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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젠더프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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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Kim Hong-Ji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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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내일 시위형태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시위형태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있는 게 아닐까. 시위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 목적에 함께 할 주체는 누구인지.

시위 목적은 당연히 대통령 퇴진이다. 누군가는 그 생각의 표명을 각자 마음 가는 대로 표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폭력도 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87년과 다른 점은, 오늘의 "우리"는 힘으로 지배하려는 억압에 맞서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맞서고 있는 상대는, 지배와 억압이 아니라 간접적인 피해,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거짓과 잘못 사용된 권력이다. 군사정권의 폭압이 아니라, 부드러워 보였던 공주의 무능에 대한 분노다.

그렇다면 당연히 시위 양상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분노는 꼭 폭력으로만 표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87년의 주역이 학생과 넥타이부대였고 여성들이 도시락과 물을 날랐다는 건 30년 전 우리 사회의 젠더분화를 보여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은 물론이고 아직 어린 학생들이 시위에 나온다. 30년 전 시위주체가 남성이었다면, 그리고 그 모습이 젠더화된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30년이 지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타난 여성과 소년소녀들은, 그들의 인권이 신장된 결과다. 2016년의 시위에, 여성도 아이도 "남성의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개별주체로서 참여한다는 걸 남성들이 잊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비폭력시위는, 직접 폭력의 자장 안에 놓이는 위치성이 없어도 외칠 수 있다. 비폭력 주장은, 아파 봐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폭력의 기억은, 때로 폭력의 폭력성에 무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의 우리에겐, 지배자에 대한 폭력과 저항 대신, 무능한 대표에 대한 규탄과 항의가 필요하다.

세월호 이후 진작 필요했던 사회구조변혁논의가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줄줄이 구속된 고위급관료와 주변인들은, 혼자 죽어간 유병언을 대신한, 늦게 온 유병언들이다.

우리의 조용한 혁명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것이라면, 폭력을 유발할 물리적 힘보다, 음습한 구조들이 어떻게 모두를 절망하게 만들었는지를 밤새 외치는 편이 훨씬 위협적이다. 대통령이 결국 구하지 못한 배에 대해서. 건강과 미모마저 돈과 권력이 독점해 버린 대한민국에 대해서. 송파동 세 모녀와, 불행했던 노인과 청소년들에 대해서. 그들이 사생활커녕 존재자체를 지키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이후에도 시간 들여 다듬어졌던, 대통령의 건강과 미모에 대해서.

노인들도 나올 수 있는 시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이들이 함께 해야 이 항의와 규탄이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박근혜가 두려워 하는 건 힘이 아니라 숫자일 터. 여성, 아이, 혹은 장애를 가진, 힘에서 밀리는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30년 후의 시위"다워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모처럼 "국민"을 쪼개는 깃발 없이, 모두가 "개인"이 되는 일로 국민이 되는, 침묵하는 행진에 함께하고 싶다. 수많은 침묵이야말로 위정자는 두렵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 버스 차벽을 의경들이 스스로 풀어버리고 합류하는 데모. 그리고 그들을 경찰청장이 처벌하지 않는 데모. 가진 힘을 쓰지 않는 영웅들이 있는 데모.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