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4년 07월 17일 08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6월 02일 13시 16분 KST

치마 입는 아들을 둔 아빠의 이야기 : 아들은 치마를 좋아한다. 나는 뭐, 괜찮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거 '세스 메나헴'(Seth Menachem)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딸 시드니는 이제 4살이다. 시드니의 일과는 그날 입을 치마를 고르는 일로 시작된다. 가끔 나는 다른 걸 입혀볼까 싶어서 "오늘은 반바지가 어떨까?"라고 물어보지만 딸은 고집이 세다. 물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옷을 고를 자유가 있다.

아들 애셔는 고작 2살이다. 당연히 혼자 옷을 입는 일은 어려운 나이다. 애셔의 옷을 입히는 건 내 일이다. 나는 애셔에게 반바지와 티셔츠를 꺼내 입히곤 했다. 그런데 혼자 옷을 입지는 못해도, 옷을 벗을 수는 있는가보다. 애셔는 툭하면 옷을 벗어 내팽개친 후, '치마!'를 부르짖는다. 그리고는 누나의 옷장 앞에 있는 의자에 기어 올라가, 마음에 드는 치마를 고르곤 한다.

2014-07-11-Asherilgufodress.jpg

그래서 애셔의 평상복은 주로 치마다. 녀석은 디즈니 공주 같은 복장으로 돌아다닌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무지개 색깔의 랄프로렌 어깨끈 원피스를 입는다. 사내아이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를 제외하고 아이를 본다면, 솔직히 애셔에게는 치마가 어울리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고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여름은 너무나 덥다. 그러니 치마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겠다. 사람들 앞에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내아이를 둔 아빠의 심경이 어떨지. 나도 처음에는 그런 아들이 창피하곤 했다. 사람들이 아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버지인 내가 아이에서 치마를 강요했다고 오해할까봐 말이다. 내가 무슨 사회적인 규범에 반기를 들고자 아들을 이용한다거나, 또는 딸을 원했지만, 아들을 낳은 사실이 원통해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 내 친구의 어머니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딸 친구의 생일파티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사실 그 날 나는 애셔에게 오늘은 남자아이 옷을 입자고 설득하려 했다. 치마를 입은 애셔가 파티에 나타나면 나는 끊임없는 질문과 비판을 감수해야 할 텐데, 그게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콧물이 흘러 입에 들어갈 정도로 울면서 반항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는 내가 믿지도 않는 개념에 얽매여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창피할 일이 아닌 걸 가지고,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날 애셔에게는 보라색 공주 원피스와 누나 시드니가 신던 반짝이는 탐스 신발을 신겼다.

2014-07-11-AsherandSydneypurpledresses.jpg

물론 나의 반성과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상대로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셔의 옷을 보며 웃었고, 때론 흉을 보았다. 한 사람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이게 재밌다고 생각하나요? 여기에는 다른 아이들도 있어요. 저런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보기를 원하는 거예요?" 또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물어봤다. "아이가 게이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난 침착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들이 여자 옷을 입는 것과 게이가 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리고 만약에 녀석이 게이가 된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냥 원래 게이어서 그렇다고. 지나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부모가 자기를 뒷받침하지 않아서 자신을 숨기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일부는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지하거나, 종교적 사상에만 빠져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시드니의 얼룩진 긴 금발 머리와 애숴의 짧은 머리를 보고 "작은 딸의 픽시 머리가 너무 귀여워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녀석은 아들이라고 설명하자, 그들은 미소를 띄며 "아주 멋져요"라고 말한 뒤 아들의 성을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 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과할 필요 없어요. 보라색 원피스에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었는데, 누가 알아차리겠어요?"

어떤 사람은 아이의 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는 데, 나는 아니다.

2014-07-11-SethandAsherwalking.jpg

어느 날, 나는 아이들과 재즈 공연에 갔다. 그곳에서 내 친구를 만났다. 그는 게이다. 그는 난데없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냥 말하는 건데, 난 어렸을 때 치마를 입은 적은 없어." 그 친구는 아마도 "너의 아이는 나처럼 게이가 아니야"라고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공개적인 게이이며 결혼생활까지 하고 있는 이 친구가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 아들이 게이이면 어때? 게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 그냥 평생 이성복장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아이를 지지해주는 것뿐이야."

다만, 나는 게이로 사는 친구가 갖고있는 게이의 삶에 대한 생각이 조금 슬펐다. 그는 마치 게이가 무슨 저주인 듯 말했다. 나는 게이로서 사는 건, 남자들끼리 멋진 파티를 영원히 지속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긴, 친구도 결혼을 했으니 더 이상 멋진 파티는 없을 수도 있다.

보통 때는 아내보다 내가 먼저 집에 돌아온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들과 개를 끌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딸 시드니는 애셔를 무슨 인형처럼 다루며 이런저런 옷과 신발 그리고 머리띠를 동생에게 두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시드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도 치마를 입어요! 진짜 웃길 것 같아요!"

나는 당연히 "안돼"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시드니는 계속 졸라댔다. "사람들이 아빠 흉을 볼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쫓아버릴게요!"

이렇게 까지 말하는 아이의 말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아내 캐리의 옷장에서 가장 크고 풍성한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개를 끌고 동네를 산책했다. 물론 나는 창피했다. 하지만 아빠의 색다른 모습을 본 아이들은 정말 재밌었을 거다.

2014-07-11-Menachemsindresses.jpg

그날 아내 캐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막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치마를 찢지는 마. 그러면 끝장이야!"

그날 저녁 우리는 다같이 피자를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