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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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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 논문을 엎다

MBTI 검사를 하면 늘 INFP라는 유형이 나온다. 물론 이런 검사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내 경우 매우 이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래프가 뾰족뾰족 하다. '철학자'라니. INFP의 대표주자로 조앤 롤링과 잔 다르크가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학위 논문을 위한 그 모든 귀찮고 성가신 절차를 마쳐 놓고, 이제 정말 쓰기만 하는 되는 상황에서 내가 1~2년간 공들였던 논문을 내려놓기는 사실 쉽지 않았다. 

오랜 방황의 시간을 정리하고, 드디어 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학회지에 투고를 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리젝트(게재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2003년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고도 12년 넘게 졸업도 못하고 학교를 떠돌던 난 그 무렵 자존감이 급격히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덮어쓰는 먼지를 툭툭 털어낼 에너지가 내겐 없었다. 우울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도교수님 표현을 빌자면, (논문계획서 통과까지 한) 그 시점에 불필요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모든 것을 멈췄다. 아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무기력하게 몇 달을 보내다, 기운을 차리고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 하나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에 대한 생각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옷이라는 렌즈를 통해 내 인생 전부를 돌아보게 되었다(그 때 쓴 에세이 중 일부는 책 '오늘 뭐 입지?'에 포함되었고, 나머지는 브런치 매거진 '굿바이, 샤넬백!'에서 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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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에서 정신분석 치료도 병행했고, '에니어그램'이란 성격 유형 모형을 접하게 되었기 떄문에, 나는 내가 왜 쇼핑중독에 빠졌었는지, 내가 왜 학자가 되고자하는 사람이면서도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소득은 이 모든 과정에서 내 정체성인 '조용한 말괄량이'를 찾았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찾고 나니 모든 것이 심플해졌다. 내가 인생에서 해온 모든 의사결정이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내 정체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본질적인지 비본질적인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옷에 대해서도 그랬다. 맞지도 않는 길을 가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세계 속 나를 그리며 엉뚱한 옷을 사왔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내 정체성에 맞는 옷과 아닌 옷을 구분하고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내 정체성을 컨셉으로 취한 내 옷장은 심플하면서도 풍성해졌다. 옷장을 열고 옷을 입을 때마다 조금씩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자, 내 삶도 점점 긍정적인 기운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건강한 의생활'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한편, 블로그에 덤덤히 쓴 내 독백 같은 글을 읽는 독자들이 생겼다. 내 글을 읽고 함께 울었던 분들의 고해성사 같은 긴긴 댓글을 마주한 순간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런 경험은 학자로서 '잔 다르크'가 될 것 같았던 내 걱정을 벗고, 감성적 글쓰기로 '조앤 롤링'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좇아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건 내 바람일 뿐. 몇 군데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더 웃긴 건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대안 없이 지도교수님께는 논문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말씀드렸다. 죽음을 생각하고 보니, 나머지 인생을 정체성에 충실한 삶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 뿐이었다.

#2 "힐링을 위한 옷장 컨설팅, 용감한 분들 손들어 주세요!"

2015년 9월 어느 날 학교 캠퍼스를 거닐다 졸업 앨범 촬영을 위해 우르르 몰려가는 졸업반 학생들을 목격했다. 

'어쩜 이리도 졸업 앨범 촬영용 패션은 16년 전 내 패션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저 친구들 내가 좀 도와주고 싶은데.'

학교에 포스터를 붙이든 어떻게 하든 뭔가 방법을 찾으려고 하자,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던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 학교 커뮤니티 '○○라이프'에 올려보세요." 

학교를 그렇게 오래 떠돌면서도 '○○라이프'가 뭐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알고 보니 그곳은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밤에 잠들기 전 꼭 한 번은 들여다보는 실질적 커뮤니케이션 장소이자 오락 장소였던 것이다.

졸업증명서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가입절차를 거쳐 나는 10월 중순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 

무료 컨설팅인데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 덕분이었는지 내 글은 '○○라이프'의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가게 되었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 애당초 몇 명을 하겠다는 것도, 얼마나 하겠다는 것도 계획에 없었다.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하는 나답게 내 체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컨설팅의 절차 역시 전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내가 그간 블로그에 써왔던 스타일링 팁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고, 10년간 가르치는 일에 몸담았던 경험을 토대로 각자의 여건에 따라 짧게는 5주, 길게는 두 달 정도 진행했다. 

가장 어린 신청자는 22살 학부 3학년 학생이었지만, 학부생보다는 대학원생 혹은 졸업하여 일을 하는 분들이 주류였다. 연령대는 주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고, 40대도 한 분 있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특정학교 출신들을 한 덩어리로 보지만, 이 덩어리 내에도 다양한 개성이 공존한다. 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과 깊은 소통을 나눴다. 그 소통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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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명 한 명과 마주하고 그들이 내면을 꺼내 보일 때마다 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했다. 그들의 불안, 우울, 고독 저 너머에서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 같은 반짝임이 조금 조금씩 보였다.  

내가 컨설팅을 진행하며 가장 주력했던 것은 각자의 정체성에 근접한 옷을 함께 찾는 과정이었다. 가장 먼저 내가 한 것은 내가 가진 장점인 관찰력과 기억력을 더하여 전심을 다하여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각자에게 첫 만남의 시간에 숙제를 내줬다. 그건 내가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 던졌던 질문이었다. 

'내 인생이란 여행에서 나는 어떤 여행자인가?(별칭)', 
'만약 3개월 안에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버킷 리스트)'

그리고 두 가지 숙제가 더 있었다.

'오랫동안 좋아해온 나만의 곡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옷과 달리 음악은 어느 누구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 허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왠지 끌리는 룩은?' 이었다. 네타포르테, 매치스패션, 파페치 등 토털룩을 제공하는 패션앱 혹은 사이트에서 각자의 마음을 끄는 룩을 찾아서 캡쳐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왠지 끌리는 룩'을 통해 각자의 내면에서 원하는 욕망이 뭔지 파악하고 싶었고,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표출하면서도 일상에서 타인과의 소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컨설팅은 아래와 같은 4단계를 포함하는 과정으로 5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1. 용감한 성찰자
자신의 성격 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옷장의 컨셉이 되는 '별칭'을 정하는 단계

2. 냉정한 감상자 
스타일링의 네 가지 법칙 '반대의 법칙' '여백미의 법칙' '색상 조화의 법칙' '빼기의 법칙과 더하기의 법칙'(당시에는 내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었고, 지금은《오늘 뭐 입지?》에 보다 체계적으로 소개되어 있다)을 숙지하고, 패션 앱의 토털룩 사진을 감상하며 안목을 높이는 단계

3. 명민한 컬렉터
자신의 정체성인 '별칭', 그리고 버릴 옷과 남길 옷을 고려하여 쇼핑하는 단계

4. 창의적 작가
'별칭'과 스타일링 법칙에 따라 옷장 속 옷을 스스로 조합해서 입어내는 단계

컨설팅을 받은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쇼핑이 이제 정말 재미있다.'
'마네킹 그대로 벗겨서 쇼핑하던 내가 마네킹의 스타일링을 분석하게 되었다.'
'살기 위해 옷을 입던 나에서 내 의지와 생각에 따라 옷을 입는 나로 바뀌었다.'
'옷장에서 70퍼센트를 덜어냈지만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지금까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게 되었고, 지금부터 '악동'으로 날뛰는 게 두렵지 않다.'
''4차원'이라는 별칭을 붙이고 나니 남편 앞에서 자신 있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별칭을 정하는 것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스스로가 정하기도 했고 나와 함께 정하기도 했다. 어렵게 어렵게 정한 별칭이었으나, 타인의 놀림의 산물이 아닌,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별칭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별칭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옷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의 크고 작은 선택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고백해 왔다.

'시크한 빙구', '세련된 꼰대', '얌전한 악동', '젠틀한 얌체', '치밀한 귀차니스트', '대범한 겁쟁이', '왈가닥 백조', '스키어 301', '우아한 4차원'. 

자신의 별칭을 갖고 그 필터로 자신의 옷장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본질적이지 않은 다른 것들을 배제할 줄 아는 심플한 시선이었다. 스타일링을 도와주는 내 입장에서도 정체성에 맞는 옷을 권하기가 쉬웠음은 물론이다. 

한편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라는 글을 올린 덕분에, 번번이 퇴짜 맞던 내 글은 출간 제안을 받는 신분상승을 하게 되었다.

그때 시작한 패션 컨설팅은 지금의 내게 새로운 업이 되었다. 물론 2015년의 이 프로젝트에 비해 지금의 컨설팅은 훨씬 보완되고, 체계를 잡게 되었지만, 그 당시 나의 첫 걸음을 함께한, 이 분들과의 정체성 찾기 과정이 개인적으로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2015년 가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컨설팅 프로젝트에 함께해 주신 분들의 스토리. 이곳에서 총 8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