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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형사소송에서 승소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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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범준 기자님과 타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승소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긴 글입니다)

형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누가 알려 줘서 보게 된 이 기자님 글을 보니, 저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군요. 아니, 오히려 법원이 말한 "틀린 표현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대부분 언론이 앞뒤 맥락 없이 인용한 탓에 오히려 법원이 나의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간주하면서도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한 것처럼 인식한 이들이 더 많아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기자님은 제가 패소한 가처분과 손해배상 판결이 옳다는 전제하에 이번 형사판결문을 읽고 있지만, 가처분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가 진 이유를, 저는 명확하게 압니다. 달리 말하자면 형사소송에서 이긴 이유를 명확하게 압니다.

이하, 참고하십사 하고 간단히 설명 드립니다.

변호사 등 주변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지만 저는 가처분재판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이건 아니지 싶어 출석하려 했지만 결국 그랬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린 이유는 '위안부 할머니'들께 심한 언행을 당할 수 있다는, 저를 생각한 배려였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반성도 담아서, 5,6회 이어진 손해배상재판에서는 꼬박꼬박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언제나, 10분 이내에 끝났습니다. 제출한 자료들을 앞 좌석에 앉은 양측 변호사들과 재판장이 확인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에서 저는 준비한 진술문을 읽었지만(다 읽었어도 10여 분이나 되었을 짧은 글이었는데도), 재판장은 도중에 빨리 끝내라는 말로 제지했고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가처분재판과 손해배상재판에서 나는 판사에게 나의 생각을 충분히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더 나빴던 건, 재판 대응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처분과 손해배상에서도 저는 최선을 다했고, A4 150매 되는 답변서를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위안부"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책에 대한 원고 측 지적이 악의적인 오독의 결과이자 모함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끝까지 제가 제출한 자료와 진술은 무시하고 원고 측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이 사건을 바라보았지요.

그래서 형사재판에서는 다르게 대응했습니다. 원고 측과 검찰이 내놓은 모든 자료 자체에 대해 일일이 다 반박했습니다. 제가 높이 평가했던 고노담화마저 내가 그것을 부정했다면서 나를 공격하는 자료로 제출되는 아이러니를 견뎌야 하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응했습니다. 그중에는 "유엔보고서"도 있고 젊은 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 좌담회도 있었고, "제국의 변호인 - 박유하에게 묻는다"라는 책과 재일교포 정영환씨의 책도 있었습니다. (그의 책이야말로 얼마나 왜곡으로 점철된 책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검찰과 원고 측의 모함과 억측과 아집의 논리 자체에 "논리"로 대처했습니다. 형사재판부가 나의 손을 들어준 것은, 오로지 형사재판부터 참여한 새 변호사의 "법리적 논리"와 그런 나의 "논리"가, 검찰이 앵무새처럼 대변한 기존 논리들의 문제점을 논파한 결과입니다.

이 기자님은 물론 언론관계자들께, 먼저 이 사실을 인식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형사재판부 판사와 내가 맞대면한 기간은 거의 1년이고, 10회 이상 재판을 통해 논박한 시간은 재판 때마다 거의 하루 종일이 걸렸으니, 수십 시간에 이릅니다. 이 기자님은 혹시 이 시간들 중 일부라도 방청하셨나요? 이 기자님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오류와 비난은, 방청하지 않으셨기에, 혹은 잘 듣지 않았기에 이루어진 일로 생각합니다.

학자는커녕, 인간에 대한 존중 자체가 없는, 적대와 모욕을 대면하고 견뎌온 지 벌써 2년하고도 8개월입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힘겹게 노력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신 결과로 승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판결, 판사가 검찰이 대변한 학자들의 말을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말을 재판부가 "인용"했다고만 써서 원글 전체 맥락의 반대로 이해되도록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법원의 판결문이니, 마음에 안 들어도 왜곡은 하지 않아야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것 아닌가요.

또, 판사가 저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보다 저의 항변에 시간을 들여 귀 기울여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기존 상식에 기대어 사태를 판단하지 않는 날카로운 직관과, 그런 직관을 만든,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말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지 않았고, 위안부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원고 측이 멋대로 읽어 저를 밀어 떨어뜨린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승소했습니다. 이 기자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조악한 연구"를 재판부가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해와 납득이 아니라 오히려 적개심을 증폭시키고 그런 감정을 판결 왜곡으로 보여준 이 기자님의 칼럼, 연합뉴스와 뉴시스의 악의적인 사진으로 (연합뉴스는 원고 측의 악의적인 프레임을 정식고발 전에 유포시킨 곳이고, 뉴시스는 법정을 지켜보러 와 있는 저의 가족을 향해 제가 잠깐 미소 짓는 그 순간을 포착해 "웃으면서 법정에 들어서는 박유하"라는 캡션을 달아 유포시켰던 곳이지요) 변함 없이 마녀사냥에 골몰하는 수많은 기사들을 뒤늦게 접하고 보니, 저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날이 내 살아생전에 올는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악의적인 틀을 씌워서 고발한 나눔의집 관계자들에게 있고 저에 대한 명예훼손과 인권 침해 가해자는 우선은 그들입니다. 더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들의 주장에 반하는 심포지엄을 지인들과 함께 열었던 일과 제가 가까이 지냈던 나눔의집 거주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일이 저에 대한 고발의 직접적인 배경이었습니다. 심포지엄이 열린 지 한 달 반 만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주일 만에 저는 고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발장에는 〈박유하는 예전에 `화해를 위해서`를 썼다. 그러더니 `제국의 위안부`를 썼다. 또 사람들을 모아 심포지엄까지 열었다, 그대로 놔두면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취지의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 재판경과

또 하나의 고발장에는 서경식 교수 등 일부 재일교포의 저와 일본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마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정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의 홈페이지 자료들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형사1심] 〈제국의 위안부〉 최후진술

정리하자면, 이 고발은 진보 간의 생각 차이가 빚은 고발입니다. 그리고 그에 편승한 지원단체가 자신들의 문제를 덮기 위해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가 조심스러워서 저는 그 사실을 아직 세상에 분명하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지원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한 학자를 함정에 빠뜨린 사건임에도,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 언론도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이토록 많은 갈등을 유발 중인 사건임에도 말입니다.

승소를 했음에도, 여전히 기존 틀에 갇혀 사물을 보려 하는 경직된 사고와, 재판을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행간의 의미를 모를 젊은 기자님이 , 판결문마저 곡해하면서 한 학자의 책을 "조악한 연구"라 공공의 장에서 말해 버리는,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자신의 글을 "정의의 필봉"쯤으로 여길 오만이 빚은 폭력은, 온전히 이 기자님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이 기자님 같은 얄팍한 인식과 태도가, 한국사회 자체를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분노보다 서글픔이 먼저 밀려 옵니다. 한국사회는 병들어 있고,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덕분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피부가 매끈한 골다공증 환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무려 2년여나 국가 기관을 동원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책을 쓴 나를 공격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곳이, 다른 곳이 아닌 내 나라여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꽁꽁 뭉친다 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오히려 우리가 잠시 봤던 자화상이 허울 좋은 신기루일 수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드러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영논리가 만든 지적 태만에 기대어 오해하고 곡해하고 공격하고 반목하는 일에, 이 기자님 같은 젊은 분들이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슬프군요.

제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경박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포기와 체념과 허무에 맞서 이 시대를 견디고 건너갈 수 있는 힘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부디, "정의의 필봉"으로 사람을 하루하루 새롭게 죽이지 마시고, 판결문을 다시 읽어 보시고 사태를 제대로 이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재판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제가 재판부에 제출한 모든 자료들도 봐주시기 바랍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참고하십사, 이 기자님이 일부를 빼놓고 전달해 반대 의미가 된 판결 부분을 보여 드립니다. 녹색 부분이 빠진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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