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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트럼프의 길을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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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RICE COFFRINI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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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이 명·청(明·淸)시대라는 시대착오에 빠졌는가. 사고회로가 막혀 시간감각을 잃었는가. 사드(고고도 방어미사일) 한국 배치의 원인제공자는 북한이다. 주한 미군기지 방어에 필요한 사드 포대를 받으라고 한국의 팔을 비트는 것은 미국이다.

중국이 진정으로 사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고 싶으면 한국에 좀스러운 경제보복을 할게 아니라 석유 카드로 북한을 압박하여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시키라. 중국은 연간 50만t 이상의 석유를 북한에 공급하는데 단둥-북한 평북 봉화화학공장간 송유관을 한 달만 잠그면 북한은 굴복하고 만다. 중국산 석유가 없으면 전체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민심이 흉흉해진다. 그래도 '혈맹'이라고 그런 결단을 못 내리겠으면 한국을 압박할 명분도 잃는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사드 문제를 논의하라. 사드의 방어 범위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빠져있다. 그래서 사드의 실질적인 효용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미국의 사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군산 복합체를 업고 있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중 관계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여 '금융 전쟁'을 벌일 태세다. 남중국해에서도 오바마 정부 때의 수세에서 공세적 자세로 전환하려고 한다. 트럼프가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말한 '힘을 통한 평화'가 그 명분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성을 잃은 목소리로 시진핑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 "한국을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게(頭破血流) 하기보다는 내상를 입혀 고통스럽게 만들라"는 3월1일자 사설은 중화제일주의의 환상에 빠진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근시안적인 망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지도자들 앞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노선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자유무역 노선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시진핑이 롯데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불매 운동, 반롯데 시위, 유커들의 한국 방문 제한,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공연 줄줄이 취소를 소극적으로는 묵인, 적극적으로는 독려하는 것은 강대국 최고 지도자의 얼굴을 깎는 이중의 잣대다. 개념적으로 말하면 이중인격자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작은 이웃을 상대로 힘자랑하는 것은 중국의 역사적인 수치다.

한국은 지금 권력의 공백기다. 정상간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시기에 한국에 거칠기 짝이 없는 경제 보복을 가하는 것은 선린과 거리가 먼 비겁한 조치다. 우리 외교부는 답답하게도 "원칙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하겠다"는 말밖에 못한다. 복지부동하면서 무슨 원칙 말인가. 당당하게는 무슨 뜻인가.

한미관계의 프레임에서 사드배치는 불가역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외교·안보 라인은 사드배치를 미국의 페이스 대로 서둘지 말고 시간을 벌면서 중국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야 한다. 두 개의 카드를 쓰라: ①대북 석유 공급 중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②사드가 배치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중국이 걱정하는 미·일의 미사일 방어망(MD) 편입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라. 미국에게도 중국 설득에 적극 힘을 보태라고 강하게 요구할 명분이 있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삼성, 현대, 엘지같은 대기업으로 확산될 조짐도 배제할 수 없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한국 경제가 깊은 내상(內傷)을 입지 않게 총력적을 펴야 한다.

일단 서부 전선(중국)을 안정시켜야 동부 전선(트럼프의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대북 정책의 옵션에 오를 대북 선제타격은 우리의 참여없이 결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