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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발 정치 개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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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8일간을 '대구 시민 주간'으로 선포하였다. 일제의 경제 침탈에 저항한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과 독재와 부정에 저항한 1960년의 2·28민주운동은 대구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시킨 자랑스러운 운동이다. 대구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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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28 민주운동 당시 대구 중앙로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대구는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다

그런데 자주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무릅썼던 대구가 요즘은 타 지역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 박정희 후광을 누리는 정당에 몰표를 던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이라는 공적도 있지만 유신독재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시각이다. 더구나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어이없는 실상이 드러나면서 대구 시민들마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작년 12월 6일 지역의 각계 인사 1,381명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대구 시민으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반성문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반론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대구에서 80%를 넘은 것은 사실이지만 광주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무려 92%에 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타 지역에도 과오가 있다고 해서 대구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묻지 마' 투표는 대구 쪽에서 촉발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3선 개헌 후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커진 가운데 김대중 후보를 맞아 고전하던 공화당이 영남의 지역감정에 호소하였다. 그로 인해 '묻지 마' 투표는 선거의 고질병이 되고 말았다. 주범은 정치권이었지만 거기에 휘둘린 대구 시민 역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이제 변명하기보다는 다 같이 수렁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선거 병폐의 배경에는 선거를 삼성 라이온즈 응원하듯 하는 주민 의식과 싹쓸이를 촉진하는 나쁜 선거 제도가 있다. 둘 다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주민 의식보다는 제도를 고치기가 쉽다. 뿐만 아니라 제도를 개혁하면 행동과 의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다.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키는 비례대표제를

현행 소선구제에서는 낙선자의 표가 모두 사표가 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 득표율 이상으로 당선자를 낸다. 작년 제20대 총선의 비례대표 개표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득표율이 대구 53%, 경북 58% 정도인데도 지역구를 포함한 의석은 새누리당이 거의 싹쓸이하였다. 또 소선거구제는 대체로 거대 양당 체제를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정 정당의 정강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다른 정당을 피해서 투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 표의 쏠림이 더 심해진다. 현행 소선구제를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게 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시키는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제도의 문제가 상당히 해소된다.

또 다른 반론도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시 1등만 당선되므로 몰표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만으로도 제왕적 대통령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비례대표제에서는 국회 제1당이라고 해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정신에 더 충실해지고 대결의 정치가 타협의 정치로 개선된다. 2015년 초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이 찬성한 바 있고, 여·야 정치권이 모두 분할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는 다른 정당에도 비례대표제가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선거 제도를 개혁할 좋은 기회다.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면 더 효과적이지만 그건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때 논의하면 된다.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대구가 '묻지 마' 투표와 싹쓸이를 해소하는 정치 개혁에 앞장서면 좋겠다. 그러면 다른 지역으로부터 '역시 대구!'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최근 수십 년간 대구에 씌워진 '수구꼴통'이라는 이미지도 반전시킬 수 있다. '대구 시민 주간'을 주관하는 당국과 민간단체들이 다 같이 노력해주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도 기고하였습니다.