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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보다 평화와 자유 왕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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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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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2주년이다. 1945년 8월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환희의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 분단이 시작된 좌절의 날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는 머지않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이 끝나고 통일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남북이 따로 정부를 세우면서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필자 아버지의 고향은 개성이고 우리 가족은 광복 후 서울에서 살았다. 당시 개성은 38선 이남이었지만 광복 후 5년 만에 터진 6·25 때문에 이북 땅이 되면서 아버지는 이산가족이 되셨다. 1985년부터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자 아버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도 했지만 결국 한을 남기고 재작년에 98세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매년 국민 통일의식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2016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통일이 필요하다 53%, 필요하지 않다 25%, 반반이다 22%로 나타났다. 필자의 가족사를 읽은 독자께서는, 필자가 이런 설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할 것으로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통일보다는 평화와 자유 왕래를 더 절실히 원하기 때문이다.

통일이 원만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평화와 자유 왕래는 저절로 따라오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통일이란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던 한반도에 단일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 대결과 불신으로 점철된 남북관계 속에서 한쪽에서 '통일하자'고 하면 상대방에게는 '굴복하라'는 말로 들리게 된다. 실제로 남한에는 북한 정권과 체제를 무너뜨리는 흡수 통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국민이 적지 않으며, 광복 후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국민들은 더하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의 10·4 선언은 서로를 인정하는 신뢰관계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기적같은 일이었다. 6·15 선언에서는 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였고, 10·4 선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때부터 두 선언은 빛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모습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남측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고 전시작전권도 없으며 어렵게 이룬 정상 간의 약속마저 어겼다. 이런 남측에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으므로 안보와 체제 보장을 위해서는 직접 미국과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김일성 주석의 유훈에 따라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 핵 개발에 따른 국제적 경제 제재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생존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6일 베를린에서 여러 가지 전향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북에서 반기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문 대통령이 '핵 도발 중단'이라는 전제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남북 간의 평화와 자유 왕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통일을 상당 기간 포기하고 아예 서로를 다른 나라로 인정하는 것이 어떨까? 소위 '1민족 2국가 체제', 즉 남북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이 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이 대안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10·4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 아니라,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주변국의 동의를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반도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어서 더욱 관심이 가는 대안이다.

앞에서 소개한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50대 이상은 70% 전후인 반면, 30대 이하는 10% 전후다. 이런 추세라면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필자의 의견처럼 되어갈 것이다. 다만 여생이 길지 않은 1세대 이산가족을 위해, 그리고 불신과 적대로 인한 국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그 시간을 좀 앞당기자는 게 필자의 희망이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