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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30일 11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08일 13시 21분 KST

경애하는 아버지께

아버지, ‘경애하는’이라는 말, 어떠세요? 지난주 모란봉악단이 평양에서 공연한 후 이 말이 제법 들리더군요.

분단이 길어지니 단어의 뜻도 남과 북으로 갈립니다. 북한에서 흔히 쓰는 ‘동무’가 남한에서는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경애하는’은 그러지 말기를 바랍니다. 차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애’는 고마운 고백의 단어이니까요.

말씀드리긴 쑥스럽지만, 아버지와 헤어져 산 삼십여년 동안 하루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효심이 출천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배운 게 하도 많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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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엔 초중고교 운동장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오빠가 어느 고등학교로 갈까 고민하던 때, 주변 사람들이 권하는 ‘좋은 학교’에 몸소 다녀오신 아버지가 운동장이 좁아서 안 되겠다고 하셨지요.

빛나는 전통에 유명한 학교인데 운동장 좀 좁으면 어떠냐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운동장이 좁으면 몸과 마음을 키우는 데 좋지 않다고. 제가 읽은 기사에도 운동장의 크기가 학생들의 신체와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려 있더군요.

갑자기 크게 오른 월세를 내지 못해 방을 비우거나 급전을 꾸러 다니는 사람들을 봐도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고생 끝에 서울 서쪽 구석에 마련하셨던 단층 슬래브 건물, 그 집의 월세는 동네에서 제일 낮았습니다. “우리 살림도 빠듯하니 세를 조금 올렸으면” 하는 어머니께 아버지는 “그럼 저 사람들은 언제 집을 사나?” 하셨지요.

예닐곱살 때 ‘시냇물은 졸졸졸졸…’에 맞추어 아버지와 춤추던 일, 초등학교 때 함께 산책하다 비탈 따라 엎드린 달동네를 만났을 때 “이담에 네가 어른이 되면 저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던 일,

해 지는 줄 모르고 책에 코를 박고 있으면 ‘석양빛에 눈이 상한다’며 불을 켜주시던 일, 빚을 얻어 산 오래된 아파트나마 처음 제 집에 입주하던 날 창 앞에 심어주신 라일락. 재개발로 인해 라일락은 사라졌지만 제 마음속 라일락은 향기까지 선명합니다.

마흔도 못 되어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알아야 할 것과 가르쳐야 할 것을 다 아셨습니다.

초등학교 2년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이니 학교 덕은 아니었을 거고, 열두살에 가난한 반고아가 되었으니 부모 덕도 아니었을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수업료가 비싸다는 ‘경험의 학교’에서 직접 교육을 받고, 끼니와 바꾼 책들에게서 간접 교육을 받으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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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번째 생신 전날, 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릴 때 남북한의 앞날을 걱정하시며 제 생각을 물으셨지요.

덜 영근 딸의 견해를 경청하시는 모습이 어린 시절 딸을 대하던 모습과 꼭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엄하셨지만 아이의 얘기라고 흘려듣는 법이 없었습니다.

엊그제 ‘경청’이라는 책에서 ‘경청의 각도’를 보았습니다. 앞으로 살짝 굽은 아버지의 상체, 그게 바로 ‘경청의 각도’이더군요.

아버지를 안마할 때마다 안마할 면적이 줄어 가슴 아프지만, 나이에 갇힌 것은 육체뿐 정신은 세계 너머까지 종횡무진하십니다.

한창때 존경과 사랑을 받다가 늙어가며 존경을 잃고 마침내 사랑까지 잃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버지를 향한 ‘경애’는 날로 깊어갑니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잘하는 건 잘하는 거고 못하는 건 못하는 거”라며 공명정대를 강조하셨지요? 아버지를 경애하는 건 제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제가 되어야 할 부모가 어떤 건지 삶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경애할 수 없는 정치인들과 갈라진 언어가 통일을 방해해도 남북한의 동무들이 하나 되어 기뻐할 날은 꼭 올 겁니다. 아버지,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