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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2일 07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2일 07시 05분 KST

소방관들의 고백: 장비도 없고 소방차는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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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스토리텔링]

전국의 소방관들이 쓰러지고 있다

예산 없어 장비·소모품 늑장 지급

가난한 지자체는 불나도 구조 어려워

소방예산 지자체 아닌 국가가 나서야

실내 화재 현장은 대체로 암흑의 공간이다. 그을림 얘기가 아니다. 전기가 끊긴 공간에 햇빛이 닿지 않으면 그곳은 암흑이 된다. 밤이면 말할 것도 없다. 유독가스도 시야를 가로막는다. 소방관들은 불이 난 실내 공간이 깊을수록 두려움을 안고 한 걸음씩 진입한다. 암흑의 공간에서 언제 화염이 폭발해 몸을 덮칠지 모른다. 2012년 3월 어느 날 밤 10시께. 전남의 한 군에 있는 66㎡(20평 정도) 규모의 농자재 창고에서 불이 났다. 관리자가 쓰고 남은 1회용 비닐을 소각하고 집에 돌아갔는데 잔불이 남아 옮겨 붙었다. 당시 박창수(가명) 소방장이 소속됐던 119안전센터에는 박 소방장까지 모두 3명의 진압대원이 대기중이었다. 소방 펌프차 2대를 몰고 진압대원 3명, 구급대원 2명이 즉각 현장으로 출동했다.

소방관 박창수(가명) 씨가 구매한 방화장갑 사이트 화면갈무리

불을 끄려면 창고 내부에 들어가야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소방 헬멧에 부착하는 랜턴이다. 그런데 현장에 랜턴은 단 2개뿐이었다. 원래 소방관 1명당 1개씩 보급되어야 하는 랜턴이 소방차 1대당 1개만 지급됐다. 진압대원 3명 중 1명은 랜턴없이 투입되어야 했다. 박 소방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창고 안으로 들어갈 땐 앞사람의 랜턴에 의지해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재를 진압하기엔 수압이 약했다. 소방차에 수압을 올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창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박 소방장은 암흑 속의 창고 벽을 손으로 짚고 발로 더듬으며 밖으로 엉금엉금 나왔다. 어둠은 자체로 공포였다. 랜턴 하나가 없어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한다니, 박 소방장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랜턴만이 아니다. 방화 장갑도 골칫거리다. 방수 기능이 되어 있는 고어텍스 재질의 장갑을 껴도 소방수는 어떻게든 손으로 스며든다. 겨울이 되면 스며든 물에 손이 곱아 고통스럽다. 유독 출동이 잦은 겨울 한철이 지나면 방화 장갑의 방수 기능은 더 저하된다. 2년 전 그가 근무하는 119안전센터에 새 방화 장갑이 지급됐다. 하지만 박씨는 받지 못했다. 센터 직원은 30여명이다. 모든 대원에게 물량이 돌아가지 않았다. 따로 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서너명은 방화 장갑을 사비로 구입했다고 한다. 소방차나 구급차 운전 대원에게 장갑을 빌려쓰는 진압대원도 있다. 박씨는 소방방재용품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7만원짜리 장갑을 골랐다. 택배를 받고 보니 또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는 한 현직 소방관의 모습 ⓒ한겨레

소방관이 되고 18년 동안 서글픔은 반복됐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일일이 할 순 없다. 우선 부끄럽다. 괜히 걱정하게 만들기도 싫다. 마음만 상하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내는 뉴스에서 자꾸 소방관들이 순직한다고 하니 걱정을 한다. “한 번은 힘든 일이 있어서 술 한 잔 먹고 아내에게 ‘사직서를 쓰겠다’고 했지요. 당연히 말릴 줄 알았는데 아내는 ‘그럼 그러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는 낫지요. 우리 애들은 어떡해요’라고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박 소방장의 말이다.

소방관이 쓰러지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6명이 순직했다. 제주도의 한 주점에서 불을 끄다 목숨을 잃었다. 추락하는 헬기의 운전대를 잡았다가 다른 세상 사람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은 소방관들의 죽음과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지가 회자될 때마다 뜨겁게 달아오른다.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에서 소방관의 아내가 남편의 방화 장갑을 쇼핑몰에서 자비로 구입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다른 소방관 아내들의 문의가 빗발치면서 서글픔은 일종의 분노가 되었다. 소방관의 처우개선을 위한 서명운동 커뮤니티도 꾸려졌다. 서울 광화문, 국회 앞에선 소방공무원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① 폐기 처분해야 할 소방차가 달린다

<한겨레>는 우선 전국의 소방관들이 일하는 환경을 들여다봤다. 소방관은 얼마나 부족하며 소방차는 얼마나 낡았는지, 소방서가 없는 곳은 어디인지 알아봤다. 소방방재청이 발간한 <2014년 소방장비통계집>에는 현재 운행 중인 소방차 중 내구연한 기준을 초과한 소방차의 비율(소방차 노후율)이 지역별로 나온다. 소방차 차종별 내구연한은 ‘소방장비 내용연수 지정고시’에 명시돼 있다. 펌프차와 물탱크 차는 10년, 사다리차는 12년, 기타 자동차는 5~12년 동안 사용한 뒤 불용처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산출한 소방차 노후율은 전국 평균 21%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일선 소방서에서 사용하는 소방차 100대 중 21대는 소방방재청이 정한 내구연한을 넘긴 ‘낡은 소방차’라는 뜻이다. 시·도별로 보면, 특별시인 서울이 13%로 소방차 노후율도 가장 낮았다. 광역시인 부산과 인천도 각각 17%, 19%로 평균보다 낮았다. 반면 강원(32%), 충남(37%), 전남(28%) 등 도 단위 지자체는 모두 평균보다 높은 노후율을 보였다. 충남의 경우 소방차 10대 중 4대 정도가 이미 폐기 처분되어야 할 차량이라는 얘기다.

“소방차는 급출발이 많고 펌프 기능을 장착하는 바람에 노후화가 일반 자동차에 견줘 2배 빨라요. 내가 모는 펌프차는 16년된 차인데, 시속 80㎞ 이상 달리면 덜컹덜컹 대고 경사가 심한 곳은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 서에 소방차가 총 42대 있는데 그 중 7대가 10년 넘은 차에요.” 전북 지역에서 일하는 소방관 ㄱ씨의 말이다.

② 소방서 없는 시·군·구 45곳…전남>경북>전북 순

실제 불이 났을 때 화재 현장에 달려갈 인력 상황은 어떨까.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전국 지자체별 소방인력 충원율은 평균 58%를 기록했다. 소방인력 충원율은 안전행정부가 필수적인 소방작전을 수행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현장 인력을 정해 놓은 ‘소방력 법정기준’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자체별로 차이를 보였다. 서울, 부산, 대구 등 특별시와 광역시의 충원률은 평균보다 높은 70% 이상이었다. 반면 충북, 충남, 전남 등 도 단위 지자체는 40%대 수준에 그쳤다. 2013년 기준으로 부족한 소방인력수를 봐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서울(157명), 대전(268명), 부산(213명) 등 특별시와 광역시는 그나마 부족한 소방인력이 수 백명 수준이다. 반면 강원도(1202명), 충북(1042명), 충남(1486명) 등 도 단위 지자체는 천 단위로 늘어난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를 쓸 때도 나 대신 근무할 사람을 구해놓고 떠나야 해요. 내가 일하는 구급차를 타고 실려가더라도 일단 출근은 해야 합니다.” 충남의 한 구급대원 ㄴ씨가 말했다.

소방장비나 인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소방서마저 없는 시·군·구도 현재 전국에 45곳이나 된다. 이들은 주로 도 단위 지자체에 몰려있다. 전남 10곳, 경북 7곳, 전북 5곳 등이다. 하지만 부산을 제외한 특별시와 광역시 단위에는 소방서 미설치 시·군·구가 0~3곳 사이에 그쳤다.

③ 도 단위 지역엔 ‘골든타임’이 없다

소방서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심장박동이 정지된 환자를 구하거나 화재가 났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존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응 목표시간이다. 소방방재청은 재난이 발생하면 소방차가 현장에 5분 안에 도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 안에 소방차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할 확률도 지자체별 편차가 심했다. 서울에서는 신고된 사건 100건 가운데 97건에서 골든타임이 지켜졌다. 거의 모든 사건에서 5분 안에 현장 도착이 완수된 셈이다. 반면 경북은 100건 가운데 30건에서만 5분 내 도착이 이뤄졌다. 지형과 교통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격차가 꽤 크다.

결국 소방 예산이 국가 재정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의존해 편성되다 보니 예산 규모의 지역별 격차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세수가 풍족한 특별시와 광역시는 소방 예산이 풍부했지만, 도 단위 지자체는 상황이 열악했다. 하지만 격차를 좁히는 저울추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 예산은 올해 소방 전체 예산 가운데 비중이 1.8%에 불과하다. 격차를 좁히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정자립도에 따라 소방서비스의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지자체별 재정자립도와 소방서비스의 질을 표로 나타내보니, 특별시·광역시와 도 단위 지자체의 차이가 뚜렷했다.

특히 지자체의 예산이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 이익 사업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생색을 내기 쉬운 사업 위주로 쓰이기 때문에 소방 서비스처럼 평소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사업은 예산 지출의 후순위로 밀린다. 지자체는 재정 자립도마저 낮은 실정이다. 무엇보다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도 지사와 소방청장의 지시를 동시에 받는 이원화된 지휘 체계 때문에 신속한 대응에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소방관들의 처우보다 당장 시민 개개인의 문제다. 무더운 여름, 방화복에 헬멧을 쓰고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소방관의 펼침막에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까닭이다.

도움말 주신 분 : 백동현 한국화재소방학회 회장, 고진영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윤명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배선장 소방발전협의회 서명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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