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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31일 05시 45분 KST

순천·곡성, 왜 새누리 이정현 택했나?

연합뉴스
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되자 활짝 웃고 있다.

이 당선자, 새누리 후보로 18년만에 호남 입성

순천대 의대 유치·일자리 등 ‘예산폭탄’도 효과

7·30 재보궐선거의 주인공은 단연 이정현 새누리당 당선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홍보수석과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이 맞서 ‘왕의 남자들’의 대결로 불렸던 전남 순천·곡성 재보선에서 이 당선자는 49.43%를 득표해 40.32% 득표에 그친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예상을 뒤엎고 크게 이겼다.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뽑기 시작한 1988년(13대 국회) 이후 광주·전남에서 새누리당 쪽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남 전체로는 1992년 양창식 전 의원(전북 남원), 1996년 강현욱 전 의원(전북 군산)에 이어 세번째로 18년 만이다. 이 당선자는 “순천시민과 곡성군민이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을 감격스럽게 생각한다. 유권자들이 이 어려운 선택을 한 만큼 결실을 맺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인사 파동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가 순천·곡성에 도전장을 냈을 때 ‘박근혜 심판론’은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예산폭탄론’으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정권 실세’라는 점을 활용해 △순천대에 의대 유치 △정원박람회장의 국가공원화 △일자리 창출 등 밑바닥 표심을 겨냥한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이 당선자는 유권자들에게 잔여임기 1년8개월만 자신을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버리라며 선거운동에서도 전략전을 펼쳤다.

서갑원 후보의 공천에 반발해 구희승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새정치연합의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도 이 당선자의 승리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순천·곡성은 18·19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잇따라 당선되고,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 시장이 재선하는 등 제1야당의 조직력이 약화된 독특한 정치지형으로, 이 당선자가 파고들 ‘틈새’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새정치연합 후보가 될 것”, “이정현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질 것”이라는 등 이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는 쪽은 많지 않았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 성향에다 이 후보의 고향인 곡성의 인구가 순천의 8분의 1 정도밖에 안 돼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조차 여론조사 결과 계속 이 후보가 앞선 걸로 나왔지만, “여론조사가 잘못됐을 것”이라며 전체 판세 집계에서 지는 것으로 분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이 당선자는 곡성뿐 아니라 서 후보의 고향인 순천에서도 승리했다. 순천에서 이 후보의 득표율은 46.22%로 42.92%에 그친 서 후보를 3%포인트가량 앞섰다. 곡성에선 투표율 61.1%, 득표율 70.55%로 똘똘 뭉쳤다.

이 당선자의 호남 지역구 입성은 새누리당에도 새정치연합에도 ‘1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새누리당은 “80년 광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디딤돌을 놓았다면, 2014년 호남 민심은 선거혁명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 진정한 민주정치의 큰 발자취를 내디뎠다”(민현주 대변인)고 자평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영남 기반 정당’인 새누리당에조차 패배해 지역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당선자는 1985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민정당 당직자로 특채된 뒤 전략기획실, 정세분석실, 대변인실 등을 거치며 잔뼈가 굵었다. 1995년 광주시의원 선거, 2004년 국회의원 선거(광주 서)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2004년 총선 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낙선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열변을 토했다. 사흘 뒤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전격 기용된 때부터 10년 동안 이 당선자는 한번도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08년 총선 때 비례대표 22번을 받아 ‘당선 막차’를 타고 처음 금배지를 달았고, 박근혜 정부 출범 뒤부터 지난 6월 초까지 청와대 정무수석, 홍보수석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