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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07일 10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11일 13시 44분 KST

한화 팬들이 패배를 이겨내는 방법 : "1승 아닌, 1점을 응원하는 거야"

지난 5년 동안 400번 이상 진 한화를 생목으로 응원하는 팬들…

암에 걸릴 뻔 하다가도 빠져드는 마약 야구에 낚인 그들 “언젠간 이기겄쥬~”

눈 깜짝하니 점수는 9-0이 됐다. 7월29일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서울 목동 야구장 경기. 3회말, 한화 이글스가 수비하고 있었다. 이미 2회에 석 점을 내줬던 한화의 이태양 투수는 촉망받는 신인이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 명단에 이날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다. 7월9일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됐기에 주목을 모으는 ‘설욕 경기’였다. 그러나 투수는 3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맞았다. 4-0이 됐다. 이어 6·7·8번 타자가 연이어 안타를 치면서 점수는 순식간에 5-0이 됐다.

 

못해도 최선 다하는 ‘우리 선수’

“괜찮아, 5점은 따라갈 수 있어.” 주황색 응원 방망이 두 개를 힘차게 부딪치면서 “이태양 삼진”을 연호하던 김구열(25·대학생)씨가 말을 뱉기 무섭게, 넥센 9번 타자 박동원 선수가 안타를 쳤다. 좌익수 최진행이 공을 더듬다 놓치는 사이 점수는 7-0이 됐다. 김구열씨의 표정이 흔들렸고, 투수가 교체됐다. 아직 3회말이다. 이어 등판한 투수 정재원은 타자 2명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아, 이렇게 막장이기도 쉽지 않은데.” 김씨 입에서 한마디가 새나왔다. 그리고 넥센은 두 점 더 달아났다. 9점 차. 한 이닝에 11명의 타자가 타석에 섰고, 9명이 출루했다.

김씨는 여자친구 신지수(24·대학생)씨를 한화 팬으로 만들었다. 그저 경기장에 함께 갔을 뿐이다. 신씨는 지난해 목동 야구장에서 본 한화-넥센 경기를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태어나서 처음 야구장에 갔는데 한화 이글스가 19-1로 졌어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죠. 그런데 특이했던 건, 너무 못하는데, 차마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두드려맞는데 사람들이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이었어요.” 신지수씨는 그 ‘특이한’ 대열에 합류했다. “경기 결과를 떠나 사실 우리 선수들이 진짜 열심히 하거든요. 지난해 위기의 순간에 곡예하듯 김경언 선수가 공을 잡아낸 적이 있었어요. 그런 예가 꽤 많아요.” 대전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 4학년 때(1999년) 우승의 기쁨을, 대입 준비에 찌든 고2·고3(2006·2007년) 때는 각각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우승의 기대감을 안겨줬던 한화 이글스와 선수들은 김구열씨에게는 누가 뭐래도 우리 팀·우리 선수지만,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에서 자란 신지수씨에게도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들을 ‘우리 선수’로 만들었다.

충청도가 연고지인 한화 이글스는 2009년부터 부동의 꼴찌다. 2009·2010년 2년 연속 꼴찌를 하다가 2011년 잠시 6위로 올라섰지만 2012·2013년 다시 꼴찌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꼴찌의 내용이다. 야구 보는 시인 서효인은 그의 책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에서 말했다. “(승률) 4할 초반에 꼴찌가 결정 나면 그 리그는 건강한 리그라고 볼 수 있다. 승률이 3할이라면 그 리그는 시시해진다. 그 팀은 7개 팀(2013년부터 8개 팀)에게 이른바 ‘호구’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이건 문제다.” 그 ‘호구’ 잡힌 팀이 한화다. 올해 한화 이글스의 승률은 3할대다. 10번 경기하면 7번 진다. 시즌 개막을 13연패로 열었던 지난해에는 6월 한때 3할 승률도 지키지 못해 걱정을 들었다. “탈꼴찌를 떠나 3할대 승률 자존심을 지키는 게 급선무다.” “경기 하이라이트가 죄다 실책”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이런 한화의 팬이 되는 건 영국 방송 〈BBC〉가 보도한 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BBC〉는 한화 이글스 구단에서 설치한 응원 로봇을 소개하면서 덧붙였다. “최근 5년 동안 그들은 400패 이상을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한화 팬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화 이글스 홍창화 응원단장의 별명은 ‘극한직업’이다. 연관 검색어는 ‘영원히 고통받는 홍창화’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치면 경기를 보다 망연자실해하는 표정을 쉽게 만난다. 한화 팬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밀당에 능한 여자친구 같은 당신

 

한화 골수팬으로 영화 <광해>의 제작자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7월24일 트위터에 썼다. “내가 세 딸들에게 물려준 가장 훌륭한 것은 딸들을 한화 팬으로 만든 것이다. 딸들에게 따로 ‘인내’ ‘체념’ ‘분노 조절’, 무엇보다도 ‘대가 없는 사랑’ 이런 건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이날은 한화가 NC 다이노스에 14점 차로 진 날이었다. 원동연 대표는 “경기를 볼 때면 이기고 있어도 불안하다”고 했다. “꽤 많은 점수 차로 이기더라도 7·8·9회에 역전당할 때가 너무 많다. 유망주 이태양 선수도 한 회에 확 무너져버리고. 경기마다 조마조마해 죽겠다”고 말했다. 7월 한 달간 한화가 두 자리 점수 차로 진 것만 5번이다. 이기는 경기도 편치는 않다. 7월31일 한화는 2연패 뒤 넥센을 9-8로 이겼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땀난다. 7회까지 6-5로 이기던 한화는 8회에 석 점을 얻어 9-5로 승리를 굳히나 했지만 9회말 넥센에 석 점을 줘 한 점 차까지 따라잡혔다. 이런 경기 양상 때문에 한화 팬들은 입버릇처럼 “어제도 암 걸릴 뻔했다” “암보험 추천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왜 보는 걸까. 팬들은 한화 야구를 ‘마약 야구’라고 부르며 중독성을 인정한다. 정민수(33·회사원)씨는 시즌당 40~50차례 정도 ‘직관’(야구장 직접 관람) 한다. 목동·잠실·인천 문학 경기를 주로 가고 주말 대전 경기도 간다. 정씨는 “7월 초에 5연패를 했어요. 이틀 연속 넥센에 17-3, 13-1 두 자리 점수 차로 졌죠. 지난해 13연패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떠올랐어요. 그러다가 4연승을 했어요.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또 크게 지죠. 밀당에 능한 여자친구 같아요. 어쨌든 자꾸 져도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희망고문에 중독됐어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한화 이글스 팬들의 모임 ‘야카마시’ 회원이다. ‘야구장에서 마시는 카스는 맛있다’는 뜻이다. 야카마시에는 정씨 말고도 55명의 회원이 있다. 매 경기 네이버 밴드에 단체관람 일정을 올리고 시간 되는 사람들이 함께 경기장에 간다. 7월29일엔 충남 천안에 사는 최성은씨의 생일 파티도 겸해 김혜진 경기도 화성시의원, 햄버거 가게 사장인 이영철씨 등 12명이 목동 야구장에서 함께 응원했다. 최씨는 하루 휴가를 내고 천안에서 올라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경기장에 오면 선수들의 땀내가 느껴져서 좋다.”

안정감 없어도 짜릿함을 주는 한화 경기 

‘꼴찌 한화’를 응원하는 한화 팬들은 8회가 되면 일제히 생목으로 ‘최강 한화’를 외친다. 앰프·음향기기 다 끈다. 모두 자리에 일어서서 앞뒤로 몸에 크게 반동을 주며 ‘최’ ‘강’ ‘한’ ‘화’를 한자 한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모습은 장관이다. 이영철(30)씨는 “선수들에게 기운을 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화 이글스는 신규 팬이 늘어나는 추세다. 7월29일까지 치러진 대전 홈게임 43경기의 야구 경기장 관중 수를 비교하면 2013년 28만6790명에서 올해 32만5835명으로 14% 늘었다. 기현상이다. 노태균(28·회사원)씨는 지난해부터 한화 팬이 됐다. 충북 청주가 고향이지만 그는 야구를 잘 보지 않았다. 노씨가 어느 날 한화 광팬인 친구에게 물었다. ‘꼴찌만 하는 한화를 도대체 왜 응원하냐.’ 친구가 답했다. “우리는 1승을 응원하는 게 아냐. 1점을 응원하는 거야.” 그 말이 인상적이어서 한화 경기를 지켜보던 노씨 역시 광팬이 됐다. “지다가 어느 순간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터지는 ‘루저 간지’가 있어요. 한화 야구는 워낙 기대치가 낮다보니 조금만 잘하면 기분이 엄청 좋아져요.” 노씨는 한화와 한화 팬들로부터 희망을 읽는다. “지금은 취업을 했지만, 취업이 안 돼서 고생할 때, 또 요즘 회사에서 힘들 때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지고 어떻게 쓰러져도 언제 어디서나 나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프로야구 가이드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매년 펴내고 있는 야구 콘텐츠 코디네이터 유효상씨는 “한화의 매력은 박찬호 선수의 매력과 같다. 경기에 안정감은 없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짜릿함, 아슬아슬함이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구단의 노력도 인정했다. 3차 리모델링을 한 대전 한밭구장은 관객이 음료나 먹거리를 사러 갈 때도 경기가 보이는 유일한 구장이 됐다. 유씨는 “지방 구장의 모범답안”이라고 평했다. 새로 만든 다이렉트 존은 포수로부터 관중석까지의 거리가 16m로 국내 야구장 가운데 가장 짧다. 가격도 평일 4만원, 주말 5만원으로 다른 구장의 절반 수준이고 스테이크까지 무료로 구워준다.

한화 팬들이 실책의 무한 반복, 극한의 점수 차 패배를 이겨내는 방법은 뭘까. 김세은(13)양은 “이긴 경기를 무한 반복해서 본다”고 말했다. 김양이 요즘 즐겨 보는 경기는 2013년 첫 승을 올린 NC전이다. 김양은 “이겼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낸다”고 말했다. 한화의 유명한 외국인 팬인 루크는 이기는 경기만 기억한다. 그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일규(33·회사원)씨는 “일단 ‘질 거야’라고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다 이기면 좋아요. 그리고 몇 년 뒤를 기약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LG가 그랬던 것처럼, 롯데가 그랬던 것처럼, 한화도 몇 년 뒤에는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서는 날이 있을 겁니다.” 충청도의 힘도 있다. 이택윤(29·회사원)씨는 “경기는 반쯤 포기하고 본다. 그러다 이기면 좋아요. 마음속으로는 사실 엄청 불안하지만, 불안하다고 말 안하고 점잖게 응원하는 거죠. 그게 충청도예요”라고 말했다.  

한화팬은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

꼴찌 경험이 있는 KIA 타이거즈의 팬인 시인 서효인씨는 말했다. “썩 훌륭한 경기를 보지 못하고 있는 기아의 팬으로서, 저보다 더 지는 경기를 보는 횟수가 많은 한화 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처의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몰입해서 경기를 보지 마시라는 겁니다. 집에서 보신다면, 경기를 틀어놓고 책을 펴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경기장이시라면 만년 꼴찌 야구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경기장에서 구름 한번 쳐다보며 경기를 흘려보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충청도 정서’로 무장한 한화 이글스의 팬들은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다. 7월29일 15점 차로 경기가 끝나자 팬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선글라스를 끼고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던 한 관중도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가 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 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기겄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