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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20일 07시 00분 KST

수족관에 갇힌 재규어는 뛸 수도 없다

복합수족관,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

앵무새는 2시간 넘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문을 연 한화 아쿠아플라넷에서 지난 16일 오후 홍금강앵무새가 앉은 자리는 키가 2m 조금 넘는 나무 위였다. 이 나무는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었다. 앵무새는 오후 2시에 잠시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얌전히 사육사의 손 위에 앉은 앵무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육사는 “홍금강앵무는 호두를 좋아해요. 어떻게 호두를 먹는지 한번 볼까요”라고 말하며 까지 않은 호두를 앵무새에게 건넸다. 새는 호두를 입에 물고서 강한 턱으로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둘러싼 관중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앵무새를 쳐다봤다. 5분여간의 짧은 소개를 마치고 새는 푸드덕 날갯짓과 함께 사뿐히 뛰어 나무 위로 올라갔다. 두 시간이 지난 오후 4시께 앵무새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무 밑을 오가는 사람들은 우는 앵무새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일부 관람객은 나무 옆 구름다리에 올라 손을 뻗었다. 앵무새는 부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 손을 쳐다보다가 큰 소리로 울기를 반복했다.

아쿠아 플라넷 개장 시 홍보 사진

하루 야생에서 85㎢ 이동하는

재규어는 사방팔방이 보이는

유리관에서 누운 채로 보냈다

“이렇게 열악한 경우 세계 유일”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주장

날지 못하는 나무 위 앵무새

윗몸일으키기쇼 하는 바다코끼리

사람들 손에 만져지는 펭귄·비버

동물원 쪽은 향후 개선의지 밝혀

아쿠아플라넷 일산에 있는 홍금강앵무는 관람 통로에 있는 나무 위에서 사람들에게 전시된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이 나무는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예요.”

김지영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말했다. 앵무새로선 새장에 갇힌 것보다 더 안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다.

“이 새는 날개의 일부가 잘려 날지 못하는데다 나무 밑엔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내려갈 수도 없어요. 나무 위는 움직이기에 너무 좁죠. 게다가 근처에 물이나 먹이도 없습니다. 지금 큰 소리로 우는 것도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동물은 사실상 사육장 바깥에 있는데요. 이럴 때엔 반드시 사육사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동물들이 관람객들과 접촉할 때 어떤 상황이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앵무새가 나무 위에 있는 동안 사육사나 직원이 주변을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구름다리에 오른 관람객이 앵무새를 향해 손을 뻗어도 제지하는 직원이 없었다. 한화 쪽은 “네덜란드에서 이미 날개가 잘린 종 4마리를 수입했고, 한마리당 2시간씩 교대로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금강앵무는 새로 개장한 아쿠아플라넷이 보유한 2만5000여마리의 동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은 어떨까. 동물복지의 관점에서 동물원과 수족관을 검증하기 위해 아쿠아플라넷을 찾았다. 아쿠아플라넷을 고른 이유는 가장 최근에 생긴데다 수도권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중동물과 육상동물이 함께 전시된 복합수족관이자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4년5개월을 준비하고 830억원을 투자해 만들었다는 점도 아쿠아플라넷을 찾은 이유다.

국내 대부분의 동물원이 영세한 기업이 운영해 시설이 노후하고 열악한 데 반해 아쿠아플라넷은 대기업의 막대한 투자로 설립된 신규 시설이다. 동물복지에 가장 신경을 쓸 수 있는 조건이다.

2만7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끊은 뒤 어두침침한 입구를 지나자 대형 문어, 게, 각종 해파리가 담긴 수조들이 나란히 있었다. 심해에 사는 동물들이다. 심해수조를 지나자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한 샌드타이거상어 두 마리가 담긴 수조가 나타났다. 사방이 수조인 유리통로를 지나자 마치 극장의 큰 스크린과 같은 수조가 나타났다. 거대한 가오리와 상어 등 30여종 1만여마리의 수중생물이 모인 곳이다.

3층으로 올라가자 관람객이 수중생물을 직접 만질 수 있는 ‘터치풀’에 다다랐다. 불가사리, 소라와 작은 어종들이 헤엄치는 야트막한 수조와 어른이 엎드리면 손을 담글 수 있는 닥터피시 수조가 있었다. 이날 정오께 터치풀을 방문한 아이들은 작은 수조 안에 조약돌을 던지거나 어류를 만지려 손을 바삐 움직였다. 수조에서 닥터피시를 들어올리는 행위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터치풀 한편엔 세면대가 있다. 관람객들은 수조에서 물과 동물들을 만진 다음에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김지영 활동가는 “사람들이 손을 씻지 않은 상태로 동물을 만진다. 어류는 예민하기 때문에 사람이 만지거나 손을 물에 담그면 하루에도 여러 마리가 폐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터치풀에 이어 바다코끼리 전시장이 나왔다. 다 자라면 무게가 2t(암컷 1t)에 이르는 바다코끼리는 아쿠아플라넷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오후 2시 반께 유치원에서 온 어린 관람객들을 앞에 두고 바다코끼리의 짧은 공연이 시작됐다.

“바다코끼리 메리는 아직 네살이에요. 메리야, 북극에서 얼음을 어떻게 깬다고? 예, 이렇게 고개를 흔들어서 얼음을 깬답니다. 요즘 메리가 뱃살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뱃살 빼기에 좋은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어요. 메리야, 윗몸일으키기 해볼까. 하나, 둘, 셋!”

바다코끼리 메리는 사육사의 말대로 고개를 흔들거나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중간중간 사육사는 주머니에서 먹이를 빼 메리에게 먹였다. 김지영 활동가와 그가 소속된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쇼’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쿠아플라넷 개장 시 동물보호단체가 벌인 피켓 시위

“공연을 하는 동물들이 학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에요. 동물로서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죠. 그 과정에서 원하는 행동을 할 때 먹이를 주고 칭찬을 받는 긍정 강화도 있지만, 학대와 체벌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공연을 오래 한 동물들이 보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공연을 하기 싫어한다는 거죠.”

바다코끼리 전시장을 지나면 펭귄, 수달, 비버 등을 볼 수 있다. 이들 전시장의 내부는 물과 뭍이 섞여 있다. 펭귄들이 모여 있는 내실로 들어가는 문 앞은 관람객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비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손을 뻗으면 헤엄을 치는 비버의 등을 만질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실제 펭귄과 비버를 만지곤 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직원은 없었다.

김지영 활동가는 “투명창으로 인간이 계속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자꾸 만지려고 하면 더 힘들어한다. 공격성이 나타날 수도 있고, 사람과 동물 사이에 옮는 전염병(인수공통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 쪽은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동물과 교감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설계했지만 사람이 만지는 것을 의도하진 않았다. 향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펭귄과 비버를 지나쳐 육상동물 전시장인 ‘더정글’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재규어 전시장이다. 동물자유연대는 개장 다음날인 지난 11일 성명을 내어 “하루에 야생에서 85㎢를 이동하는 재규어를 밀폐된 유리 전시장 안에 전시하고, 몸을 숨길 장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에 개장한 수도권 최대 복합수족관 아쿠아플라넷 일산에 전시된 재규어가 16일 오후 몸을 웅크린 채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다. 재규어는 사방이 관람객에게 노출된 투명 실내전시장에 머물고 있다.

김 활동가는 “영국 환경청은 ‘큰고양이과’ 사육 기준으로 실외 방사장일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엔 관련 규정이 없다.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볼 수 있는 밀폐된 유리 전시장에 큰고양이과 동물을 전시하는 곳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쪽도 유리벽으로 완전 밀폐된 사육장에는 환기구가 세 곳이 있다. 한화 쪽은 “재규어 사육장이 50㎡로 미국 동물원연합이 제시하는 적정 면적보다 넓다. 내부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 실외 전시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에 최소한의 사육 기준을 제시하고 학대를 방지하며 개체수, 폐사, 질병 발생 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동물원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장하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발의한 동물원법안은 지난해 테마동물원에서의 동물 학대 사건, 서울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사육사를 공격한 일로 사회적 관심을 받았으나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재규어는 이날 오후 대부분의 시간을 누운 채로 보냈다. 김지영 활동가는 “동물원에 오래 머물수록 동물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후 1시께 누워 있던 재규어가 갑작스레 벌떡 일어났다. 그는 전시장 구석의 내실 입구로 다가가 앞발을 들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을 살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재규어는 방향을 돌려 관람객들이 몰린 유리벽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고, 재규어는 ‘쿵’ 하고 얼굴을 유리에 부딪쳤다. 그 순간 몇몇 관람객은 재규어와 가까운 쪽의 유리를 마구 두드렸다. 그는 몸을 돌려 원래 누워 있던 나무 밑으로 돌아왔다. 몸을 웅크린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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