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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29일 12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29일 19시 47분 KST

19년전 오늘, 삼풍백화점

당시 일간지에 실린 삼풍백화점 광고

“이젠 저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수줍게 웃고 있다. 졸업과 입학시즌을 맞아 다양한 행사 광고로 분주했던 이곳. 1989년 12월 1일에 문을 연 삼풍백화점은 화려했고, 눈부셨다. 매출액 기준 업계 1위이자 강남 부유층이 주고객이었던 이 고급 백화점은 강남의 상징이자 대표명사였다.

설계 또한 파격적이었다. 탁 트인 내부 디자인. 마치 미국형 쇼핑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설계. 그러나 내부를 넓게 보이기 위해 기둥을 되는대로 빼버렸다는 걸 알게 되건 나중이었다.

1995년 6월29일 오후 2시

삼풍백화점 내부는 찜통처럼 더웠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였지만 냉방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리 중’이라는 안내 방송만이 을씨년스럽게 흘러나왔을뿐. 그러나 에어컨 가동이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전부터 백화점 건물 옥상에 지름 20㎝의 균열이 나타났다. 하중 계산은 않고 건물 옥상에 무단으로 설치한 200톤짜리 냉각탑 때문이다. 더 큰 균열을 막기 위해 경영진은 냉각탑 안에 물을 빼야했고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껐다. 하지만 당시 백화점 내 수천 명의 고객과 직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삼풍백화점 경영진들은 ‘건물 균열이 시작된 사실을 고객들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린 채 붕괴 직전 자신들만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이날 오후 5시 55분, 지어진 지 5년 밖에 안 된 삼풍백화점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 한국 전쟁 다음으로 최대 인명 피해다. (중앙일보, 6월 29일)

오전 8시 균열 확인했지만 정상영업

사고 전날인 28일 밤 야간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백화점 5층 식당가 전주비빔밥집(미전) 바닥에서 폭 1m, 깊이 20㎝의 함몰 흔적을 발견하고 다음달 오전 8시 시설관리직원에게 알렸다. 붕괴 조짐은 이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5층 옥상 바닥은 군데군데 솟아 올랐고, 식당가 바닥은 경사가 5도 가량 생겨 테이블까지 같이 기울었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주방조리대가 넘어져 밥을 먹던 손님들이 자리를 피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 같은 상황을 보고 받고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언론과 고객들에게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고, 균열이 발생한 현장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일보, 6월10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이준 삼풍건설산업(삼풍백화점 모기업) 회장 등 임원 11명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백화점 3층 회의실에서 열렸고, 시설부에 신속한 보수공사를 지시한 뒤 정상영업을 강행하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은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후 5시40분 현장을 점검하던 이영철 시설부장이 대책회의장에 전화를 걸어 “붕괴가 진행되는 것 같다”고 하자 경영진들만 비상구를 통해 황급히 백화점을 빠져 나갔다. 오후 5시52분, 백화점 비상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손님들만 백화점에 남겨둔 채...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 방송된 상품백화점 보도. 처참한 모습을 한 부상자들과 실종자들을 찾는 애끓는 울음이 뒤섞여 아비규환의 모습이다.

오후 5시 55분,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잘못된 설계, 부실시공, 무자격자에 의한 감리, 무리한 매장증설과 증축, 무단 용도변경 등 부실 건물의 모든 요건을 갖춘 게 삼풍백화점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하고 470여명의 승객을 배에 남긴 채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처럼 삼풍백화점 경영진들도 그랬었다.

1995년 6월29일, 바로 19년 전 오늘이었다.

1995년 6월 30일 한겨레신문 4면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분석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