜면, 양이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라고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 양이에게 ‘개를 위한 방송’이라는 도그TV를 노트북 화면으로 보여줬다. 양이는 이전처럼 화면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우리 양이는 TV 안 좋아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라! 하울링 소리에 멈칫하며 귀를 쫑긋 세우더니, 화면 앞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어 화면에 개 얼굴이 등장하고, 동그란 점이 화면 안에서 좌우와 위아래로 번갈아가며 움직였다. 화면 안의 개가 동그란 점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고, 양이의 시선도 점을 좇고 있었다. 양이가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킁킁” 냄새를 맡는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지 물러서 한바퀴 빙글 돌더니, 다시 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화면이 2~3분간 지속되자 고개를 돌리며 약간 싫증을 내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하나의 영상이 3~4분 분량이기 때문에 곧 다음 영상이 나왔고, 양이는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화면을 쳐다봤다. 그동안 개가 TV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인간 위주의, 인간을 위한 방송이기 때문이었을까.

개가 보는 방송인 ‘도그TV’가 반려인들 사이에 화제다. 올해 2월 케이블방송에서 방영을 시작한 도그TV의 가입자가 불과 6개월 만에 1만명을 육박한다. 도그TV의 채널 이용료는 한달에 8800원으로 케이블방송 이용료가 한달에 1만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그럼에도 가입자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혼자 개를 키우는 반려인 사이에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도그TV를 서비스하는 미디어포럼의 유동균 대표는 “낮 시간대에 집에 혼자 남겨지는 반려견이 주된 시청층”이라고 밝혔다. 반려인이 외출하는 동안 집에 남겨진 개는 대개 분리불안, 우울증 등을 겪는다. 반려인의 물건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거나, 아무 데나 배변활동을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처음 도그TV가 만들어진 이유도 혼자 남겨진 개의 심리치료를 위해서였다.

창업자인 론 레비는 2009년에 처음 ‘개를 위한 방송’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다. 방송사업자였던 그는 동물행동심리학자인 니컬러스 도드먼 터프츠대 교수, 수의사인 마티 베커, 반려견 관련 저술가인 워런 엑스타인 등과 함께 3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반려견이 어떤 영상과 소리에 반응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2012년 2월 미국에서 처음 방영된 도그TV다. 도그TV는 미국에서 방영 첫해인 2012년에만 100만견의 가입자를 모았고, 이듬해 이스라엘에 이어 올해 2월 한국이 도그TV가 방영된 세번째 국가가 됐다. 2010년 이스라엘의 미디어 기업인 피TV(PTV)의 자회사 형태로 설립된 도그TV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자, 올해 4월엔 다큐멘터리 전문채널인 디스커버리사가 도그TV에 지분 투자를 했다.

케이엠TV, 재능방송, 스파이스TV 등에서 편성제작국장 등을 맡았던 유동균 대표는 지난해 초 지인을 통해 처음 도그TV에 대해 알게 됐다. 처음부터 사업성을 확신한 유 대표는 도그TV 본사와 바로 접촉을 시도했고, 지난해 9월 정식 계약을 체결해 올해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미디어포럼이 도그TV 본사로부터 확보한 영상은 총 2400시간 분량이다. 영상 한편의 분량이 3~4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이 확보한 영상 편수는 총 3만6000편에 이른다. 본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영상을 제작하며 콘텐츠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영상은 하루 24시간 내내 방송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누리집에서 조회가 가능한 도그TV의 방송편성표를 보면, 아침 시간엔 ‘스트레스 완화’, ‘평화로운 휴식’ 등의 프로그램이 배치됐고, 오후엔 ‘교감자극’, ‘사회성 기르기’, 저녁 시간대엔 ‘정서자극’, ‘관계성 증진’, 새벽엔 ‘평온한 안식’, ‘심리 안정’ 등이 편성됐다. 도그TV 쪽은 영상의 종류를 휴식, 자극, 노출 등 세 종류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휴식’ 영상에서는 개나 다른 동물들이 푸른 초원이나 바닷가 등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자극’ 영상에선 개가 공을 가지고 놀거나 화면 안의 둥근 점을 쳐다보는 식이다.

소리도 영상과 호흡을 맞춘다. 휴식 영상에선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자극 영상에선 심장 박동소리 등 리듬 있는 소리가 깔린다. ‘노출’ 영상에선 지하철이나 터미널 등의 공공시설물 등이 보인다. 사람이 개를 내려다보는 관점이 아닌, 개의 시점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다리와 발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는 식이다. ‘노출’ 영상은 개가 외출해서 보게 되는 세상을 미리 보여줘 낯선 곳에서의 적응력을 키워주는 의도로 제작됐다고 유 대표는 설명했다. 도그TV가 화제를 모으면서 비슷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도 생겼다. 국내 반려견의 영상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만든 해피독TV가 올 4월부터 케이블방송 씨앤앰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도그TV를 시청하는 반려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회원수가 10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에선 ‘반려견이 좋아하고 분리불안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에 ‘효과가 없어 이틀 만에 해지했다’는 글도 있었다. 기자가 키우는 반려견들에게 도그TV를 보여줬을 때도 반응은 엇갈렸다.

다섯살 수컷 푸들 양이는 도그TV에 호기심을 보였지만, 다섯살 암컷 몰티즈 루시는 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루시를 안고서 화면 앞에 앉아도 빠져나오려 낑낑대곤 했다. 유동균 대표는 “사람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듯, 개들도 마찬가지다. 더 호기심을 보이고 좋아하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반응도가 떨어지는 개도 있다. 특히 반려인이 옆에 있을 경우 개는 TV 화면보단 사람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그TV의 인기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1인가구가 급격히 늘었다. 인간은 자신들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지만, 정작 혼자 남겨진 반려견의 외로움을 돌보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도그TV가 파고드는 셈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원장은 “도그TV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틀어줬다고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람에게도 TV가 외로움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순 있어도 ‘관계’를 대체할 수 없듯이 동물도 마찬가지다. TV는 어디까지나 차선책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도그TV의 인기는 다소 씁쓸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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