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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대,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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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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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정신을 잃을 만큼 충격을 받은 전 세계 국가들이 저마다의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 내내 강조한 미국제일주의의 대외정책·전략의 큰 그림은 미국이 수퍼파워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세계의 보안관" 노릇을 청산하고 대륙의 질서는 중국과 러시아에 넘기고 미국은 일본과 함께 해양세력으로만 군림하겠다는 강대국끼리 역할분담의 구도다.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헨리 키신저를 찾아가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키신저를 만나고 나온 트럼프는 키신저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더라고 불평했다. 키신저는 대표적인 지정학적 세력균형론자로 중국의 역할을 중시한다. 트럼프는 키신저의 웅대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미국제일주의자, 고립주의자, 보호무역주의자의 입장에서 키신저의 설교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도 동맹국이 방위비를 내라, 동맹국(들)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가 선거유세 중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겠다고 한 번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이 지금같이 막대한 국방비를 쓰면서 동맹국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한 그들이 자위책으로 핵무장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의미다.

이건 핵 없는 세상의 실현을 이상으로 내걸어 노벨평화상까지 탄 버락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전임자 클린턴의 정책을 뒤집는 ABC(All But Clinton) 정책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트럼프는 내정과 외치 모두 ABO(All But Obama)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내치에서는 서민들의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오바마케어가 첫 희생자가 될 전망이다.

한국에 관계가 되는 ABO는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와 아시아 재균형정책의 폐지 또는 후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앞에서 한국이 기대는 가장 강력한 대북억지력은 괌에 배치된 미군의 전략자산인데 우리가 바라는 한국 상시 배치는 고사하고 한국 전개(Deployment ) 자체를 믿을 수 없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 아래서도 한·미 동맹은 변함없이 튼튼할 것이라는 외교당국자의 말은 현실미가 없는 희망사항이다.

강대국의 역할분담으로 우리는 다시 미국이냐 중국이냐, 해양이냐 대륙이냐의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우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 견제에 성의가 없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립서비스만 한다. 오바마의 관심은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떠났다.

트럼프의 한반도정책과 한·미 동맹에 관한 인식도 한국이 알아서 자위책을 쓰거나 필요하면 미국의 군사적 억지력을 현금으로 "구매"하라는 것이다. 돈벌이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갖고 부동산으로 거만금을 축적한 철저한 장사꾼의 논리다. 그래서 트럼피즘(Trumpism)에 대한 대책의 출발점은 세밀한 트럼프 연구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 안에서는 핵무장론이 다시 무성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한다. 미국 외교는 트럼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같을 수 없다. 대선 유세의 열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을 말하기는 했지만 트럼프를 포함한 어떤 미국 대통령도 동북아시아가 핵무장의 경연장이 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대만의 핵개발과 중국과 러시아의 핵전력 대폭 증강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난폭하다. 난폭자는 다른 난폭자를 안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경계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한국은 그 틈을 이용하여 일단 북한과 잠정타협(modus vivendi)을 시도할 수 있다. 북한이 거부하고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 한국은 안보전략을 수정하여 미·일 해양세력연합(Coalition)에 들어가야 한다. 소모적인 반일감정을 그만 접고 협상 중인 한·일 군사비밀정보교류협정부터 체결하여 한·미·일 군사정보교류체계에 편입되어야 한다.

중화주의에 집착하는 중국은 믿을 상대가 못 된다. 중국 어선들의 한국 공권력에 대한 도전, 중국 유커들의 거친 언행, 역사탈취를 위한 동북공정, 이런 것들을 용인하고 "중국의 꿈"만 키워가는 시진핑의 중국은 한국의 경제동반자는 되어도 전략적동반자는 될 수 없다. 트럼프 정부가 실제로 대륙의 질서를 중국과 러시아에 맡기고 해양강국의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일대일로 참가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을 최소화하고 미국과 일본의 해양협력의 밴드웨건을 타야 하는 이유다. 최순실 게이트로 마비된 국정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이런 도전에 대응할 수 없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