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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결정'과 경제학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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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RALLY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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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경제학은 사람들에게 자유무역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

경제학을 배우게 되면 처음에 펼쳐보는 책이 경제학원론이다. 경제학원론의 내용들이 이것저것 많기는 하나 요약을 해보자면 결국 '자유무역은 소비자와 국가 전체에 있어 좋다'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무역을 통해서 각 국가의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효용이 얼마나 크게 증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자유무역으로 인해 세계는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주고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더 많은 혁신과 생산성의 향상을 이루어냄으로서 전보다 좀 더 부유한 세계가 되었다. 자유무역이 세계 경제에 기여한 바는 이처럼 거대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면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오대호 지역의 제조업 벨트 노동자들일 것이다. 관세를 낮추고 무역장벽을 제거하고자 한 시도는 이 지역을 상징하던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 물론 여기에는 노조의 전성기때 높게 설정된 확정급여형 연금을 약속함으로 제조기업이 사실상 연금기업화 하여 발생한 손실이 막대했던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이와 맞물려 이 지역의 제조 기업들은 생산량을 축소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으며 이에 따라 연관된 산업의 이탈 또한 불러왔다. 지역의 상징이자 대표 산업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지역과 지역민들의 몰락 또한 불러왔다.


세상은 분명 과거보다 발전하고 나아졌다지만 정작 이들은 그것을 체감할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과 엘리트들의 연구로 추진된 자유무역 정책은 국민들에게 더욱 큰 번영을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번영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번영의 과실은 서부 테크 기업 종사자들과 동부 금융 기업 종사자들에게 흘러들어갔다. 그 종사자들은 모두 대단한 학교 출신의 잘 교육받은 엘리트들이었다.

반면에 중부지역의 노동자들은 오래 동안 일해온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일자리는 사라졌어도 부양을 해야할 가족은 여전히 있기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재교육을 통해 테크 기업과 금융 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과거보다 낮은 품질의 일자리가 주어진다. 고용은 과거보다 불안정해졌으며 소득 또한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과거와 같은 임금은 받을 수 없다. 더 오래 일해야 했고 더 오래 일하고자 해도 그 자리 또한 충분치 않았다.

세상은 분명 과거보다 발전하고 소득과 생활의 수준도 과거보다 나아졌다지만 정작 이들은 그것을 체감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번영의 이야기는 이들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데이터와 부는 결국 엘리트의 것이었으며 자신들은 이 시스템에서 소외되었음을 깨닫는다.


무직자에게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무직자에게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사실과는 다르다 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저급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에겐 더 저렴한 가격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외국인의 존재란 이미 닥친 위기에서 생존을 걱정하게 만드는 위협이다. 그렇게 굴러떨어지고 번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게 평등과 올바름은 더 이상 최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 번영하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삶을 위협받는다는 점에 실망과 좌절을 하고 그것에 분노를 한다. 그리고 이 분노는 곧 혐오의 용인으로 발전했다. 당장 급한 것은 나의 삶이지 평등과 약자에 대한 보호가 아니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이 지난 6월에 영국에서 동일하게 발생한 것을 보았다. 쇠락한 산업과 그 산업이 중심이던 지역과 그 지역의 사람들이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혐오를 용인하고 혐오를 표출하며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을 보았다. 이것을 그저 '어리석은 결정'이란 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인가?

경제학에서는 자유무역을 통한 상품, 서비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국가 전체의 부와 사회 전체의 효용을 늘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사실이며 뛰어난 성장이 그것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계층을 만들었고 그런 소외계층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사회구성원의 절반에 이르렀다. 분명 자유무역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효용을 늘리지만 경제학은 이 자유무역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 2번 실패했다. 그것도 고전 경제학의 발상지와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 국가에서 말이다.


2016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에서 보듯이 불평등과 일자리 양극화는 절반의 사람들이 인권을 잠시 도외시하고 혐오를 용인하게 만들었다.


이제 정말로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거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일인 부국과 빈국 간의 불평등이 아닌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이다. 2016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에서 보듯이 불평등과 일자리 양극화는 세대를 가르고 절반의 사람들이 인권을 잠시 도외시하고 혐오를 용인하게 만들었다. 불평등은 이렇게 세상을 뒤로 후퇴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더 이상 1:99의 문제가 아니다. 브렉시트와 어제의 대선에서 볼 수 있듯이 50:50의 문제다. 진정한 불평등은 선거 지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연령과 학력차, 거기에 성별이라는 좀 더 가까운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자유무역의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그 혜택을 분배하여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득의 한계에 부딪힌 자유무역을 다시금 받아들이고 모두가 번영으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해 분노하는 50%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것이 경제학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혐오를 용인해버린, 뒤로 후퇴한 사회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방법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